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저녁으로 출퇴근을 하다 보면 가장 자주 이용하는 게 지하철이다. 내가 주로 타는 노선은 지상구간이 전혀 없고(나는 지상철은 좋아한다) 사실은 동일한 경로에 버스도 있지만, 가격과 시간 측면에서 지하철이 유리하기 때문에 거의 대부분 지하철을 타게 된다. 항상 보도되는 뉴스지만 지하철은 거의 대부분의 노선이 매해 적자다. 서울지하철 2호선만이 유일하게 흑자를 기록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공사비도 자체 부담해야 할 뿐더러 노령자의 지하철 무임승차를 지하철 공사들이 자체적으로 부담하고 있는 까닭이다.(일부 국철 제외)
점점 심각해지는 인구 고령화 문제는 지하철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노령 승객이 많은 것은 문제라고 할 수 없겠지만, 무임승차자가 많아지면서 이게 재정에 부담을 주고 있다. 정확한 것은 기사를 확인해 봐야 알 수 있겠으나, 이제 무임승차자가 20%는 확실히 넘어설 거고 30%도 넘어서는지까지는 모르겠다. 연구를 해 본 것은 아니지만 이분들에게 요금을 받는다고 해서 지하철이 흑자로 전환하지는 않을 것이다. 갑작스럽게 노령 승객이 모두 탑승하지 않는 일은 발생하지 않겠지만, 무임이기 때문에 전철을 이용하는 수요 또한 상당할 거다. 그래서 어느 누구도 이분들에게 요금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는다.(나는 이 부분도 지하철 공사들이 매우 비겁하다고 생각한다.) 날이 갈수록 고령화되어 가는 한국 사회에서 이분들의 표를 생각하면 더욱 할 수 없는 말이기도 하다. 일부 노인단체에서 무임승차 연령을 더 높여야 한다는 주장도 한다. 그러나 속내를 들어보면 앞으로 점진적으로 상향한다는 것이어서 본인들은 계속 무임승차하겠다는 말이다.
결론을 먼저 이야기하면, 나는 노령자의 지하철 무임승차에는 찬성하는 쪽이다. 이분들께 요금을 걷는다면 지하철 운행횟수도 줄어들 거고, 실제 이용객도 감소하기는 할 것 같다. 경영의 면에서 좀 더 합리적으로 운영되는 측면이 없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무임승차로 인해 어르신들이 지하철을 이용함으로 인해 얻게 되는 사회적인 효과가 더 크지 않을까 싶다. 더 활동적이게 되고, 그렇게 더 많이 움직임으로 인해서 얻을 수 있는 건강 효과도 있다. 내가 연구해 본 것은 아니지만 분명히 긍정적인 면이 더 많지 않을까 싶다. "지금 65세가 무슨 노인이냐!" 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맞는 말이다. 지금의 65세는 예전의 65세와는 같지 않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65세를 청년층으로 대우하며 고용 기회를 동등하게 주는 사회도 아니지 않는가. 은퇴 연령을 생각하면 65세부터 무임승차하는 것이 꼭 이르다고만 할 수도 없다.
내가 반대하는 것은 지하철 무임승차를 국비 지원해야 한다는 논리다.
지하철은 대부분 대도시에 위치해 있고, 대도시의 인프라는 이미 소도시나 농어촌 지역보다 훨씬 더 잘 갖추어져 있다. 물론 대도시에 많은 사람이, 많은 어르신이 살고 계시니 그분들께도 어느 정도 신경을 써 드려야 하고 사회복지사업을 실시해야 하는 것도 맞다. 그러나 대도시의 어르신을 위한 사업과 농어촌 지역의 어르신을 위한 사업 가운데 어느 것이 먼저냐고 묻는다면, 나는 단연 농어촌 지역의 어르신을 위한 사업이 먼저라고 할 것이다.
혹시 돈을 내고 탄다고 하더라도, 이미 지하철이라는 교통수단이 있는 것 자체가 (우리는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지만) 엄청난 특혜다. 소도시 출신인 내가 서울에 와서 가장 놀랐던 순간은 단연, 버스 시간을 확인하지 않고 그냥 타는 것이었다. 내가 다니던 학교에서 우리집에서 가장 가까운 버스정류장까지 가는 버스는 55분에 한 대 정도 있었는데, 가장 가까운 버스정류장조차 집에서 걸어서 15분 정도 걸렸다. 서울에서처럼 시간을 확인하지 않고 버스를 탈 정도로 자주 있는 노선이라면 거기에서 또 걸어서 10분에서 15분 정도를 더 가야 했다. 그런데 서울에 왔더니 아이들이 모두 "버스 시간을 확인하고 나가야지"라는 나의 말에 마치 외계어를 들은 듯한 반응을 보였다.
시골에서는 노령자의 이동권 자체가 없다. 요즘 뉴스에 나오는 100원 택시 이런 것이 호응을 받는 것이 그래서다. 100원으로 택시를 탈 수 있으니 시골이 더 좋지 않은가, 라고 말하는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비용을 지불한다고 하더라도 이동권이라는 것이 주어지는 자체가 중요하다.
한국은 이미 지나칠 정도로 서울로, 대도시로 집중화가 되어 있다. 그중에서도 서울로 대변되는 수도권 집중화의 문제는 벌써 심각하다고 할 수준조차 넘어서지 않았나 싶다. 그런데 여기에서 지하철 무임승차까지 지원해 주면서 서울을 더 살기 좋게 만든다고? 서울에 살고 있는 사람으로서 서울이 살기 좋아지는 것을 반대하지 않는다. 아니 당연히 그래야 한다. 공원이 많이 생기고, 도서관이 확충되고, 전철이 자주 다닌다면 그 혜택을 누리는 것은 나 자신이다. 심지어 노령자 지하철 무임승차를 지원해 준다면 그 혜택 또한 내가 입을 것이다. 내가 내는 세금이 그만큼 줄어드는 것일 것이기 때문이다.
국비로 노령자의 지하철 무임승차를 지원해 준다는 것은 약간 과장하면, 시골과 소도시의 사람들이 내는 세금을 모아서 서울에서 지하철 타시는 어르신들을 지원해 준다는 것에 다르지 않다. 서울에 사는 사람이 많으니 서울에서 내는 세금이 더 많을 거라고? 그렇다. 그렇게 아예 서울에서만 세금을 걷어서 그분들의 무임승차를 지원하면 된다. 국비로 지원한다는 것은 지방에서 내는 세금도 서울지하철 무임승차에 같이 지원된다는 뜻 아닌가.
100번을 양보해서 다른 광역시들만 해도 서울과는 여건이 천지차이이기 때문에, 수도권이 아닌 다른 지역의 지하철 무임승차를 지원한다면 그래도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지금 비수도권 대도시들의 경쟁력을 키우고 살기 좋게 해야 하는 국가적 사명을 가지고 태어났기 때문이다.(국민교육헌장 패러디임) 그러나 수도권은 아니다. 오늘날의 서울과 주변 위성도시들을 만들기 위해서 이미 지난 개발독재시대에 수많은 예산과 지원이 수도권에 집중 투입된 바 있다. 지금도 그래야 할 때인가? 아니다. 이제는 서울이 그 과실을 돌려주어야 할 때다.
나는 걱정된다. 이제는 지역감정이 문제가 아니다. 서울과 인천, 경기도에만 인구의 절반이 넘는 사람이 살고 있고, 정의로운 정책이라고 할지라도 수도권에 거주하는 사람들에게 손해되는 정책을 과연 펼 수 있을지 매우 염려된다. 우리가 노령자 지하철 무임승차 정책 자체를 폐기할 수 없는 것도 그것이 누군가에게 직접적으로 와닿는 정책이기 때문이며, 표의 손해로 연결되는 까닭이다. 지하철 무임승차 지원보다는 100원 택시 예산을 더 늘리고, 만약 농어촌에는 이미 충분히 늘렸다면 그걸 소도시까지로 확대하는 게 더 우선적일 것 같은데, 수도권에는 2,600만 유권자가 있고, 이들은 "지금 내게 좋은 것이 좋은 것"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우리 사회가 언제 정의에 대해, 평등에 대해, 공정에 대해 그렇게 깊이 있게 생각하고 논의한 적이 있었던가.
그래서 지금 나라도 이렇게 소리 높여 반대하려고 한다.
저는 서울에 살고 있지만, 노령자 지하철 무임승차를, 국가의 세금으로 지원하는 것에 반대합니다. 지하철 무임승차에 지원할 국가 예산이 있다면 지방의 이동권을 개선하는 데 더 먼저 사용해 주시고, 수도권 지역의 무임승차는 해당 지역의 예산으로 지원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