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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nest Jan 13. 2021

이별 연습

달달한 사랑 이야기를 기대하고 오신 분께는 죄송하다. 이 글은 무미건조한 사회 생활 이야기다.


9년쯤 전인가. 나는 나의 인생 계획(?)대로 첫 회사를 퇴사하기로 마음 먹었다. 내가 고민했던 3차례의 퇴사 시점이 있었다. 대학원 복학과 맞춘 것이었는데, 첫 번째는 회사를 3개월 정도 다녔을 때였고, 그다음은 9개월 정도 지났을 때였다. 그러나 내가 실제로 퇴사 선언을 한 것은 입사 후 1년 정도가 되어서였다. 사실은 첫 번째 시점에서가 가장 힘들었다. 회사 내의 다른 여직원(단순히 여자 직원의 줄임말입니다.)들이 내게 어떻게 견디며 회사를 다니냐고 할 때의 그 시점이었는데, 막상 나는 그런 상황에 처하자 뭔가 지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 생활을 잘해야만, 인정받아야만 다른 곳에 가서도 성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또 나를 강하게 훈련시키는 사수만큼이나 내게 잘해 주는 사람도 적지 않게 있었다. 아니 정말 많았다. 3개월만에 사회 생활을 맛보았다고 하기에는 너무 짧게 느껴졌다. 최소한 한 학기는 더 버텨 보자고 생각했다. 그렇게 해서 9개월 정도가 지났을 때는 회사 생활에 아주 물이 올랐을 때였다. 1년만 다니기로 마음 먹었던 회사 생활이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었고, 결국 나는 1년을 채워야겠다고 생각했다. 대학원 복학에 맞추었다는데, 9개월 다녔을 때와 1년 정도가 지난 시점은 3개월 차이밖에 나지 않는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일까?!


아무리 회사 생활이 즐거워도 1년 다닌 뒤에는 학교로 복귀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3개월, 9개월의 시점을 겪고 나니 내가 이 회사에 퇴사를 통보하고 그만두는 것이 그렇게 쉬울 것이라는 자신이 들지 않았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조기 통보였다. 나는 나름대로 이별의 시간을 길게 둠으로써 조금씩 이별을 연습해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그리고 그 시간은 짧으면 짧은 대로 일찍 회사를 그만두고 쉴 수 있어서 좋았고, 길다고 하더라도 3개월 이내에야 끝내고 회사를 나갈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이별을 연습한다면 괜찮지 않을까, 했던 것은 세상에서 가장 이별에 익숙하지 못한 나의 여전한 오만이었다.




입사하고 1년이 지나 10월이 되었다. 이제는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나에게 잘해 주던 사람들에게 너무나도 미안했고, 실은 나도 회사 생활이 무척 즐거웠다.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나의 결심과 실제로 즐거웠던 나의 감정과 생활 사이에 엄청난 괴리가 있었다. 결국 마음이 너무 힘들었다. 하루가 다르게 얼굴이 검은빛으로 변했고, 또 누가 봐도 내게 문제가 있어 보였다. 점점 주위 직원들이 나를 걱정하기 시작했고, 그런 나를 걱정하는 모습에 나는 더 입을 뗄 수가 없었다. 마침 벌써 어느 시점부터는 나를 강하게 훈련하던 사수도 실은 내게 별다른 터치가 없었던 터였다. 사실 나는 그 누구보다도 좋은 환경에서, 그 누구보다도 편안하게 회사를 다니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도 왜 그만뒀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나의 큰 꿈(은 개뿔)을 위해 학교로 돌아와야 했고, 더 이상은 미룰 수 없는 시점이 되었다. 결국, 그날은 오고야 말았고 나는 한 주 전부터 천천히 계획을 세웠다. 내가 퇴사한다는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해야 할 순서를. 우선, 처음엔 바로 위 맞선배와 동갑내기 팀 동료였다. 아마 일주일도 더 일찍 계획을 세웠던 것 같다. 나와 같이 셋이서 점심을 먹기로 약속까지 잡았다. 어느 식당을 갈까도 미리 생각했던 것 같다.(쓸데없이 이런 데에 치밀하네.;;;) 점심을 먹으며 선배와 동갑내기 팀 동료에게 나의 퇴사 계획을 말했다. 다들 모두 무척 놀란 눈치였다. 나중에 선배에게 들으니 동갑내기 팀 동료는 엘리베이터에 거의 눈물을 흘릴 뻔했다고까지 말해 주었다.(도대체 이런 회사를 왜 나왔냐.;;;) 두 사람에게 내가 모두에게 직접 이야기할테니 꼭 비밀로 해 달라고 신신당부한 상태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입이 말랐다. 그리고 퇴근 시간이 되어서는 가장 가깝게 지내던 팀 내 두 명의 여직원을 로비로 불러서 차를 한 잔 하자고 하며 퇴사 계획을 말했다. 두 사람 모두 망치로 한 대 맞은 것 같다는 반응을 보였고, 안 그래도 내가 요즘 너무 힘들어 보였다며 그래서 퇴사하는 것이냐고 물었다. 사실은 그게 아니었다. 나는 나를 아끼는 사람들에게, 내가 사랑하고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퇴사를 이야기해야 해서 힘들었던 것이다.


그런데 여직원 두 명과 이야기하는 사이에, 그런 일이 흔하게 있지 않은데 사수가 정말 칼퇴근을 해 버렸다.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메일로 이야기해도 된다는 사수에게 나는 기어코 꼭 뵙고 말씀을 드려야 한다고 우겼고, 퇴근한 뒤 바로 버스를 타고 사수의 동네로 향했다. 커피숍에서 만난 사수에게 나는 정말 죄송하지만 회사를 나가야겠다고 이야기했다. 사수는 단단한 사람이었다. 알았다며 비밀로 할테니 다시 잘 생각해 보라는 말을 남기고 다음 주에 다시 보자고 했다. 그리고 다음 날, 퇴근시간에 내가 퇴사를 알렸던 여직원이 전날 사수가 엄청나게 과음한 것 같다고, 내가 퇴사한다고 얘기한 때문인 것 같다고 했다. 사실 회사를 다니는 동안 나는 사수와 아주 잘 맞는 사이는 아니었다. 그러나 나는 지금도 사수에게 엄청난 인생의 빚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필 내 바로 앞 직원이 3개월만에 퇴사하는 바람에 우리 팀은 공채 출신을 거의 받지 않는데, 내가 들어오게 되었다. 3개월만에 신입을 내보낸 터라 어찌 보면 나는 금이야 옥이야 하며 오래도록 데리고 있으려고 했는데, 그리고 아마도 어느 정도 성공했다고 생각했는데, 나 또한 1년만에 회사를 나가겠다고 한 것이다.


그렇게 나는 10월의 어느 날, 사람들 모두에게 퇴사를 통보했다. 그러나 실제로 그 회사를 그만둔 것은 다음 해 6월이었다. 무려 만으로 7개월도 더 넘은 시점에. 어쩌면 이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퇴사예정자였을지도 모른다.




나는 모든 사람에게 마음의 빚이 있었고, 어느 정도 그 빚이 해소될 때까지는 회사를 다닐 생각이었다. 학교 복학은 다음 해 3월에만 하면 되었으므로, 넉 달 이상의 여유가 있었다. 마침 그때 사옥 이전이 예정되어 있었다. 우리 팀은 따로 창고가 있어서 짐이 매우 많았는데, 남자 사원이 나뿐이었다. 남자가 90%가 넘는 회사에서 우리 팀은 사내 최고의 성비를 자랑하는 팀이었다. 그런데 이것은 반대로 이야기하면, 다른 팀에는 같이 일할 남자가 넘쳐나는데, 우리 팀엔 나뿐이라는 이야기도 된다. 그래서 나는 사옥 이전을 미안함을 더는 큰 기회로 여겼다. 사옥 이전은 내가 퇴사 통보를 하고도 거의 두 달이 지난 뒤에야 있었는데, 사옥을 이전하고 짐을 풀던 주말, 드디어 팀장님께 "팀장님. 저 이제 나가도 되지요?"라고 말할 수 있었다. 그때가 12월 중순이었다. 이제부터 한 달 정도 인수인계하면, 무리없이 복학하는 시점까지 회사를 나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다시 생각해도 정말 고마운 사람들이고, 정말 좋은 회사였다. 이후로도 팀장님은 내게 퇴사와 관련된 이야기를 꺼내지 않으셨고, 다들 진심을 다해 나를 붙잡으려고 애써 주었다. 심지어는 인사팀마저 나섰는데, 인사팀으로 오면 어떻겠느냐는 제안도 들었다.(그 제안을 받았어야 했는데.) 사실 그 제안은 정말 매력적이었다. 그런데 나는 얼토당토않게 지금 지내는 팀원들에게 미안해서 그 제안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지금 생각해도 참 어렸다.(서른이면 어린 나이는 아닌데...) 그렇게 점점 시간이 흐르고 나는 인수인계를 거의 못한 채로 2월을 맞이했다.


그 사이에 내가 회사를 나가면 휴직하려던 대리님께서 먼저 휴직에 들어갔고, 팀장님께서는 3월이 되어서야 후임을 뽑겠다고 이야기를 하시면서 사수가 나서서 인수인계를 대신 받아주기 시작했다. 3월엔 개강이어서 나도 더는 퇴사를 미룰 수 없었는데, 이때 팀장님께서 하셨던 가장 충격적인 제안은 대학원은 학교에 매일 갈 필요가 없으니 그냥 일주일에 3일만 출근하고 회사에 다니면 안 되냐는 것이었다. 3일을 출근해도 어차피 할 일은 다 하지 않겠냐는 것이다. 나는 인생의 많은 기회를 그 회사에서 날려 버렸다는 생각을 하는데, 사실 이런 제안은 받기가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물론 내가 회장 조카도 아니고(실제로 우리 팀에 회장 조카가 있었다.), 팀장님께서 그렇게 제안하셨다고 해서 그렇게 할 수는 없었을 거다. 그러나 정말 고마운 말씀이기도 했고, 그렇게 어떻게든 학업과 회사를 병행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 보자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그렇게 나는 이별에 조금씩 익숙해져 가고 싶었지만, 날이 갈수록 점점 더 수렁에 빠져드는 기분이었다.


이때 나는 지금도 이불킥하게 되는 인생 최악의 실수를 저지르는데, 막상 퇴사일이 다가오자 마음이 너무 불안하고 심란하여 결국에 휴직을 하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받아들이고 만 것이었다. 개인 사유로 할 수 있는 휴직 기간의 최대는 2개월이었고, 나 또한 그렇게 하기로 했다. 실은 2개월이면 한 학기가 거의 끝난다는 계산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 결정에 대해서는 바로 다음 날부터 후회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내가 지금보다 훨씬 크고 잘난 사람이라는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나는 이 작은 회사에 얽매여 예정되었던 퇴사를 하지 못하고 결국 휴직 제안을 받아들인 것이었다. 나는 이 작은 것도 포기하지 못하는 내가 정말 혐오스러웠다. 함께 회사를 다녔던 분들께는 죄송하지만, 나는 정말 휴직 즉시 그 결정을 후회했고 실제로 내게는 2개월 동안 고민해 볼 시간이 주어진 것이었지만, 사실 나는 휴직하기로 한 바로 다음 날부터 다시금 퇴사의 마음을 바로잡았다. 그럴 것 같았으면 휴직을 하지 말았어야 했다. 도리어 나는 나의 퇴사를 말리는 직원들에게 한 번 더 상처를 준 것이나 마찬가지였고, 지금도 내가 꼽는 나의 가장 최악의 선택이다.




무척이나 장황하게 적었지만, 실은 요는 아주 간단하다. 이별에 서툰 나는 오랜 시간 동안 이별을 계획하고 사람들과 조금씩조금씩 거리를 두면 그래도 이별이 조금은 수월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했었다. 돌아보면 이런 극단적인(? 그래도 이후로도 휴대 전화로 계속 연락할 수 있었는데? 심지어 이때는 카카오톡도 나왔을 때였다.) 이별을 해 본 적이 없었던 것도 아니었다. 남자들은, 또 일부 여자들은 경험해 보았겠지만 군대에 가게 되면 모든 사회적 관계, 심지어 가족 관계마저 일거에 단절된다. 그런 경험도 해 본 적이 있었으면서 나는 이때 회사를 떠나며 헤어지는 것에 왜 이렇게 두렵고 서운해 했었는지 모르겠다. 실은 군대도 쉽게 가진 못했다. 그렇게 사람들에게 작별을 고하고 군대에 간다는 것이 나에게는 영 쉽지 않았고, 2학년 중반부터 고민했지만 끝내 미루고 미루다가 결국에는 졸업한 뒤에, 그것도 1년이 더 지난 뒤에야 가지 않았던가. 아마 그 또한 지금처럼 물리력으로 강제된 것이 아니었다면 그렇게 쉽게 떠날 수 있었을지 모를 일이다.


그런데 이별은 연습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었다. 나만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는 떠나기 전의 사람과 마지막으로 추억을 쌓으며 시간을 보낸다. 학교를 졸업하는 것처럼, 군대처럼 그 이별이 물리적으로 강제될 수밖에 없는 것이면 어떤지 모르겠지만, 마지막으로 추억을 쌓는 그 시간은 이별을 결심하기를 더욱 괴롭게 만들었다. 한 번 더 삼천포로 빠지면 예전에 대학 후배는 '이별 여행'이라는 말에 거품을 물고 비판을 쏟아내었다. 어차피 헤어질 것인데 이별 여행이라는 것이 가당키나 하냐는 것이었다. 도리어 추억만 쌓여서 더욱 힘들게 되지. 나는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뭔가 해 보는 데까지 해 봐야 아쉬움이 없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돌이켜 보면 그 후배의 말이 맞는 말이었다. 그리고 퇴사하기까지 나의 몇 달 동안의 기나긴 이별 연습 또한 실은 가당치 않은 일이었다.




나는 회사를 나왔지만 여전히 그때의 동료들과 연락을 주고받고 자주 만나며 지낸다. 어찌 보면 그 회사를 다니고 있을 사람들보다도 더. 그 회사가 내 첫 회사여서 그런 것도 물론 있을 것이고, 함께 지냈던 동료들이 워낙 좋은 사람이었기에 더욱 그럴 것이다. 이 좋은 사람들과 이별하고 헤어져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 섭섭하고 서운해서 나는 수 개월의 시간을 들여 조금씩 거리를 두어 보려고 했지만 헛일이었다. 또 생각해 보면 실은 그때도 퇴사를 하더라도 회사 동료들과 연락을 끊을 생각이 전혀 없기도 했다. 회사 동료들과 그나마 지금만큼이라도 거리를 두게 된 것은 내가 어설프게 2개월 휴직이라는 잘못된 선택을 함으로써 그로 인해 얼굴을 들 수 없어 조금 멀어지게 되었던 것이다. 실은 그것이 아니었다면 나는 "회식 때 불러 주세요", "연수 갈 때 저도 불러요" 라고 할 생각이었다. 또 어쩌면 실제로 그렇게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고.


사실 나는 회사를 그만둘 때도 알고 있었다. 우리가 헤어진다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이후에 그 사람과 보내는 시간과 또 관계의 유지라는 것을. 어쩌면 이제는 나이를 9살 더 먹은 만큼 작별에도 더 익숙해져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그래서 나는 이 사람과의 헤어짐이 예전처럼 그렇게 너무 서운하지만은 않다. 물론 서운하다. 함께 생활하던 사람과 헤어지게 된다는 것은 이제 우리가 더 이상은 일상을 공유하지 못한다는 뜻이며, 같은 관심사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어쩌면 덜 서운한 것은, 이후로는 그만큼 정을 붙이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이유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아무튼 간에 그래서 이제는 이별을 연습하기보다는 이별 이후에 어떻게 하면 더 잘 지낼 수 있을까를 많이 고민하려고 하는 편이다.


무엇이든 간에 미리 걱정한다고 해서 되는 일은 하나도 없다. 물론 뭐 세상에 쓸모없는 걱정만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내가 이 사람과 헤어지겠구나' 하는 생각과 실제로 헤어지고 났을 때의 감정은 완전히 다르다. 우리는 결코 이성만으로 사는 존재가 아니기에, 머리로는 '이렇게 하는 것이 맞겠다' 라고 한참을 생각할지 몰라도, 실제로 부닥친 감정은 전혀 다른 형태로 나타나곤 한다. 나는 이별을 멋있게, 잘 하고 싶었고, 사람들과 멋지고, 시원하게 헤어지고 싶었다. 나 자신이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지 못하다는 것을 더욱 잘 알고 있었기에 그래서 더욱 오랜 시간을 들여 이별을 연습하려고 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이별은 연습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이별을 연습하는 기간 동안 주고받는 서로에 대한 아름다운 말들은, 지난 시간 동안 섭섭했던 감정마저 잊게 해 줄 정도였다. 떠나는 자에게는 누구나 다 좋은 말만 한다. 결국 이별 연습이란 아무 의미가 없었다. 도리어 이별을 더 힘들게만 만들었을 뿐. 생각해 보면 내게 필요한 것은 이별 연습이 아니라, 이별 후에 관계를 이어가는 것에 대한 연습이었을 것 같다. 물론 나는 그 누구보다도 그 점에 있어서는 자신이 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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