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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nest May 20. 2021

세상은 변했고, 어쩌면 내가 틀렸을지도 모른다

내가 근무하는 회사의 모회사에서는 1년에 몇 차례 시험 감독을 뽑는다. 대체로 모회사 직원으로 감독을 다 채울 수 있기 때문에 나에게까지 기회가 돌아오는 일은 없었는데, 거리두기를 해야 하는 코로나19의 영향인지 이번에 우리 회사 직원들에게도 그 기회가 왔다. 금-일 3일 동안 아침 8시까지 출근해서 저녁 8시에나 퇴근하는 강행군. 3주 동안의 주말에 걸쳐 시험이 있는데, 첫 주는 나도 다른 회사 일정으로 불가능했지만, 그동안 해 보고 싶었던 일이라 남은 2주는 해 보겠다고 자원했다. 금-일 3일을 2주 동안 근무하면 80만 원 정도의 수당이 나온다.


마흔 명도 되지 않는 직원 가운데 내가 사는 집의 옆옆 단지에 사는 직원분이 계신데 재테크에 열심인 분이다. 이 분은 집도 우리집보다 크기도 하거니와 그 집도 자가다. 한 푼 두 푼 버는 것에도 열심이셔서 이번에 같이가자고 한 번 제안해 보았다. "제가 모시고 갔다가 모시고 올께요." 조금 고민하더니 주말은 역시 가족과 함께 보내야겠다며 사양하였다. 그러면서 내게도 80만 원이면 적은 돈은 아니지만 차라리 공모주 청약을 하지 그러느냐고 이야기한다. 가끔 내가 교통비 250원을 아끼겠다며 버스를 타고 퇴근할 때가 있는데, 그것보다는 훨씬 효율적이라는 말이다. "지금도 대출이 거의 1억 가까이 있는데, 더 대출받기가 그래서요." 라고 대답은 했지만 사실 내가 투자에 적극적이지 않은 건 아마도 내 삶의 태도인 것 같다. 돈은 땀 흘려 힘들게 벌어야 한다는.




집도 절도 없이 남의 집에, 그것도 나보다 어린 친구의 집에 세 들어 사는 형편이지만 솔직히 내게도 투자로 대박을 칠 기회가 없진 않았다. 첫 직장이 국내 10대 건설사였고, 마흔 명이 넘는 동기 중에는 재건축, 재개발을 담당하는 친구도 있었다. 입사 연수 때도 같은 방을 썼고, 결혼식 사회까지 봐 준 한 친구는 요즘 같은 세상에서 보기 드물게 맨손으로 무언가를 일구어 냈다. 처음 서울의 작은 건물을 샀다 판 것을 시작으로 몇 차례 부동산 투자(투기?)를 거듭한 끝에 올해 아니면 내년 정도에는 강남 3구 아파트 입성을 앞두고 있다. 서울에 아파트 분양권 한 채, 지방 대도시를 통틀어 세 채 정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지금은 서울 외곽의 허허벌판 아파트에서 전세로 살고 있지만 큰 애의 초등학교 입학에 맞추어 나머지를 모두 정리하고 아마도 강남 3구 아파트 한 채로 정리해서 이사하려는 듯하다.


'그게 너랑 무슨 상관이야?' 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고 보면 참 좋은 친구다. 이 친구가 서울에 아파트 분양권을 살 때 내 것도 알아봐 두었다며 같이 사자고 했었다. 지방 대도시에 산 아파트 중에도 본인이 알아보고 내게 사라고 권했는데 내가 사지 않는다고 하자 너무 아깝다며 본인이 무리를 해서 산 것도 있다. (다행히 이후에 많이 올랐다.) 최근에도 어느 지역에 집을 같이 사자며 내게 권유했었다. 재작년에 사라고 이야기했던 집도 많이 올랐고, 나는 사지 않았지만 같이 친하게 지내는 다른 친구가 그 아파트를 사서 몇 억을 남겼다고 들었다.


투자는 투자한 사람이 책임지는 것이고 결국 친구의 성공과 나의 실패와 관련해 내가 할 말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나는 집은 '사는 것'이 아니라 '사는 곳'이라는 나만의 철학이 있었고, 내가 거주할 의사가 전혀 없는 곳에 집을 사는 것이 그리 옳지 않다고 생각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구가 잘 번 덕분에 잘 얻어 먹기는 했다. 그렇게 다른 사람이 살 집을 가지고 투자하고 싶진 않았다. 그런데 결과는? 지금 보이는 대로다.


옆옆 단지에 사는 직원분께서 하신 이야기가 생각이 난다. "처음부터 너가 살려는 동네에 집을 살 생각을 하지 말고, 다른 데서 돈을 벌어서 너가 살 동네에 집을 사는 게 맞는 것 같아." 그러나 내 생각은 모두가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에 결국에 우리 사회가 이렇게 되지 않았느냐는 쪽이다. 그런데 지난 글에 썼듯이 이제서야 깨달았다. 세상이 그렇다면 내가 거기에 적응해서 살았어야 했다. 내가 세상을 움직이는 사람은 아니었으니.




나는 문재인 대통령이 너무나도 싫고, 아니 어쩌면 거의 증오한다고 해야 맞을지도 모르겠는데 이렇게 세상을 망쳐(?) 놓았다고 보기 때문이다. 노동의 가치가 땅에 떨어진 세상이 되어 버렸다. 내가 자본주의에 적응을 덜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사람이 집을 사고팔고, 또 주식을 공모해서 받았다가 바로 팔고, 가상자산을 샀다팔았다 하는 과정에서 과연 사회 전체적으로 어떤 가치가 창출되며, 우리의 삶이 어떻게 나아져 가는 것일까. 이 과정에서 자본 이득을 얻는 사람 외에 우리 사회에 어떤 긍정적인 효과가 있단 말인가. 이젠 나도 주식시장의 순기능마저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잠시잠깐 투자를 통해서 일확천금을 얻으려고만 한다면 과연 그것이 이 세상에 어떤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런지 모르겠다.


어쩌면 미국은 벌써 예전부터 그런 사회였을 수도 있고, 한국도 이미 그런 사회였는데 지금에서야 그런 것처럼 보일 수도 있고, 내가 늦게 깨달은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지난 4년간 우리는 노동의 가치가 바닥으로 추락하고 돈 놓고 돈 먹기만이 권장되는 세상으로 바뀌어 버렸다. 원래부터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내가 느끼기에는 지난 4년의 변화가 가장 극심했고, 그것의 가장 큰 책임이 지금의 대통령에게 있다고 보기에 이 사람이 너무나도 싫은 것이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이제는 그런 생각도 든다. 어쩌면 세상은 이렇게 바뀔 것이었고, 이 사람이 단지 지금 대통령을 했을 뿐이라면, 이 사람도 억울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이런 게 스톡홀름신드롬인가.


나는 금, 토, 일 3일 동안 하루에 12시간 정도의 노동을 제공해 가면서 아마도 40만 원 가까운 수당을 받게 될 것이다. "그건 세상에 무슨 가치를 창출했냐?"고 묻는다면 그래도 서비스를 제공한 대가 아닌가. 누군가는 그 일을 반드시 해야만 한다. 아직까지는. 앞으로 AI가 사람들이 시험 보는 걸 감독하는 시대가 온다면 달라질지도 모르겠지만. 그런데 이렇게 해서 번 돈이 얼마나 큰 가치를 가지게 있을까. 주말에 8시까지 출근하겠다고 새벽 6시에 눈을 비비며 일어나기보다 그냥 좋은 곳에 아파트 한 채 잘 샀으면 이것보다 훨씬 더 큰 수입이 보장되었을텐데. 돈을 버는 데는 다양한 방법이 있기 때문에 아파트를 사고팔아서 돈을 버는 것이 꼭 틀렸단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래도 살고 싶다. 땀 흘려 일하는 것이 돈 놓고 돈 먹는 것보다 더 가치 있게 대접받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비웃음과 비아냥의 대상이 되는 세상은 아니어야 맞는 것 아닐까. 모르겠다. 그동안엔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나도 21세기를 19세기와 같은 사고로 살고 있는지도. 세상은 이미 변했고, 어쩌면 내가 틀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돈을 많이 벌지 못한 것보다 그동안 내 삶의 철학과 인생이 잘못 살았다고 부정당하는 것 같아서 나는 그것이 요즘 가장 우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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