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어떤 사람들의 이별과 또 죽음과 사고를 다루고 있습니다. 불편하신 분들은 뒤로 가기를 눌러 주세요.
지난 연말 한 형님(왜 형이 아니라 형님인지는 아래에)의 사무실을 방문했다. 어차피 카페에서 취식이 불가능하다 보니 형님과 함께 카페에서 차를 받아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는데, 형님께서 얼마전에 친구들과 다녀온 여행 이야기를 하시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요즘 친구들이 너무 좋다며, 앞으로도 자주 다닐 생각이라고 했다. "그렇게 자주 친구분들과 여행을 다니신다니 형수님께서 마음이 엄청 넓으신가 본대요." 돌이켜 보면 그때 형님의 미소가 꽤 의미심장해 보였다. 사무실 안에서 같이 차를 마시던 도중에 형님께서, "honest야, 근데 너 내가 혼자 된 거 모르냐?"고 질문을 던지셨다. '아, 그런 일이 있었구나!' 형님께서 혼자 되신 것은 벌써 한두 해의 일이 아닌 듯했다. 예전에 모임에서 한 번 다른 누나가 혼자 된 이야기를 꺼내며 펑펑 울길래 본인도 굳이 하려고 하던 것은 아니었는데 위로하려고 그 얘기를 꺼내셨다고. 그러면서 나는 그 자리에 없었나 보다고 하셨다. 그랬다. 나는 그 자리에 없었다. 실은 그 누나가 혼자 된 이야기도 그 후에 다른 선배에게 전해 들었다. 그 누나 앞에서 누나의 부부 이야기는 하지 않으면 좋겠다면서.
해가 바뀌어 이제 환갑을 2년 앞둔 형님은 아마도 형수님과 삶의 절반 이상을 함께하셨을 터다. 그 사이에 두 딸은 장성해서 큰딸은 벌써 회사에 다니고 있고, 작은딸도 이제 곧 대학교 3학년이 되지 싶다. 형님께서는 상처가 꽤 큰 것 같았다. 결혼할 때의 성혼선언문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힘들 때나 아플 때나 항상 곁에" 있겠냐는 물음. 그런데 형수님께서는 형님께서 경제적으로 어려움에 부닥치셨을 때를 견뎌내지 못하셨고, 결국에 두 부부는 갈라서고 말았다. 본인이 가장 힘들 때, 가장 믿었던 상대로부터 배신당했다는 생각이 아마도 형님을 더 힘들게 하지 않았나 싶다. 사연을 듣는 나도 참 안타까웠다. 그때 한 1년만 잘 버티셨다면 아마도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다시 잘 살 수 있었을텐데.
'님'이라는 글자에 점 하나만 찍으면 '남'이라지만 반평생을 함께 살아온 형님네 부부가 그렇게 갈라섰다는 이야기는 내게 무척 충격이었다. 그날 나는 다른 약속도 있어서 형님의 사무실 근처를 갔던 터라 형님만 만나고 온 것은 아니었는데, 형님의 그 결별 고백에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아니 한 며칠 동안 무척이나 마음이 불편했던 기억이 난다. 평생을 함께할 반려자라고 생각했지만, 그리고 한두 해도 아니고 30년 이상을 그렇게 같이 살았다면 아마도 충분히 영원히 함께할 줄 알았을텐데 이렇게 한순간에 남이 될 수 있구나. 물론 형님네 부부는 극단적인 상황에서 갈라진 것도 아니고 앞으로 딸들의 결혼이나 다른 집안일 등으로 여전히 만날 일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더 이상은 부부가 아니다. 그리고 모두가 알고 있겠지만, 이런 일도 더 이상 세상에 전혀 드문 일이 아니다.
며칠 전 엄청 충격적인 기사를 보았다. 남편이 교통사고로 사망하고 장례를 치른 뒤에 부인이 두 아이를 죽이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다. 가장의 공백이 경제적으로 상당한 어려움을 야기할 수도 있다는 걸 모르지 않기 때문에 처음엔 그런 사고일 줄 알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뒤따른 부인도 공무원이었다. 남편의 유족 연금도 나올텐데 이렇게 되면 결코 사인이 경제적 이유는 아니다. 다른 사람의 집안 사정은 내가 명확히 알 수 없지만, 그리고 정말 발칙한 생각일 수도 있는데 기사를 보면서 나는 오히려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사람이 없으면 죽을 것 같고, 이 사람이 없으면 내 삶에 의미가 없을 지경이 되는 그런 부부관계, 그런 삶과 인생은 오랫동안 내가 꿈꾸었던 것이었기 때문이다. 실은 그런 광경을 그린 적도 많고. 같은 기사를 읽으면서 사람마다 다른 생각을 하겠지만 나는 그 사람들이 사는 동안 얼마나 행복했을지가 그려졌다. 떠나기 전의 마지막 며칠은 정말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함께 사는 동안 그 부부는 얼마나 행복했을까. 아이들과의 관계도 물론 좋았을 것이다.
나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 일인데도 스스로 많은 생각을 되뇌이게 하는 기사였다. '아름다운 관계가 꼭 항상 가장 아름다운 결말을 가져오지만은 않는구나...' 불과 며칠 전만 해도 정말 행복하고 서로 사랑하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가정이었을텐데 그것이 도리어 굴레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생각이 정말 많아졌던 건, 바로 그게 내가 꿈꾸었던 삶이라는 것이었고, 또 생각을 멈출 수 없었던 건 안타깝게도 나는 현재 그런 관계 속에서 살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늘 내 삶이 현재에 행복하지 않은 것이 큰 불만이었다. 완벽한 부부 사이가 내 삶에 가장 큰 희망사항이었고 바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그리고 그것이 꼭 나 때문인 것 같아서 늘 불만이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하게 그런 완벽한 부부 사이가 도리어 파국적인 결말을 불러왔다는 기사라니. 세상엔 정말 늘 좋기만 한 일도, 나쁘기만 한 일도 없구나.
평생 내게 3번의 기회가 있다면, 그중 절반은 결혼에 쓰겠다고 마음먹었었다. 어찌어찌하다 보니, 어찌어찌해서 지금의 아내와 결혼하게 되었고 남들처럼 그냥 평범하게 살고 있지만, 실은 내가 인생의 기회 가운데 절반을 쓰겠다고 생각했던 건 이런 결혼 생활이 아니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당장 어떤 큰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저 다만 이 사람이 없다고 서로 죽고 못 살 정도는 아닐 뿐.
그러나 이 사람이 없으면 내가 죽고 못 산다는 그런 마음은 두 사람 사이에, 아니 삶 전체에 많은 것을 가능하게 한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힘들 때나 아플 때나' 모든 순간을 이겨낼 수 있도록 돕고, 그리고 그 과정에서의 어려움을 함께 견뎌내도록 한다. 지금 나와 아내에게는 큰 어려움도, 큰 질병도, 큰 시련도 없기 때문에 그저 그냥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지만, 만약 우리가 어떤 신의 시험에 들었다고 했을 때, 그때도 우리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지금처럼 살아갈 수 있을까. 실은 나는 그것이 무척 궁금하고, 그때도 우리의 관계가 지금과 같을 수 있을지에 대한 자신이 없다.
사람은 살면서 다양한 어려움과 시험에 들게 마련이지만, 대개의 경우는 그래도 극복할 만한 것들이고, 그렇게 힘든 삶의 분기점이 될 것 같은 시련은 흔하지 않다. 그래서 대부분은 그냥 그렇게 무던하게 사는 것이다. 아마 내 삶도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살고 싶다. 큰 어려움 없이 평범하게 다른 사람들처럼 무던하기보다는, 내가 더 힘든 시련과 괴로움을 겪더라도 그 과정을 함께 견뎌내고 서로 북돋아주며 위로할 수 있는 사람이 곁에 있다면 그 삶이 훨씬 더 행복하고 의미 있는 삶이 아닐지. 그래서 그런 삶을, 그런 부부 사이 속에서 살아보고 싶다.
어쩌면 아직 그다지 큰 어려움도, 시련도 겪어 보지 못한 젊은이의 철 없는 망상, 배부른 소리일지도 모르겠다. 오늘날의 여러 부부들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어 하는 소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