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도 더 전, 막 블로그를 시작했을 때 나는 상당히 열심히 쓰는 블로거였다. 내 블로그에는 그럴듯한 사진도, 훌륭한 정보도, 초지일관하는 일관성도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들어와 주고, 또 핫한 블로거로 인터뷰까지 할 수 있었던 것은 그래도 글자라도 열심히 적었던 노력의 대가가 아닌가 한다. 그때는 정말 하루에도 2~3편씩 글을 올리는 날도 있었다. 당연히 나중에는 처음과 같은 그런 열정이 줄어들었다. 그래도 그때도 한 주일에 3~4편의 글은 올렸다. 이미 어느 정도로 글이 확보되어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글이 덜 올라와도 방문객은 더 많았던 기억이 난다.
이제 나는 블로그에 집중할 수 있는 대학생이 아니기 때문에 처음 브런치를 시작하면서 그때와 같은 열정은 당연히 보이기 힘들 거라고 생각하긴 했다. 그래도 뭔가 꾸준히 하고 싶었다. 하루에 2편씩 글을 올리진 못하더라도 최소한 일주일에 한 편씩 꾸준히 올리다 보면 언젠가는 글이 쌓이겠지 하는 생각으로 브런치를 시작했다. 그런데 결과는 보이는 바와 같다. 어쩔 때는 열심히 써서 일주일에 한 편 이상 올라오는 경우도 있지만, 지금처럼 몇 주째 새 글이 없는 경우도 숱하다. 구독해 주시는 분들에게 죄송한 일이다.
나는 왜 쓰지 못하는가.
돌이켜보면 대학생 때의 글이 더 좋았던 것 같다. 그때는 어렸기에 글이 짧고 좀 더 핵심에 집중하는 모습이 있었다. 그런데 어느새 인생을 그때보다 거의 절반 이상 더 살았다. 나이가 들면서 변명은 더 늘었고, 설명도 더 많이 하게 되었다. 이 글에서도 앞부분의 설명 같은 것이 대학생 때라면 하지 않았을 일이다. 그러다 보니 글을 쓰는 일이 확실히 힘에 부친다. 해야 할 말이 많고, 어떻게 정리해야 하나, 어디까지 말해야 하나, 어떻게 이야기해야 하나 하다 보면 힘이 든다. 어렸을 때는 없던 일이다.
돈을 내고 하는 일과 돈을 받고 하는 일이 이렇게 다른지도 몰랐다. 돌아보면 대학생 때는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할 수 있는 환경이었다. 그리고 수업이라는 것도 나는 남들보다 훨씬 많이 들었지만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과 여유가 넘쳤다. 대학생 때 가장 많은 학점을 들었던 학기는 아마도 22학점이었을 거다. 그런데 지금은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회사에서 일한다. 학점으로 따지면 점심시간을 빼고도 40학점. 시골 출신인 나는 대학생 때는 통학시간이라는 것이 사실 거의 없었다. 그런데 어른이 되고 통근시간이 생기면서 이제는 저 40학점에 실은 13학점 정도를 더 추가해야 한다. 누군가는 "통근시간에 글을 쓰면 되겠네" 라고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직 스마트폰으로 글쓰기 같은 것을 시도해 본 적이 없는 나 같은 구세대에게 출퇴근시간의 지옥철 안에서 글을 쓰기란 쉽지 않다. 그나마 책이라도 꾸준히 읽고 있어서 다행이다. 업무시간에 출퇴근시간을 더한 저 53시간이 사실은 내게 가장 생산적인 시간일 터다. 특히 나는 문과 출신이라서 결국 텍스트와 관련된 일을 많이 하는데, (심지어는 출퇴근시간에도 책을 보고 있으니) 53시간 동안 글자를 보고 나니 더 이상 글을 쓸 여력이 없는지도 모르겠다. 그 에너지를 업무시간에 쏟고 있다. (내가 이렇게 성실한 회사원이다.)
결국, 따지고 보면 시간과 에너지가 부족하다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이제는 저 53시간을 뺀 나머지 여가시간에 친구도 만나고 모임도 갖고, 심지어 그 시간에 다른 일도 해야 한다. (나는 이 회사를 다니는 동안 학사와 석사 하나씩을 추가로 땄다.) 대학생 때는 그렇지 않았다. 학업시간에 만나는 사람도 친구였고, 물론 저녁 시간에 친구들을 만나는 일도 당연히 꽤 많았지만 돌아보면 지금보다 만나는 사람의 범주도 숫자도 넓지 않았을 시절이다. 아니다, 어쩌면 숫자는 비슷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그때는 한 공간에서 쉽게 많은 숫자를 만날 수 있는 환경이었으니까. 이제는 퇴근하고 저녁 약속이라도 있다 치면 사실 브런치를 돌아볼 여유가 전혀 없다. 일어나자마자 회사에 가서 하루종일 일하다가 퇴근하고 저녁 약속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바로 눕기에 바쁘다. 그러고 보면 대학생 때는 참 에너지가 넘쳤다, 싶다. 하루종일 수업이 있는 날이었다 쳐도, 그날 저녁에 모임에 다녀왔다고 해도 집에 와서 다시 글을 쓸 수 있는 에너지가 있었다.
아마도 가장 큰 문제는 에너지일 것이다. 지금 나는 왜 내가 글을 쓰지 못하는가 라는 변명조차도 엄청난 에너지를 끌어모아서 쓰고 있다. 생각하는 것도 많고, 쓰고 싶은 글도 넘치지만 하루종일 일에, 심지어 그것도 활자에 시달리다 집에 오면 글을 쓸 에너지란 남아 있지 않다. 그렇다고 또 쓰는 글을 대충 쓰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으니. "주말에는 뭐햐냐"고 하는 사람도 있겠다. 그런데 글을 쓰는 일을 자꾸 뒤로 미루게 되니 글을 읽는 일에 대한 집착이 엄청 생기는지 실은 브런치에 뜸한 뒤부터 독서량이 엄청 늘었다. 아마 '책을 읽느라 글을 못 쓴다' 따위의 자기합리화를 하기 위해서는 아닌지. 게다가 항상 생각하는 것이 내게 가장 중요한 일은, 우선시되어야 할 일은 글을 쓰는 일도, 읽는 일도 아니다. 체력단련이다. 대체로 산책이나 운동을 주말에 하게 되고, 또 주말이면 밀린 체력을 보충하느라 그저 쉬다 보니 글을 쓸 짬을 내지 못한다.
그럼에도 나는 계속 쓸 것이다. 일주일에 한 편을 쓰지 못한면, 지금처럼 보름에 한 편을 쓰더라도. 하루에 두 편씩 쓰는 사람이 50일만에 100편을 모아서 구독자를 늘리고 방문객을 키운다면, 나는 한 달에 3~4편을 써서 2년이 걸리는 한이 있더라도 계속 쓰겠다. 그러고 보니 벌써 조금 있으면 1년이 된다. 더 성실하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하더라도 그만두지 않고 꾸준히 하면 된다. 그리고 더 꾸준할 수 있으면 금상첨화다. 더 꾸준히 하도록 해 봐야지.
이번엔 어떻게든 다음 주를 넘기지 않고 또 새로운 글을 쓰겠다. 반드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