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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nest Jan 28. 2021

코로나19 검사를 받다

이 이야기의 시작은 지난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니 어쩌면 올해 초라고 해야 맞을지도 모르겠다. 새해가 밝으면서 팀장에게 건의했다. 지금처럼 매주 재택근무일을 정하는 건 예측도 잘 안 되고 불편하니, 그냥 한 사람이 일주일에 요일을 2개씩 정해서 하면 어떻겠느냐고. 그래봤자 세 명이니 한 사람이 하루만 더 늘어날 뿐이다. 떨떠름해 하면서도 재택근무가 언제 끝날지 기약이 없는 상태였기 때문에 팀장도 그렇게 하자고 했다. 그래서 내가 정한 요일은 수, 금. 재택근무 요일을 정하길 수 차례. 최고의 꿀조합은 수, 금이라는 결론을 내린 터였다. 그리고 지난주 금요일이었다. 팀 내 다른 두 명이 회의가 있어 모두가 월요일에 출근해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내게 재택근무를 월요일로 바꿀 수 있는지 물어왔다. 실제로는 재택근무일을 거의 반휴일처럼 보내고 있기는 하지만, 명목상 재택근무는 집에서 일하는 것일 뿐 회사에서 일하는 것과 동일하기 때문에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속마음은 영 내키지 않았다. 월요일에 재택근무를 하고 화-수-목요일을 모두 출근하면 목요일쯤에는 상당히 피곤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금요일과 월요일을 보내고 화요일이 되었다.


코딱지만한 회사이기 때문에 사실 입사동기랄 것도 없긴 한데 우리 사무실엔 나와 같은 날부터 출근한 직원이 한 명 더 있다. 지난 11월부터 1월 초순, 아니 중순까지 엄청나게 일이 많았던 동기 직원이 이 날 갑자기 조퇴를 한다고 했다. 몸이 좋지 않다며 병원에 가봐야겠다고. 체구에 비해 워낙 잔병치레가 많고 또 조금만 아파도 병원에 쉽게 가는 편이라 조퇴하는 일이 특별한 것도 아니라서 처음에는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내 일을 하고 있었다. 지난 몇 주간 시간을 엄청나게 한가하게 보냈던 까닭에 이번 주는 좀 바쁠 참이었다. 오후 3시부터는 계약 건이 있어서 외부에서 들어오신 분과 회의를 하고 있었다. 평소 같았으면 1초면 보았을 카톡을 1시간이나 지나고 나서 열었더니 이게 웬일. 동기 직원이 코로나19 검사를 받으러 간다고 했다. 뭔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다른 사람이라면 모르겠는데 이 사람이 코로나19 검사를 받는다고? 혹시 양성 나오는 거 아니야? 괜한 불길한 예감이 들었지만 설마 하는 마음이 더 컸다. 코로나19 양성률은 요즘 1% 내외다. 불길한 예감은 그저 불길한 예감에 머물지 않았을까.


그러나 사무실은 조금 어수선해졌다. 어쨌든 양성이 나올 확률이 없는 것은 아니니 동기 직원과 월요일에 점심을 먹었던 사람, 그 점심을 먹은 사람과 화요일에 점심을 먹은 사람, 또 이야기를 많이 나눈 사람 등등이 바로 조퇴했다. 인사 담당자에게 웃으면서 "저도 오늘 화장실에서 마주쳤는데 조퇴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하고 물었다. 택도 없는 이야기인 줄 알면서도 속으로는 불안한 마음도 없지 않았다. 회사가 작다 보니 화장실 크기도 작다. 그렇다고 화장실에 공기청정기가 놓여 있는 것도 아니고 환풍기가 계속 돌고 있기는 하지만 그게 얼마나 효과가 있겠는가. 가장 큰 걱정은 개수대가 하나라는 것이었다. 동기 직원이 양치한 곳에서 나도 이를 닦았다. 아닌가, 어쩌면 순서는 바뀌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도 늘 손을 씻는 곳이다.


코로나19 환자가 7만 명을 넘고, 검사를 받아 본 사람은 어림잡아 7백만 명이 넘을 것이다. 국민 7명 가운데 1명이라고 치면 진작부터 회사에도 검사자가 나왔어야 했다. 어느 순간부터는 내 주위에도 검사자는 꽤 있었지만 회사에서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아무리 작은 회사라고 해도 산술적으로 7명 중 1명이라면 우리 회사에서도 5~6명 정도는 검사 경험이 있어야 했는데 지난 1년간 너무 잠잠했다. 그렇게 우리 회사의 첫 코로나19 검사자가 탄생하는 날이었다.


"뭐, 별일 있겠어?"


불길한 예감이 없지 않았으면서도 실은 별일 없을 거란 생각이 더 컸다. 아니, 아예 생각을 안 하지 않았다고 보아야 맞을 것이다. 그런데 다음 날 출근길에 인사 담당자에게 카톡이 왔다. "honest야", "honest야", "너 괜찮지? 어디 아픈 거 아니지?" 이 말의 의미를 이해하는데 3초 정도 걸렸다. 양성이구나. 회사의 첫 검사자는 첫 확진자가 되었다. 제길. 일찍 출근하는 바람에 벌써 거의 회사에 다 와서 이 메시지를 받았다. '회사에 안 가도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잠깐 했지만 일단은 억울한 마음에 그대로 회사로 갔다. 회사는 엄청 어수선했고 다들 멘붕 상태였다. 일단은 보건소에서 사람이 나올테니 다들 기다리라고 했다. 어수선한 마음을 부여잡고 나는 내가 빨리 끝내야 하는 일을 했다. 이 일만 잘 끝내 놓으면 집에 가서 쉴 수 있도록. 그러던 중 인사 담당자가 출근했고, 모든 직원을 집으로 보냈다. 코로나19 검사를 꼭 받고 결과를 알려 달라는 말과 함께.




부끄럽게도 나는 코로나19보다 그 검사가 더 무서웠다. 콧구멍 정도가 아니라 코 깊숙히 무언가를 찌르는 그 느낌이 너무 싫을 것 같았고 또 두려웠다. 나는 코가 약해서 코피도 자주 나는 편인 데다가 '아니 도대체 얼마나 깊숙하게 찌르는 거야?' 하는 생각을 많이 했기 때문에 흔히 '검사를 받아야 할 상황이 되면, 나는 그냥 양성이라 치고 격리해 달라고 할 거야' 이야기하고는 했다. 여기에 불을 지른 것이 주위의 코로나19 검사자들이었다. 다 큰 성인들인데도 '아프다', '눈물 난다', '다시는 하고 싶지 않다'는 반응을 많이 보였고, 이런 경험자들의 말은 두려움을 더욱 키웠다. 그런데 막상 이 상황에 닥치자 검사보다 코로나19가 무서웠다. 운 좋게도 나는 동기 직원과 화요일의 반나절 정도만 사무실에 같이 있었을 뿐이었다. 생각지도 않게 월요일에 재택근무를 했던 덕분이다. 그런데 그 반나절 정도의 시간조차도 온갖 것이 다 염려되었다. '화장실에서 양치한 뒤에 나도 바로 양치했으면 어쩌지?' 아, 따져 보면 같은 팀도 아니고 같이 점심을 먹은 것도 같이 차를 마신 것도 아니라서, 저것 하나가 가장 큰 걱정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사람이 양치를 하는 동안에는 비말이 엄청나게 튈 것이고, 분명히 화장실을 나가는 문에서 마주쳤던 터라 염려가 쉽게 사그러들지 않았다.


잽싸게 짐을 챙기고 회사를 나섰다. 이렇게 이른 시간에 퇴근(?)해 보기는 처음이었다. 코로나19에 감염되었을 수 있으니 대중교통은 이용하지 말고 택시로 이동하라고 했다. 어쩔 수 없이 택시를 잡아 타면서도 택시기사 아저씨께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내가 확진이면 이 아저씨는 무슨 죄란 말인가. 그런데 택시를 타지 않고서는 나도 집에 갈 방법이 없다. 4시간을 걸어 갈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적고 보니 가능은 하겠구나.) 그래도 뉴스를 잊지 않고 챙겨 본 터라 집 근처 검사소가 어디어디에 있는지는 알고 있었다. 병원으로 갈까, 임시검사소로 갈까, 여러 가지로 고민하면서 친구들에게도 이 소식을 전했다. 한 친구가 병원은 조금 혼잡할 수도 있지 않을까 말해 주어 임시검사소로 정했다. 검사를 받으러 가면서 걱정했던 것은 검사소에서 코로나19에 옮으면 어떻게 하지 하는 생각이었다. 다른 어느 곳보다도 확률적으로 코로나19 환자가 많이 있거나 혹은 다녀갔을 곳이다. 검사를 받았던 많은 아이들도 집에 도착하자마자 입고간 옷을 모두 빨고 바로 샤워를 했다는 이야기를 전했던 터였다. '나는 어떻게 하지?' 온갖 생각을 하고 있는 중에 임시검사소에 도착했다.


걱정은 일이 생기면 그때 해도 충분하다. 임시검사소는 완벽하게 개방된 형태여서 여기에서는 코로나19가 옮을 수가 없을 것 같았다. 하루종일 밖에서 일하셔야 하는 분들은 너무 춥고 힘드실 것 같았고, 만약 내가 검사를 받기 위해 대기해야 했다면 나 또한 그것이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코로나19가 절대 옮을 수 없는 환경이었다. 설문지를 작성하는 곳에서부터 검채를 채취하는 곳까지 모두가 다 완벽하게 개방되어 있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어제 내가 갔던 임시검사소에 왔다면 내 검채를 채취하는 장면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실제로 내 검채를 채취하고 다음 분이 하는데 어떤 아저씨가 친구의 검채 채취를 보면서 깔깔대며 웃었다. "우와, 여기는 진짜 깊숙히 넣네!" 또 다행이었던 것은 수도권은 코로나19 대유행이 한 번 지나간 다음이라 대기자가 한 명도 없었다. 도착하자마자 바로 설문을 작성하고 설문 작성이 조금 지체되었다 해도 대기자가 없다 보니 앞사람이 금방금방 진행되어 정말 1분(아니 30초?)도 기다리지 않고 바로바로 진행할 수 있었다. 다만 서운했던 것은 나는 타액으로 코로나19 검사를 받고 싶었다. 그런데 의뢰서에는 PCR검사 한 가지로 고정되어 있었다. 두 장의 설문지 가운데 한 장에는 PCR, 타액, 신속키트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처럼 쓰여 있었지만, 내 검사 결과를 의뢰할 곳에 보낼 서류에는 PCR 검사 하나만 가능했다. ㅠ.ㅠ 겁이 났지만 코로나19에 혹시 걸렸을지도 모른다는 공포는 이 모든 두려움을 이겨 냈다. 한 가지 머리를 썼던 게 고개를 뒤로 많이 젖히면 좀 괜찮지 않을까 싶었던 것이었는데, 검채를 채취하시는 분이 "그냥 가만히 계세요." 하는 바람에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검채 채취는 정말 쏜살같이 지나간다. 그렇게 아프지 않았다. 역시 미지에서 오는 공포가 가장 크다. 막상 해 보니 별 것 아니었다. (다신 안 하겠다고 한 친구들은 나보다도 더한 쫄보인가.) 다만, 눈물은 정말 났다. 왜 그런지 모르겠는데 아파서도 아니고, 뭣도 아니었지만 눈물이 정말 찔끔났다. 그리고 솔직하게 다시 하고 싶은 경험은 아니긴 하다. ㅋㅋㅋ




나는 결과를 통보받기까지 거의 24시간 가까이 걸렸다. 어제 아주 이른 시간에 검사를 했던 까닭이다. 같은 검사소에서 검사한 인사 담당자의 경우에는 나보다 6시간 정도 덜 걸려서 검사 결과를 받았다. 아마도 그날 하루종일 검사한 사람들을 모두 모아서 한 번에 통보하지 않았나 싶다. 조금이라도 일찍 가면 결과도 조금 더 일찍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 허사였다.


(자, 여기에는 꿀팁이 있습니다.)


이미 검사를 받은 뒤에 뒤늦게 친구가 알려 주긴 했는데, 여의도 성모병원에서 일하는 친구 말로는 본인이 일하는 병원에서 11시 이전에 검사를 받으면 오후 2시면 검사 결과를 알려 준다고 했다. 강북 삼성병원에서 검사받은 직원도 나보다 훨씬 늦게 검사받았는데, 당일 오후 4시에 바로 검사 결과를 알았다. 임시검사소보다 큰 이런 대형 병원들에서 검사를 받으면 결과를 좀 더 일찍 알 수 있는 것 같다. 단, 아침 일찍 검사받을 게 아니라면 임시검사소도 별로 상관이 없다. 사무실의 인사 담당자는 오후 3~4시 정도에 검사해서 오늘 아침 9시 전후로 결과를 통보받았으니 자는 시간을 제외하면 또 그것도 아주 오래 걸린 시간은 아닌 셈이다. 다만 대학병원 같은 경우는 사전 예약자만 검사를 할 수 있는지까지는 잘 모르겠다. 이건 알아봐야 할 것 같고, 용인 세브란스 같은 경우에는 비용을 내야 한다고 말했다는데, 사무실에 확진자가 나와서 검사받는다고 하면 비용을 제해 주는지 여부는 확인하지 못했다.


집으로 돌아와 검사 결과를 통보받기까지 두려움의 연속이었다. 화요일에 운동을 해서 근육통이 있었는데, '혹시 코로나 때문 아니야?' 하는 생각이 들었고, 내가 냄새는 잘 맡고 있는지 입맛은 잘 느껴지는지 자꾸 확인하고 싶었다. 다행히 열은 없는 것 같았지만 회사 화장실의 이미지가 계속 머리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개수대가 두 개만 해도 걱정을 덜했을텐데. 그 정도로 쉽게 전염되지는 않겠지 싶다가도, 바이러스라는 것이 워낙 작은 생명체니 또 아주 작은 하나라도 내 몸에 들어와서 벌써 증식했으면 어쩌나 하는 염려가 다시 일어나고는 했다. 그동안 나는 코로나19와 관련해 항상 큰소리치는 사람이었다. "걸릴 놈은 어떻게 해도 걸리고, 안 걸릴 놈은 어떻게 해도 안 걸린다"고 했고, 마스크도 실은 남 눈치를 보지 않았다면 나는 안 썼을 것이다. 너무 불편하기도 하고, 정말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넘치는 환경에서는 마스크 하나가 뭐 얼마나 큰 도움이 되겠냐는 쪽이기도 했다. 그러나 막상 이런 상황에 닥치니 그동안 안이하게 대처했던 것들이 모두 후회되었다. '화장실 환풍기가 약하면 문이라도 활짝 연 다음에 들어갈 걸', '탕비실에서 물 마실 때 물을 떠서 나와서 밖에서 마셨어야 했는데', 출근한 뒤에 사무실에서 마스크를 바꿔 쓴 순간까지도 돌아보게 되었다. 역시 사람은 아무 때나 큰소리치면 안 되는 법이다.




다행히 사무실의 모든 직원이 음성으로 나왔다. 같이 식사를 한 직원도, 같이 커피를 마신 직원도. 내가 방역 전문가는 아니지만 확진 판정을 받은 동기 직원조차 코로나19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다. 열도 없었다는 뜻이고 흔하게 알려진 증상이 아무 것도 없었다는 뜻이다. 그러나 몸이 좋지 않아 갔던 병원에서 검사를 권했고 덕분에(?) 코로나19가 조기 발견되어 사태가 커지기 전에 무사히 잘 수습되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항상 보면서 나는 병원을 너무 자주 다닌다고 생각했다. 내 경우에는 스스로의 면역력을 좀 과신하는 편인데, 아니 과신한다기보다는 이겨 내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인데 이 분은 병원을 너무 쉽게, 너무 자주 간다. 남의 삶이라 뭐라 할 수는 없지만 이번에도 나는 그냥 '하루 쉬면 괜찮아질텐데'라고 생각했었는데, 건강 염려증도 이럴 때 또 다 도움이 되었구나 싶다. 한편으로는 돌아보게 된다. 만약 나였다면 아마 조퇴할 생각도 안 했을 것이고, 집에서 하루이틀 좀 푹 자고 잘 먹으면 괜찮아졌을 거라고 여겼을 것 같다. 그랬다면 결과는 아마 지금보다 훨씬 안 좋아졌겠지... 과도한 건강 염려증도 병이긴 하지만, 나처럼 웬만해선 병원에 가지 않으려는 습관도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그렇게 좋지 않지 싶다.


하루 동안 쫄보였던 나는 다시 '역시, 코로나19가 그렇게 쉽게 걸리는 병은 아니지' 하는 태도로 돌아왔다. 그러나 바이러스는 생각보다 아주 가까이에 있었다. 쉽게 걸리는 병이 아니라고 해도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고, 앞으로는 사무실에서 마스크를 착용하는 것을, 불특정 다수를 접촉하는 일을, 무엇보다 화장실을 갈 때 무척 조심해야 하지 싶다. 실은 그동안에는 사무실에서 마스크를 계속 쓰는 게 답답해서 화장실에 아무도 없을 때면 마스크를 내리고 있기도 했다. 큰일날 뻔했다. 나는 동기 직원과 같이 밥을 먹은 것도, 차를 마신 것도, 옆자리에 앉은 것도 아니었지만 결국 그 습관 때문에 하루종일 마음을 졸였던 것 아닌가.


어쩌면 내가 코로나19에 걸렸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걸리지 않았더라도 회사에서 확진자가 여럿 나와서 집에 보름 동안 갇혀 지내야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마스크와 함께하는 일상이지만 지금의 이 일상마저도 얼마나 소중한지 다시 돌아보게 된다.


코로나19는 멀리 있지 않았다. 내게 아주 가까운 곳에서 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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