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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nest May 12. 2021

나는 주체가 아니라, 종속변수였을 뿐이다

어쩌면 훨씬 더 일찍 깨달았어야 했던 건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나 보다. 그렇게 열심히 내 의견을 내고, 행동하고, 나섰던 것을 보면. 불혹을 눈앞에 둔 이제서야 깨달았다. 나는 이 세상의, 심지어 내 자신에게도 주체가 아니라 세상의 종속변수였을 뿐이라는 사실을.




뉴스나 기사를 보다 보면 가슴이 답답해지는 일이 많다. '아, 저게 아닌데...', '정말 저건 아닌데...' 생각하기도 하고, 친구들과 이야기하며 열변도 토해 보지만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고작 불평불만을 토로한다거나, 열심히(?) 한다면 여기에 글을 남기는 그 정도일 것이다. 물론 아주 우연한 확률로 내가 남긴 글이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고 해서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하는 경우도 있을 수는 있다. 그러나 그런 경우가 얼마나 되겠는가. 지난 내 삶에서 그런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아마 앞으로도 일어나지 않을 확률이 높고.


한때는 뭔가 나도 적극적으로 행동해서 세상을 바꾸는 사람이고 싶었다. 사람들 앞에 나선다는 것이 아니라, 그래도 주어진(?) 기회를 비교적 잘 활용하려고 노력했다는 정도로 보면 좋을 것이다. 정당에 가입해서 당원도 되어 보았다. 노동조합에도 가입했고, 지부 집행부도 맡았다. 매달 당비를 1만 원이나 내는 당원이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고작 '예', '아니오' 중에 하나를 선택하는 것뿐이었다. 그 사이에 있었던 선거에서는 후보라도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오길 바랐는데, 단수 추천으로 둘 중의 한 명 후보를 선택하는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그냥 나는 정당의 '돈 내는 호구'였을 뿐이다. 결정적인 정책에서도 내가 던진 '아니오'는 사실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수뇌부가 '예'라고 결정하고 던진 투표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쪽으로 우르르 몰려 갔다. 물론 그 사람들은 자신의 영향력을 발휘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나는 1년 반만에 정당을 탈당했다.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나마 회사는 직원이 40명도 안 되는 작은 곳이다 보니 노동조합에서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면 약간의 반영은 있었다. 그러나 그 약간이란 너무 미미해서 아무것도 반영되지 않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우리 회사는 부도 직전의 다른 회사를 인수했는데, 나는 결사반대 쪽에 속했다. 그렇지만 아무 의미가 없었다. 수뇌부가 결정내린 대로 그냥 그렇게 흘러갔을 뿐이다. 다른 노조원들도 별 관심이 없었고, 각자의 이해관계에 따라서 찬성하는 사람도 있었다. 결사반대의 의견 피력으로 가능했던 건 고작 성명 발표 정도였다. 아무도 보지도, 듣지도 않는다. 수뇌부가 기분 나빠했다는 이야기는 들었다. 그렇다. 할 수 있는 건 그 정도까지였다. 지난해 나는 노조조차 탈퇴하였다. 정년을 넘긴 직원의 계약직 채용에 대해 최소 성명 발표라도 하길 원했다. 그러나 바꿀 수 수 없는 결과에 굳이 수뇌부 기분만 상하게 할 필요 있냐는 사람들이 더 많았던 것 같다. 이럴 바엔 나는 노조도 나오는 것이 낫겠다고 결론 내렸다. 잘한 결정이다. 노조비를 아낀 덕에 항상 시장 통닭만 사먹던 내가 이젠 그 돈으로 브랜드 치킨을 사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아내도 좋을 것이다.




항상 나의 철학에 맞게 세상을 주체적으로 살고 싶었다. 그것이 내 인생이라 믿었다. 그런데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 있었다. 이 세상에서도 내가 주체는 아니었다. 세상에는 영향력을 미치고, 세상을 그들의 철학대로 움직이려는 사람들이 또 있었다. 그들 앞에서 내 영향력은 미미했다. 아니 없다고 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사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 환경에 재빠르게 적응해서 눈치껏 약삭바르게 살아야 했다. 그런데 그러지 못했다. 무슨 고고한 철학자라도 되는양 나는 내 철학대로 내 주체적으로 세상을 살려고 했다. 그 결과가 지금 이 모양이다.


돌이켜보면 이것을 깨달을 수 있는 많은 기회가 있었다. 아니, 어쩌면 많은 사람들은 아주 일찍부터 그 사실을 알고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나에게도 기회는 있었다. 재작년에 회사에서 다른 회사를 인수할 때. 나는 고작 30명도 안 되는 회사의 움직임조차 통제할 수 없었다. 아주 적극적으로 회사 대표와 얼굴을 붉히면서 의견을 내었지만, 결과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었다. 대표와 사이만 나빠졌을 뿐이다. 30명도 되지 않는 회사에서 노조원은 20명도 되지 않았다. 그동안 그런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정년을 다한 직원이 회사를 더 다니려고 하는데 나는 20명의 직원도 움직일 수 없었다. 오히려 내가 노조를 나오는 쪽을 택했다. 그렇다. 나는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움직일 수 있는, 나의 생각대로 살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하늘은 숱하게 나에게 그 신호를 주었다. 그런데 나는 그걸 비로소 마흔을 눈앞에 둔 이제서야 깨달았다.




내가 세상의 주체가 아니라, 하나의 작은 종속변수였을 뿐임을 깨달은 요즘, 나는 너무 우울하고 무기력해진다. 한편으로는 내가 세상을 바꾸기 위해 얼마나 적극적이었나, 광화문광장에서 화염병이라도 던지고 대자보라도 붙였나 되물어 보게 되기도 한다. 그러나 나름대로 나도 상당히 적극적인 사람이었다. 지난 2019년 대통령과의 대화에도 참석했던 300인 중 1명이었고, 노조 회의에도 모두 참석해 가능하면 내 의견을 다 드러내고자 했다. 최근에는 커뮤니티 기본요금을 걷지 못하게 하려고 게시판에 글도 올리고, 공청회에도 참석하고, 민원도 넣고 온갖 방법으로 애써 보았다. 그러나 결과는 그 무엇도 달라지지 않았다. 더 큰 영향력을 가진 사람들의 마음대로 조직이든, 세상이든 굴러가는 것이었을 뿐이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더욱 일찍 깨달았어야 했고.


며칠 전 만난 선배에게 이 이야기를 했더니, 그래서 종교에서 사람 안에도 우주가 있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라고 말해 주었다. 그렇다. 그렇게 우리는 스스로를 위로하면서 사는 것이었구나. 아편과 같은 게 종교라더니. 그러나 그렇게 스스로를 위안하기에 다들 포기하지 않고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지.


비로소 요즘 많은 것을 깨닫게 된다. 이 작은 회사에서 왜들 그렇게 팀장을 못해 안달복달이었나. 예전에는 그런 사람들이 좀스러워 보일 정도로 혐오스러웠다. 그런데 깨달았다. 그렇구나. 그렇게라도 작은 영향력이라도 더 키우고 싶었구나. 다들 더 높은 자리로 올라가고 싶어 하고, 출세하지 못해 안달이다. 그래야 비로소 종속변수인 자신의 지위가 조금이라도 달라지기 때문 아니었을까.


나는 이 세상과 사람들과 생각이 너무 달라 불화하는 사람이다. 내 생각대로 세상을 바꿀 수 없다면, 결국 이 세상에 나를 맞추는 수밖에 없을텐데 불혹까지 가능하지 않았던 그 일이 앞으로는 가능할까 싶다. 40년을 살아왔지만 지난 40년은 내 생각대로 세상이 바뀔지도 모른다는 기대라도 있었는데 그 모든 기대가 사라진 지금, 앞으로 남은 40년을 과연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싶다. 돼지우리에 갇혀서 산다는 게 사는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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