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어떤 후배가 이직과 관련해 상담을 요청해 왔다. 그러고 보니 딱 2년 전에도 같은 상담을 요청해 왔던 적이 있었다. 2년 전 나는 장시간 상담해 주며, 그쪽으로는 옮기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말을 했었다. 옮겨갈 직장도 후배가 100% 마음에 들어할 곳은 아니었고, 지금의 직장으로 옮긴지도 너무 얼마되지 않았을 뿐더러, 후배가 일하는 직종이 워낙 좁은 동네인 탓이었다. 나의 상담 때문은 아니었지만 후배는 그때 이직 원서를 내지 않았고, 현재 같은 직장에 만 3년 가까이 근무 중이다. 그리고 또 이직을 해야 하나? 라는 생각을 해 본 것 같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후배에게 원서를 쓰는 것이 좋겠다고 권했고, 후배는 쓰지 않았다. 그 과정에도 많은 일이 있었던 듯한데, 여기에 모두 옮길 필요는 없겠다. 내가 후배와 원서를 쓰는 것이 좋겠다고 결론 내린 이유는 딱 하나였다.
잘 생각해 봐.
썼을 때 후회할 것과 쓰지 않았을 때 후회할 것을.
옮기는 것은 다음 문제고, 지금 그렇게까지 마음먹었다면 쓰지 않았을 때 더 큰 후회를 하지 않을까.
나는 거의 후회의 아이콘이다. 후회의 아이콘이면서 미련의 아이콘이기도 하다. 이런 말을 쓰면 내가 너무 나이 들어 보일 것 같긴 한데, 나의 뇌 구조에서 아마도 가장 중심이 되는 부분은 과거에 대한 후회와 미련일 것이다. 이 두 개의 단어에 과거마저 더하면 나의 캐릭터는 완벽하게 설명이 된다.
매번 선택하고 후회하고, 선택하고 미련 남길 반복하던 과정이 너무 힘들어서, 나는 어떻게 하면 후회를 가장 덜할 수 있을까 그 방법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물론 후회를 하지 않는 방법도 있다. 그러나 내가 심지어 빌 게이츠나 스티브 잡스라고 하더라도 후회를 하지 않을 수 있을까. 돌아가신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도 사람들은 반도체 투자의 대성공만 기억하지만, 아마도 이제 젊은 사람들은 알지 못할텐데 삼성자동차 투자라는 흑역사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후회를 하지 않을 수 있다. 바로 그만 사는 것. 이렇게까지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않는 다음에야 후회를 하지 않을 방법은 없고, 결국 후회를 덜하기 위한 방법을 찾아야 하는데, 그때 내가 찾은 방법이 바로 선택 결과를 미리 생각해 보는 것이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심지어는 오늘도 수십 차례) 나는 첫 직장 사람들과 연락을 하고, 솔직히 그 회사를 퇴사한 것에 대한 후회를 정말 많이 한다. 나는 첫 직장 생활이 매우 만족스러웠고, 의외로 적응도 엄청 잘했다. 사람들로부터의 평가도, 평판도 좋았다. 그 회사를 계속 다녔다면 발탁 승진은 못했다 치더라도 아마 누락은 안 됐을 거라고 생각하고, 못해도 본부장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망상도 가졌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회사를 관둘 수밖에 없었다. 그때 생각해 보았다. 내가 회사를 관두었을 때와 관두지 않았을 때 어느 쪽이 더 후회가 많이 될지를. 만약 내가 회사를 계속 다닌다면 어렸을 때부터 내가 꿈꾸어 왔던 학문의 길을 버린 것에 대해 너무나도 아쉬움이 남을 것 같았다. 아마 죽기 전까지도.
당연히 내가 회사를 그만두고 잘 되지 않았을 때에 대한 생각도 아예 해 보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최악의 경우,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남은 생을 보낸다고 하더라도 어린 시절의 꿈을 포기한 것보다는 후회가 덜할 것 같았다. 그 결과 나는 지금까지 이렇게 후회하면서 살고 있지만, 그때는 회사를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또 냉정하게 계산해서 비교해 보면, 지금의 내 삶은 계획대로 잘 되지 않아서 나는 항상 후회로 가득 차 있지만, 그래도 그때 그 회사를 계속 다녔을 때보다는 후회가 덜하지 않은가 싶다. 아예 안 삶으로써 후회하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을 택하지 않는다면, 그다음은 지금처럼 그나마 후회가 덜한 삶을 살 수밖에 없다.
때론 나는 뭔일을 그렇게까지 할까 싶기도 한데, 그런데도 그렇게 한다. 일의 결과물은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도 보게 되는 것이고 그렇다면 먼 훗날 내가 일한 결과물을 보았을 때 후회할지, 아니 후회를 얼마나 할지에 대해 미리 생각해 보는 것이다. 그럼 일을 좀 더 열심히 할 수밖에 없다. 물론 항상 이런 것은 아니다. 때로는 훗날 이걸 봐도 별것 아니겠다 싶은 것들은 '이걸 왜 해?' 하는 경우도 없지 않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후자가 훨씬 더 많은 것 같기도 하고.(ㅎㅎ) 그러나 이 글을 쓰면서도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다. 훗날 이걸 왜 했지 싶은 일이라면 역시 하지 않는 쪽이 더 좋은 것 아닌가. 물론 미래에 '그래도 그땐 이걸 꼭 하는 게 맞았지' 라는 생각이 드는 일이라면 다른 경우겠지만.
인생은 B와 D 사이의 C(Birth와 Death 사이의 Choice)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우리 인생은 항상 선택으로 점철된다. 선택이란 정말 어렵고, 내가 아는 한 선배는 "심지어 우리가 결과를 미리 알고 완벽하게 예측한 뒤에 선택한다고 하더라도, 그렇다고 하더라도 더 큰 후회를 하지 않는 법은 없으리라"고 말하기도 했다. 맞는 말이다. 뒷날 우리의 생각과 상황이 어떻게 바뀔지는 아무도 알 수 없는 일이 아니던가.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선택해야만 한다. 그렇다면 지금 당장 선택했을 때의 미래를 그려 보자. 나는 A보다 B가 더 좋은 것처럼 느낄 수도 있지만, 덜 좋아하는 것 같았던 A를 선택했을 때의 후회가 더 크다면 내 경우에는 A를 선택한다. 뭐, 선택은 자유다. 누군가는 더 큰 후회가 따라오더라도 당장 좋아보이는 것을 선택할 수도 있다.
쓸데없는 말을 한마디 덧붙이자면 내 경우엔 선택을 잘못했지만 결과가 좋았을 때 후회한 경우는 한 번도 없었다. 대부분 그렇지 않을까 싶다. 결과가 좋다면 잘못된 선택도 모두 미화된다. 결국, 후회와 미련을 줄이는 또 하나의 방법은 결과를 좋게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많은 경우 선택한 당신에게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