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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nest Apr 07. 2021

나는 왜 쓰는가

브런치에 글을 꾸준히 써야겠다고 의식을 하고 있다 보니 아직 작성 중인 글도 몇 편 있다. 다만 중언부언하게 되어 끝맺음이 되지 않아 지속적으로 글을 올리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변명이다.) 지난 글에도 적었지만, 지난 가을부터 마침 독서에 상당한 재미를 붙인 터라(예전보다 두 배 정도 더 많이 읽는 것 같다.), 브런치에 글을 꾸준히 올려야겠다고 생각하는 것도 꽤 스트레스가 된다. 그렇게 스트레스를 받아가면서까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왜 써야 하는가.




10년도 전에, 아니 15년도 더 전에 하루에 몇 편씩 블로그에 글을 올렸던 때에는 자려다가도 일어나서 글을 올린 적이 있었다. 물론 그때는 젊었다. 에너지가 넘치던 시기다. 그 외에도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지금 내가 이 글을 올리지 않는다면, 바로 이 순간 내 머릿속에 든 생각이 사라질 것이 명확하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정확한 판단이다. 자고 일어나면 전날 밤에 무슨 생각을 했는지 기억나지 않는 경우도 많다. (물론 그게 어떤 문제인지, 어떻게 해서 그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등등 다양한 경로에 따라 결과도 매우 다르겠지만.) 그래서 나는 그토록 열심히 글을 올렸다. 당연히 나중에는 처음과 같은 에너지를 쏟지 않았지만, 그때는 나름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이렇게 무서운 속도로 글을 쓰다가는 나중에는 새로운 글거리가 없을까봐 두려웠고, 어떤 주제로 글을 써야겠다는 것 정도는 기억할 수 있었다. (그때는 젊었으니까 기억력도 좋았다.) 블로그를 열심히 했던 2005년부터 2007년까지, 아마도 그 시절에 내가 했던 모든 생각은 그 블로그에 남아 있을 것이다.


2013년 겨울, 터키에 갔었다. 원하던 것은 제대로 되지 않고 삶이 무척 힘들 때였는데, 혹시 내가 죽더라도 그 전에 여행이라도 다녀오자고 마음먹었다. 터키를 선택한 이유는 단 하나, 유럽과 아시아를 걸어서 건너보고 싶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실제로 내가 보스포루스해협을 걸어서 건너지는 못했지만(다리가 엄청 길고, 그 다리로 가는 길도 멀다.) 자동차로, 배로 숱하게 아시아와 유럽을 왔다갔다 하면서 색다른 기분만은 느꼈다. 내 인생 처음인 장기 배낭여행이었다. 2주 정도 터키에 있으면서 보고, 듣고, 느끼고, 말했던 것이 정말 많았다. 그런데 그게 문제였다. 너무 많았다. 다녀와서 나는 터키 여행기를 블로그에 정리해서 적으려고 했는데, 한두 편 쓰다가 그만두었다. 해야 할 말이 너무 많았던 까닭에 하루치 여행기를 정리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장면이, 느낌이 지워질 것 같았던 날부터 먼저 쓰려고 했는데 그렇게 한 이틀밖에는 쓰지 못했다. 아쉬운 기억이다. 터키 여행의 경험은, 그때 내가 느꼈던 감정은 사라지지 않고 내 마음에 남아 있겠지만 여전히 정리되지 못한 채로 있다.


그리고 난 2016년 아이슬란드로 떠났다. 터키 여행을 날려 버린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이때 나는 그때그때의 감정을 바로바로 정리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고, 그 사이에 발달한 많은 문명의 이기를 활용하기로 했다. 그래서 여행을 하면서 내 생각과 느낌을 녹음하면 어떨까 싶었고, 그렇게 여행을 마친 뒤에 정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마침 아이슬란드는 주로 자동차를 빌려 일주하게 되고, 나는 일행이 없어서 혼자였기 때문에 내가 차에서 혼잣말을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겠다 싶었다. 정말 딱이라고 생각했는데... 이것도 쉽지 않았다. 아이슬란드는 날씨가 지독하게도 좋지 않은 나라고, 여행을 처음 시작하면서 나는 외로움에 정말 치를 떨었다. 그런데 언어는 정말 묘한 힘이 있어, 그때 내가 느낀 지독한 외로움을 말로 이야기하면서 다니다 보면 더욱더 외로움의 심연에 빠져드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게 너무 싫었다. 결국 난 아이슬란드 여행에서 목표했던 녹음도 하루이틀, 그것도 아침에 떠나면서 밖에는 하지 못하고 말았다.


아마도 내가 다른 사람들과 터키 여행에 대해서, 아이슬란드 여행에 대해서 대화를 나누는 것은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내가 비록 글을 쓰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그 기억과 그때의 감정과 느낌마저 사라지는 것은 아닐테니. 그러나 돌이켜보면 2007년 나의 첫 해외여행(중국 학술 답사였다.)과 첫 일본여행(첫 단독 배낭여행이었다.)은 내가 모르는 누군가에게도 좋은 이야깃거리가 되었고, 또 좋은 정보도 되었다. (물론 지금은 너무 오래되어 아니겠지만) 그런데 안타깝게도 내게 그보다 더 많은 것을 느끼게 해 주었고, 시간으로도 더 오랜 시간을 보냈던 터키와 아이슬란드 여행은 그 역할을 하지 못했다. 아무것도 적지 못했으므로.


당연히 그런 역할이 꼭 필요한 것도 아니고, 내가 꼭 그 역할을 해야만 하는 것도 아니다. 문제는 내가 그렇게 하고 싶었다. 내가 터키 여행에서 느꼈던 낯설음과 당황을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었고, 아이슬란드 여행 당시의 지독한 외로움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런데 그러지 못했고, 나는 그것이 지금도 너무도 아쉽다.




나는 대학원에서 조선시대사를 전공했고, 사람들이 알다시피 조선은 기록의 나라다. 우스개로 이미 널리 알려져 있는 이야기지만, 왕이 "사관은 이것을 모르게 하라"고 발언한 것까지 기록되어 있을 정도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정말 모든 것이 다 잘 기록되어 있는 것은 아니고, 실은 실록조차도 왕에 따라서 시대에 따라서 그 충실성은 매우 다르다. 하물며 정파에 따라 자신들에게 유리한 것 위주로 기록하였을테니 그것까지도 우리는 감안해서 보아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꼭 그렇게 기록으로 역사적으로 추앙받아야 할 나라인가 싶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록되지 않는다면 훗날 아무것도 기억할 수 없다. 오늘날 지구에는 사람보다 더 많은 닭이 살고 있다고 하고, 쓰레기더미를 보면 엄청나게 많은 닭뼈가 묻혀져 있다. 오늘 우리가 치킨, 삼계탕, 백숙을 먹기 위해 닭을 사육했다는 기록을 남기지 않는다면, 사람이 세상에 없고 난 수억 년 뒤 새로운 종은 지금의 쓰레기더미를 연구하면서 실은 이 지구를 닭이 지배했고, 그들이 서로 간의 다툼이든 무슨 이유로 몰살당하여 한곳에 묻혔다는 연구를 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만큼 기록은 소중하다.


나는 왜 쓰는가.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나보다 기억력이 좋지 않고, 내일의 나는 오늘의 나보다 더 기억력이 좋지 않을 거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제의 내가 느꼈던 감정, 오늘 내가 한 생각은 내 머릿속 어딘가에 잘 남아 있겠지만, 쓰지 않으면 그 모든 걸 상세하게 기억하기 어렵다.


그래서 나는 게으름에도 불구하고, 써야 한다는 생각만은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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