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인을 만나기 좋은 때란
청명과 식목일이 있는 주말은 어떤 의미에서 매우 특별했다. 우선, 그 주말을 오래전부터 기다렸다. 어쩌면 혹시 새로운 짝을 만날지도 모른다는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현실은 냉정했고 더구나 날씨마저 좋지 않았다. 덕분에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는 나는 최근 경험한 적이 없을 정도로 무척이나 우울했는데, 이제는 괜찮아졌다며 약마저 챙겨가지 않아서 그 2박 3일을 버티기가 더욱 힘들었다.
그 주말에는 한 사찰에서 진행하는 연인 만들기 프로그램이 있었다. 대상자는 29살에서 40살까지였고 사실 나는 여기에 해당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굳이 사찰에 문의를 해서 참가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고 그렇게 참가하게 되었다. 템플스테이라면 이골이 난 사람이라 사람들 사이에서 제법 아는 척도 할 수 있을 것 같았고, 사진을 잘 찍지 않아서 잘 나온 사진도 없는데 그보다는 이렇게 2박 3일씩 사람을 만나서 지내다 보면 내게도 좀 낫지 않을까 싶었다. 아무일도 없으면 어쩌나(?) 하는 염려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그래도 생각지 않게 좋은 사람을 만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컸고, 사실 나는 한 달쯤 전부터는 이 프로그램에서 내가 다녀왔다는 것을 밝혀야 하나 말아야 하나가 가장 큰 고민 중에 하나였다. 결과적으로 그 고민은 쓸데없는 고민이었지만.
남자는 15명, 여자는 16명이 참가했다. 원래는 짝을 맞추었는데 남자 한 명이 프로그램 시작 직전에 취소했다고 한다. 반면 여자는 프로그램 시작 직전까지도 취소하는 사람이 나오면 말해 달라는 연락이 빗발쳤다고. 오랜 템플스테이 참가 경험으로 나는 알고 있다. 항상 여성이 절대 다수 참가한다는 것을. 아무튼 그렇게 2박 3일의 프로그램이 시작되었고, 아무일도 생기지 않고 2박 3일이 지나갔다. 아, 아니구나. 나는 그 2박 3일 동안 가슴이 아리도록 아내를 떠올렸다. '어딜 가도 아내만한 사람 만나기기 쉽지 않구나'.
나는 참석 가능한 나이가 아니었기 때문에 당연히 참가자 중에 최고령자였다. 31명의 참가자 중에 나의 정확한 나이를 아는 친구는 단 한 명뿐인데, 나 다음으로 나이가 많은 그 친구가 나보다 세 살 어렸다. 아무래도 나이가 있다 보니 나는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상대방이 '나이 든 아저씨가 나한테 왜 이래' 이런 생각을 품을 수 있다는 생각에 절로 위축되었다. 진상인 사람이 되면 안 되지 않겠는가. 게다가 나는 한 번 다녀왔다는 점도 있었다. 다들 싱글이었고 우스개로 '혹시 다녀온 사람도 있는 거 아니야?' 하는 이야기를 하는 것도 듣기는 했는데 모르는 척 조용히 가만히 있었다. 그러나 그 점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는 없었다. 결과적으로 나는 그걸 굳이 이야기할 필요가 없는 상황이 되었지만.
우리나라는 나이가 많건 적건 어딜가나 사람들이 나이를 따지는데 참가한 사람들의 면면을 보니 대체로 90년대 초중반생이 많은 듯했다. 나와는 띠동갑인 돼지띠는 31명 중에 최소 너댓 명은 있는 듯했고, 그 위로도 원숭이띠, 닭띠, 개띠가 연이어 있었다. 조금 어린 사람은 쥐띠도 있었던 것 같다. 결국 전반적으로 나는 거의 띠동갑에 가까운 사람들과 같이 시간을 보낸 셈이었고 그 바람에 더더욱 의기소침해질 수밖에 없었다. 뭐, 개중엔 나이 차이를 별로 고려하지 않는 사람도 있을 수 있었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내게 관심을 보인 사람은 없었다. 나중에 프로그램이 끝날 때가 되어서야 알았다. 여성 참가자들 중에도 나랑 나이 차이가 많지 않은 80년대생들도 몇 있었다는 사실을. 이제는 사람의 외모만 보고는 나이를 짐작하기가 쉽지 않다. 진작에 알았으면 조금 달랐으려나.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만큼 적극적으로 알고 싶었던 사람이 없기도 했다.
나와 나이 차이가 가장 덜 나는 한 남동생과는 정말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난생처음 본 사람인데. 그 친구에게 유일하게 내 나이도 말했고, 다녀왔다는 사실도 밝혔다. 실은 다녀왔다는 사실은 말하고 싶지 않았는데, 상황도 상황인 데다 둘째 날 날씨가 너무 좋지 않아서 우울함이 극에 달했다. 그런 상황 속에서 누구에게라도 좀 말을 하고 싶었던 것 같다. 다행히 그 친구는 입이 무거웠다. 그렇게 정말 견디기 힘들었던 2박 3일을 보냈는데, 또 하나 깨달은 것도 있었다.
15년쯤 되었을까. 첫 회사에 입사하고 1년 정도가 지난 뒤 가을이 왔다. 날씨가 쌀쌀해지고 크리스마스가 머지않은 그 시점. 그때 나는 29살에 서울 본사에서 근무하는 한 대기업 직장인이었다. 거짓말이 아니라 그야말로 쓰나미처럼 소개팅이 밀려들었다. 내게는 묻지도 않고 사진과 이력 먼저 보낸 동기도 있었다. 소개팅이 너무 많이 들어와서 주변 사람에게 나눠 주기도(?) 했었다. 오죽하면 그때 회사 계정으로 가입해야 했던 어딘가에 나는 '소개팅사절남'이라고 적기까지 했던 것 같다. 그때 몇 번이나 소개팅이 들어왔나 세어 보기도 했는데 짧은 시간 사이에 열 건이 넘었다는 것은 확실히 기억난다. 나름대로 사회학적으로 그 현상(?)을 분석하기 위해서도 애써 보았다. 일단 직장과 학교가 확실하고, 우리나라 사회 분위기에서 여성보다 조건이 좋아야 소개팅이 성사되는 그런 구조였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조건을 갖춘(요즘 말로 말하면 육각 뭐시기) 그런 사람을 구하는 게 한정적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실제로 나는 소개팅에 나가지 않았지만 나 대신 나간 같은 팀 선배 말로는 상대는 계약직인 경우도 있었다고 했다. 그런 게 남자와 여자의 차이였겠지. 그러나 나는 정말 단 한 번의 소개팅도 하지 않았다. 그때 만나던 여성에게 으스대기는 했던 것 같다. 내가 이렇게나 소개가 많이 들어오는 사람이라고. 그 사람도 지지 않고 말했던 게 기억 난다. 얼마든지 나갔다 오라고. 자기가 더 좋아질 거라면서. (바람난 여자가 할 말은 아니지 않나)
그로부터 한참 시간이 흐른 뒤지만 아내와도 결국 소개팅으로 만난 셈이 되었다. 그때는 대기업을 다닐 때는 아니었고, 뭐 소개팅을 구하려면야 구할 수 있었겠지만 나도 그런 편은 아니어서 어쩌다 한 번 만난 선배가 적극 권한 소개팅에 응했던 게 그렇게 아내와의 결혼으로까지 이어졌다. 그리고 나는 그때로부터 열 살을 더 먹었다.
브런치에도 여러 번 적었지만 나는 짝꿍이 필요한 사람이다. 안타깝게도, 짝꿍에게 내가 필요하겠지? 라는 생각을 가지고 사람을 찾아야 사람이 찾아질텐데, 나는 아직도 모자라서 나의 필요에 의해 상대를 찾고 있다. 오늘은 점심시간에 시내 출장을 나갔는데 날씨가 너무 좋았다. 남산과 남산타워 사진을 찍어 친구들과 성가대와 몇몇 곳에 공유하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지금의 신남과 이 풍경을 공유할 수 있는 한 사람이 정말 필요한데'. 그러나 이제는 안타깝게도 누구도 나에게 사람을 소개해 주지 않는다. 한 번 다녀오기도 했고 어느새 내 나이가 마흔넷이나 된 데다가, 또 아마 사람들은 내가 얼마나 까다로운 사람인지 알고 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너무나 사람이 좋아서 항상 그 선배처럼 결혼생활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드는 한 선배가 있다. 그 선배도 내게 한 번 소개를 해 준 적이 있었다. 벌써 15년도 더 된 내가 군인일 때의 일이다. 선배 여자친구가 한 번 나를 선배와 함께 보고는 선배와 느낌이 비슷하다며 그런 사람을 찾는 자신의 친구를 소개해 주었던 것이다. 하지만 15년이 흐른 지금, 이제 선배는 내가 소개를 해 달라고 해도 해 주지 않는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너무 잘 알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사찰에 머무는 내내 이루 말로 다할 수 없을 만큼 울적했다. 갑작스레 내 현실과 내 나이와 그런 모든 것들이 자각되는 순간이 아니었나 싶다. 나는 지금 왜 여기에 와 있는가. 저들과 나는 어울리는가. 그렇지 않은데. 그래도 같이 간 사람들과 2박 3일이라는 시간을 함께한 덕분에 조금 친해지기는 했는데, 생각해 보면 올라오면서 같이 산책을 하고 밥을 먹고 지역의 유명한 카페에 들렀던 사람들은 모두 나와 나이 차이가 가장 덜 나는 80년대생들이었다. 이걸 글을 쓰고 있는 지금에서야 깨달았다. 31명 중에 경로당 5명이서 같이 시간을 보냈구나.
내게는 항상 젊은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는 그런 만남의 지론이 있다. 아마도 당신 주위에는 수없이 많은 남사친, 여사친이 있을 것이다. 내게도 당연히 남자가 더 많겠지만 지금 전화번호부를 열면 아마도 여성이 한 40%는 되겠지. 그러면 그 숫자가 백 명도 넘는다. 그중에 제일 괜찮다고 생각하는 친구, 그 친구와 비슷하거나 조금이라도 더 나으면 사귀는 게 좋다는 거다. 사람이 살면서 주위의 인력풀 중에 100명도 넘는 사람이 있는데 그중에 가장 좋은 사람이 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그만큼 괜찮은 사람을 만나는 건 쉽지 않다. 산술적으로 다시 또 백 명을 만나야 한 명 있을 수 있는 확률 아닌가. 이런 말을 여전히 나는 젊은 친구들에게 하고 있는데, 한 번 내 카카오톡을 열어 보았다. 이제는 나이 차이가 너무 많거나 혹은 이미 결혼했거나 등등의 사유로 그 안에 들어올 수 있는 사람이 몇 남아 있지도 않다. 아, 이제 나는 내가 스스로 누군가를 만날 수 있는 상황도 아니구나. 그렇게 나이를 먹었구나, 하는 현실을 깨달았다.
그저께는 성당에서 성가대의 연주회가 있었다. 어찌 보면 1년 중 가장 큰 행사였다고나 할까. 오랜 시간 연습했고, 나로서는 이번이 세 번째 연주회였다. 항상 고민했다. 나는 성가대를 언제까지 나가야 할까. 나는 더 이상 청년이 아니지 않는가. 반면에 또 성가대에 사람이 너무 적다는 문제의식도 가지고 있기는 했다. 실제로도 연주회날 뒷풀이를 하는데 다음 단장을 할 친구가 '형, 진짜 내년까지는 꼭 나와야 한다고 약속해야 돼요. 형. 형, 내가 잘하면 내년에는 나오겠다고 그랬잖아요' 하는 것 아닌가. 내년이면 내가 마흔다섯인데? 그러나 그 친구는 실질적으로 사람이 너무 적다는 것이 염려될 것이다. 당장 다음 달부터 안 나오겠다는 친구가 있으니.
그런데 이번에 사찰에 다녀와서 나는 조금 나의 현실을 더 깨닫게 된 것 같다. 아, 난 지금 이럴 때가 아니구나. 나는 여기에 있을 사람이 아니구나. 물론 사람이 너무 적으면 안 된다는 걱정은 하고는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여기 어울리는 사람이 되지는 않는다. 까닭에 연주회가 끝난 뒷풀이에서 나는 평소와는 다르게 조금 더 차분해질 수 있었다. 어쩌면 앞으로도 그럴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이제 이곳에 어울리는 나이의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덕분에.
요즘에는 진지하게 ㄷ이나 ㄱ 같은 업체에 가입을 해야 하는 건가 하는 생각마저 하고 있다. 소개를 받기도 어렵고, 그렇다고 내가 어딜 가서 자연스럽게 누굴 만나기에는 이제는 아저씨가 추근덕댄다는 소리를 들을까 두려워서 못할 나이라면, 게다가 나는 한 번 다녀왔다는 걸 언젠가는 명확하게 밝혀야 할 것이라면 그런 조건을 처음부터 누군가에게 명확히 드러내고 만나는 게 낫지 않겠나 싶은 것이다. 나는 또 행동은 빠른 편이어서 성가대에 동갑내기 친구와 이야기하다가 그 친구가 말한 업체로부터 전화도 받아봤다. 무료로 사람 몇 명의 프로필을 보내주는데 생각보다 괜찮아서 바로 가입할 뻔했다. 다행히, 그 사람들이 괜찮아 보인다고 해서 그 사람들도 나를 괜찮게 생각하는 건 아니라고 이성의 끈으로 잘 붙잡았지만. 한편으로는 그냥 혼자 살 준비를 해야 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한다. 사람을 만난다는 건 나의 의지와 노력만으로는 되지 않는 일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나란 사람을 생각해 봤을 때, 사람이 있다고 해서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데 혼자 늙기 싫다고 아무나 만날 그런 사람도 또 아니다. 내게는 참 쓸데없는 고집이 있어서 '그럴 바엔 혼자 늙겠다' 이런 생각이 지금도 내 머릿속엔 차고 넘칠텐데.
2박 3일 동안 나는 현실을 깨닫고 이상에서 현실로 돌아오는 과정 속에 있었기 때문에 실은 그 시간이 너무 힘들고 괴로웠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이제는 내게 꼭 필요한 시간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든다. 3살 어린 동생은 자신도 이번 프로그램에 참석한 걸 너무 후회한다고 말했다. 회사도 바쁜데 겨우 어렵게 사장에게까지 말해서 휴가를 받아서 왔는데, 아무 일도 없었으니. 그러나 나는 그 동생에게 이야기해 주었다. 여길 다녀가지 않았다면 계속 아쉬움으로 남지 않았겠냐고. 그 아쉬움을 없앤 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고. 내게도 그랬다. 아쉬움을 넘어서는 것이지만, 나도 한 단계 더 성장하기 위해서는 또 그렇게 반드시 겪어야 했던 힘든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