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살을 더 먹는다는 것에 대해 특별한 기대를 가졌던 시절이 있었다. 사람은 대개 삶에 희망이 차 있을 때, 나이를 먹는 것에 우호적이지 않나 싶다. 결국, 한 살 더 먹는 것이 기다려진다는 건 아직 어리다는 뜻이거나,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그만큼 앞으로의 삶에 가능성이 많다는 의미일 것이다.
어린 시절의 추억이 생각난다. 어렸을 때는 누구나 마찬가지겠지만 한 살을 더 먹는다는 것이 그렇게나 좋았다. 여전히 기억이 생생하다. 초등학교 때 나이에 비례해서 용돈을 받고는 했다. 누구도 아닌 내가 정한 규칙이었다. 그런데 6학년이 되면 일요일이 4번 있는 달도 용돈이 5천 원을 넘긴다는 생각에, 몇 년 동안 한 살 한 살 나이 먹는 것을 오래도 기다렸다.(1,300원 * 4주 = 5,200원)
가장 최근에 한 살 더 먹는 것을 기다렸던 건 아마도 28살이 되던 해였지 싶다. 드디어 지긋지긋한 군생활을 끝내고 사회에 나가는구나! 남자라면 모두 동감할 거다. 그때는 사회에 나오기만 하면 엄청나게 밝은 미래가 펼쳐질 줄 알았다. 어찌 보면 내게는 29살까지도 해당될지도 모르겠다. 전역하고 불과 두 달만에 한 살을 더 먹었기 때문이다. 이후로 10년도 넘게 더 살았건만, 이제는 오는 새해가 반갑지 않다. 어쩌면 28살도, 29살도 나이를 한 살 더 먹는다는 것을 기다리기에는 이미 지나치게 많은 나이였는지도 모른다.
10대, 넓게 보아서 20대까지도 한 살을 더 먹는다는 것은 무언가 가능성과 희망을 의미했었지 싶다. 어린아이가 처음으로 뒤집기를 하고, 기어다니고, 걷고, 뛰고, 말을 하나씩 배우고, 시간이 지나면서 스스로 하는 것이 하나둘 늘어가는 것처럼 한 살 한 살을 더 먹을수록 새해에는 뭔가 새로운 좋은 일이 벌어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에 늘 가득 차 있었다. 그러고 보면 그때는 인생의 앞날에 대해 별로 걱정이 없었다. 오히려 새해에는 어떤 좋은 일이 있을까, 이제는 또 어떤 새로운 일을 할 수 있겠지, 그동안 내가 기다려 왔던 기쁜 일이 올해에는 일어나겠구나, 그리고 무엇보다 한 살 한 살 더 먹으면서 점점 더 내 꿈에 가까워지지 않는가 하는 기대를 가졌던 듯하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나이를 먹는 것에 대한 마음가짐이 달라졌다. 이제 나는 나이를 한 살 더 먹고, 새해가 오는 것이 전혀 반갑지 않은 나이가 되었다. 물론 새해에 생각하지도 못했던 좋은 일도, 기쁜 일도 있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어느새 새해가 밝으면 어떤 안 좋은 일이 생길까를 먼저 걱정하게 된다. 새해에는 아마도 코로나19가 극복될 것이다. 20대였다면 그 생각에 새해에 큰 기대를 가졌을지도 모르겠다. 새해가 오면 기다렸던 배낭여행을 갈 수 있겠구나! 친구들도 실컷 만날 수 있겠지? 하는 그런 희망. 하지만 이제는 새해에 코로나19가 극복되면, 그 이후에 올 인플레이션이 걱정되고, 코로나19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던 우리 사회의 수많은 문제가 드러날 것이 염려된다. 세상 걱정만 하는 도인이라서가 아니라, 실은 무엇보다도 그 과정에서 내가 별로 좋은 위치에 있지 못할 것 같다는 점이 가장 두렵다.
이제는 어느새 깨달아버렸다. 삶에서 갑작스레 내가 기대하는 좋은 일이 생길 일이란 거의 없다는 것을. 어쩌면 그것이 어른이 되었다는 징표인지도 모른다. 그만큼 삶에 변화도, 기대도, 희망도 사라졌다는 것이. 물론 누군가는 이 와중에도 열심히 새로운 시도를 하면서 새해에는 밝은 성과가 나길 바라는 사람도 없지 않겠지만, 그렇다면 그 사람은 나이와 상관없이 청춘이다. 나는 실은 오래전부터 중늙은이였고.
이렇게 글을 적다 보니 걱정이 많아졌다는 것이 오히려 삶에 대해, 세상에 대해 그만큼 아는 것도 늘었고, 가진 것이 많아졌다는 뜻도 되어 꼭 나빠할 일이기만 한가 하는 생각이 들다가도, 환산할 수 있는 금전이 아닌 문장으로 서술할 수 있는 수많은 꿈과 기대에 가득 차 있었던 어린 시절이 떠올라 다시금 서운해진다.
이제는 문장으로 서술할 수 있는 새로운 꿈의 시도마저 비용분석부터 먼저 해야 하는 나이가 되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