아내의 이사

by honest

결혼생활에 실패한 나는 아내와 함께 살던 신축 아파트를 뒤로하고, 오래된 구축 아파트에서 지내게 되었다. 실패했다는 생각에 우울함을 금할 길 없었지만 조금씩조금씩 회복해 나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나도 모르던 소식이 들려 왔다. 직 이사 온지 채 2년도 되지 않았는데 벌써 다시 이사를 가야 한다고? 하필이면 임대료가 천정부지로 치솟은 이때? 아니 왜? 나와 헤어진 아내는 그래도 서울에 있는 한 신축 아파트로 이사했다고 들었다. 그런데 나는 왜. 도대체 왜 내게는 이런 일이.




실제로 나는 아내와 헤어지면서 서울에 있는 한 리모델링 아파트로 이사했다. 이걸 신축이라고 불러야 할지는 애매한데, 다들 신축이라고 부르니 뭐 비슷한 것이라고 치자. 헤어질 때 많은 조언을 해 주었던 이혼전문변호사 형이 있었는데 그 형이 집을 구할 때도 몇 가지 유의해야 할 점에 대해 내게 엄청나게 강력하게 말했던 기억이 난다. 강남권 오피스텔을 가라고 했었다. 집 밖으로 나갔을 때 정신이 없도록. 그리고 좋은 동네로 가라고 했던 것도 기억이 난다. 패한 느낌이 들면 절대 안 된다고 했다. 실제로 오피스텔도 몇 군데 보러 다녔다. 결과적으로 계약까지는 가지 못했지만. 또 대단지 아파트는 가지 말라고 하였다. 한 대단지 아파트의 작은 평수는 어떻겠냐며 물어본 내게 그 형은 호통을 쳤었다. 그런 곳에 가면 수많은 신혼부부를 매일같이 보게 될 거고, 그럼 그때마다 나는 후회하고 아쉬워하며 우울해 할 거라고. 그 형의 말이 하나도 틀리지 않다. 역시 나를 스무 해 넘게 보아온 사람의 정확한 지적이었다. 은 제일 적당했던 곳은 아내와 결혼하기 전에 살던 한 아파트단지였다. 회사에서도 엄청 가깝고, 가격도 지금 사는 집보다 더 저렴했다. 그런데 막상 그 집을 보러 간 나는 계약을 할 수가 없었다. 아내와 결혼하면서 행복하게 떠난 집을 아내와 헤어지고 실패해서 돌아온다는 생각에. 그렇게 여러 곳을 거치고 거쳐서 나는 지금 사는 집으로 오게 되었다.


우리는 마치 서양 드라마의 주인공마냥 무척 시원하게 헤어졌는데, 그래서 나는 헤어지고 아내가 집을 구하는 문제에까지 신경을 썼다. 처음에 아내도 오피스텔 같은 곳을 생각했던 것 같은데, 2, 3년 전은 전세사기로 세상이 시끄러울 때이기도 했고, 실제로 나도 마음에 들었던 오피스텔 가운데 한 곳은 전세보증보험 가입이 되지 않아서 들어가지 않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아내에게 웬만하면 오피스텔말고 가능하면 아파트를 구해서 이사하라고 권했고, 그렇게 아내는 좋은 동네의 한 오래된 아파트 작은 곳을 구해서 이사를 했다.


아내와 헤어지고 2년여가 흘렀다. 얼마 전 나는 나의 집주인에게서 재계약과 관련한 전화를 받았었는데, 그때 바로 떠올랐던 건 아내였다. 아, 내가 2년이 되었다면 아내도 2년이 되었겠구나. 아내도 재계약과 관련해 고민을 하고, 연락을 받을 때가 되었겠구나. 또, 또 나의 지나친 오지랖병일텐데 시리 아내가 걱정되기도 했다. 아내와 만나고 헤어질 때까지 부동산과 관련한 문제는 항상 내가 전담했던 까닭이다. 처음 아내가 독립해서 살던 집을 구할 때도 장모님께서 같이 알아봐 주셨던 걸로 아는데, 재계약은 잘할 수 있을까. 괜히 집주인에게 덤터기를 쓰는 건 아닐까 그런 염려가 되었고, 나는 나의 재계약보다도 아내의 재계약이 신경 쓰여 그때 무척 마음이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어라? 이거 혹시 아내 집 아닌가. 기사를 보고 있는데 한 아파트단지가 이주한다는 기사가 떴다. 내가 무슨 스토커도 아니고 아내의 집주소를 정확하게 다 외지는 못한다. 그래도 얼핏 감이란 게 있는데. 마음을 졸이면서 그 동네의 아파트단지들을 찾아보았다. 그러면서도 내심 아내의 아파트단지는 아니길 바랐다. 제발 아니길. 제발 아니길. 그곳엔 비슷한 한 자릿수의 아파트단지들이 꽤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몇 군데를 살펴본 결과, 혹시나 하는 마음은 역시나였다. 아내가 사는 단지였다. 아, 이제 고작 2년을 살았을 뿐인데. 그래도 2년은 더 살 수 있었을텐데. 아내는 지금, 벌써 새 집을 알아보고 이사했을지도 모를 일이고, 아니면 열심히 새 집을 알아보고 있을 터다.


기사를 보고 나서 한 며칠은 너무 기분이 좋지 않았다. 주위에 있는 친구나 형에게 조언을 청하기도 했다. 아내가 너무 걱정되는데, 연락해 보는 건 어떨지. 아내와 마지막으로 연락한지 반년 가까이 되었다. 대부분 하겠다면 뭐 어쩌겠느냐는 반응이었지만, 역시 한 형의 조언이 현명했다. "그래서 네가 뭘 해 줄 수 있는데". 그렇다. 그 형이 말이 맞다. 아내는 이런 나를 싫어하기도 했었다. 마음을 써 줘서 뭐. 실제로 도움이 되는 건 하나도 없는데. 아내에게 연락한다고 해서 내가 해 줄 수 있는 건 없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속상한 마음이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그때 내가 아파트를 구하라고 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그냥 아내가 처음에 생각했던 대로 오피스텔로 갔더라면. 그럼 지금 굳이 새로 집을 알아보고 이사하진 않아도 되었을텐데. 더구나 실제로 내가 경험해 본 적은 없긴 하지만, 나는 이주를 해야 할 때의 그 을씨년스러운 분위기가 상상이 되어 더 마음이 안 좋았다. 형이나 친구나, 그리고 병원의 의사 선생님마저 모두 나에게 아파트를 알아보라고 한 건 잘 말해 준 거라고 했다. 오피스텔은 어찌 될지 모르고, 나중에 나와야 할 때의 문제도 있고. 물론 지금 아내가 이사를 해야 하는 상황은 있긴 하지만 이렇게 될 줄 알고 그런 것도 아니었다고. 어쨌거나 저쨌거나 결국 과가 썩 좋지 못한 건 사실이다.


아내는 어떻게 하고 있을까. 실은 첫 문단은 만약 내가 아내의 입장이었다면 어떠했을까를 떠올려서 써 본 거다. 나였다면 내 스스로의 팔자를 무척이나 원망하고 있었을 것이 안 봐도 뻔하다. 실은 그래서 더 속상했다. 결국 사람은 다 자신의 시선에서 세상을 바라보게 마련이므로. 이혼까지 했는데, 살던 집이 갑자기 재건축? 리모델링을 한다고 해서 또 이사까지 해야 한다. 물론 그 집이 내 집이라면 너무 좋겠지. 그런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지 않나. 안 그래도 헤어지면서 전에 살던 집보다 열악한 집으로 가야 했는데, 거기에서 또 이사를 해야 한다고? 이 많은 살림을 이끌고? 나라면 그 상황이 너무 좌절스러울 것 같았다. 그래서 한 며칠 내내 정말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런데 이건 나의 입장이다. 실제로 아내는 어떨까. 아내는 무척 씩씩한 사람이고, 지난 과거를 떠올리며 스스로를 동정하지 않는다. 내가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아마도 아내는 '뭐? 이사해야 한다고? 아, 그렇구나. 그럼 뭐 새 집을 알아봐야지 뭐. 이번엔 더 잘 알아봐야지. 새로운 집에선 더 좋은 일이 많이 생길 수 있도록'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씩씩하게 잘 넘기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한편으로는 그런 생각도 한다. 이사가 뭐 그렇게 신파극을 찍을 정도로 힘들고 서러운 일이라고. 하물며 두 달 살다 이사하는 것도 아니고, 그래도 2년을 다 살았는데. 아마도 아내는 그렇게 씩씩하게 아무렇지도 않은 듯 이번 일도 잘 이겨낼 사람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아내는 그런 사람이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내가 그런 사람이 아니다. 나는 아내와 같은 상황에 처했다면 나의 상황과 운명을 정말 끊임없이 비관하고 있었을 것이 뻔하다. 물론 그게 정답은 아니라는 걸 알고 있지만 말이다. 그래서 아내가 이사를 해야'만' 한다는 소식에 나의 속마음은 계속 타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병원에서 의사 선생님은 한 달 정도 있어 보라고 하셨다. 한 달이 흘러도 계속 속상하고 한 번 연락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면 그럼 그때는 해 보라고. 물론 아내에게 '너 이사한다며?' 이렇게 연락할 수는 없을 터다. 얼마나 무섭겠는가.(정말로 나는 그냥 우연히 기사를 보고 알았을 뿐이지만) 내가 고작해야 아내에게 할 수 있는 건 '잘 지내지?' 따위의 연락일테고 그럼 아내도 대수롭지 않게 '응 잘 지내' 이 정도의 답장이 전부일 거다. '실은 너 이사하는 거 알고 연락했어. 괜찮아?' 사실은 이게 내가 하고 싶은 말의 진심이지만, 마흔넷의 나이에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다하고 살 수는 없지. 그렇게 하고 살다가 아내와 헤어지게 된 것이기도 하고.




지난달에는 아내와 나를 연결해 준 선배가 하는 카페에 다녀왔다. 선배와는 이런저런 사정으로 약속이 계속 밀려서 2년만에 만나게 된 셈이었는데, 선배도 지난 1년 동안은 아내의 소식을 듣지 못했다고 한다. 정말 솔직하게 나는 아내가 정말로 아주 잘 지낸다는 소식을 듣고 싶다. 회사도 별일 없고, 새로운 남자를 만나서 새로운 가정도 꾸리고 행복하게 잘 산다는 소식을. 그런 소식을 듣고 나면 외롭고 쓸쓸한 내 처지가 떠올라 부럽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그래도 마음 한켠으로 정말 안심이 될 것 같다. 그리고 아내가 잘 살고 있으니, 앞으로 나도 잘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할 수 있을 것 같고.


물론 아내는 잘 살고 있을 것이고, 건강하고 씩씩하게 잘 지내고 있을 거다. 어쩌면 나도 모르게 새로운 사람을 만나 벌써 가정을 꾸렸을지도 모르고, 그게 아니더라도 키 크고 잘 생긴 아주 멋진 남자친구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 꼭 그랬으면 좋겠다. 꼭 그랬다면 좋겠다.


여러 사람들의 이사 소식을 듣다 보면, 나는 오늘도 이렇게 여전히 아내의 이사를 걱정하고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이별을 극복하는 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