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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nest Jun 17. 2021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브런치에 글을 올린 게 언제인지 모르겠다. 실은 <행복하다>는 제목으로 글을 올렸던 것은, <좀스럽다>는 제목으로 글을 쓰기 위함이었다. 단어 하나로 현재의 내 삶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려고 했는데, 하필 그 첫 단어가 <좀스럽다>인 것이 마음에 걸렸다. 마침 그때쯤, 삶에서 거의 느끼지 못했던 행복도 느꼈던 터라, <행복하다>는 단어로 한 편의 글을 써 본 것이다. 나이를 먹는 만큼 게으름도 늘어서, 브런치에 바로 <좀스럽다>는 글을 쓰지 못했다. 게으름 때문에 쓰지 못한 것이 아니라, 한 번에 여러 편의 글을 올리는 것보다 그래도 꾸준하기 위해서 <좀스럽다>는 며칠 뒤로 미루어야겠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 며칠이 몇십 일이 되고 말았다.




변명을 해 보자면 바빴다. 특히 6월 말이면 상반기가 끝나기 때문에 6월 말까지 끝내야 할 회사의 큰 일이 두 개나 있었다. 나는 원래 그렇게 회사의 일정에 얽매이는 사람이 아니고 내 일정 대로 일을 진행하는 편이긴 한데, 이 두 개의 일은 처음부터 6월 30일을 기한으로 정했던 거라서 지키고 싶었다. 그리고 조금만 서두르면 그렇게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실제로 지금 거의 내 계획대로 되고 있다. 일주일 정도가 더 빨랐다면 물론 좋았겠지만, 그래도 일주일을 더 늦추지 않은 게 어디냐. 내가 생각한 마지노선은 지키고 있다.


인문계 출신이 다 그렇겠지만 나도 글자 보는 일을 많이 하기 때문에 큰 일을 두 개 마감하는 와중에 브런치에까지 마음을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그런 데다가 예전에도 적었지만 독서도 열심히 했다. 항상 남의 글을 읽느라 내 글을 쓸 여유는 없었던 셈인데, 과연 꼭 그렇기만 할까.




어제는 나도 백신을 맞았다. 우리 회사는 백신 접종자가 30%가 넘으면 재택근무를 끝낸다고 한다. 백신 접종이 아니더라도 재택근무는 언젠가는 끝날 것이다. 지금의 이 시간을 충분히 활용해야 했다. 브런치에 글도 써야 했지만 실은 그것말고도 많은 일이 있다. 그런데 지난 6개월이 넘는 시간 동안 나는 무엇을 하였나.


처음엔 나름대로 의미 있게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그래서는 안 되지만 재택근무 일을 활용해서 다른 지인들도 많이 만났다. 이제는 육아를 하는 친구들이 많아 평일 점심이 아니면 보기 어려운 경우가 있다. 재택근무 덕분에 몇 년만에 만난 친구들도 상당히 있었다. 또 아마도 가끔은 브런치에 글도 올렸던 것 같다. 계획했던 만큼 많이는 아니었지만. 그리고 이럴 때 아니면 볼 수 없는 두꺼운 책들도 많이 읽었다. 가사도 나름대로 열심히 돌보았고. 그런데 이게 다다. 실은 내게는 이것 이상의, 생산적인 여러 가지 꿈과 목표가 있었다. 오늘이 지나가면, 내일 하면 되겠지, 하면서 차일피일 미루는 새에 6개월이라는 시간이 그냥 지나 버렸다. 그 사이에 뭔가 생산적인 일을 시작하기는커녕 보아야 할 드라마와 다큐멘터리 시리즈만 늘어났다. 그것들을 보느라 다른 시간 계획에도 차질이 생겼다. 결국 난 이렇게 어처구니없이 아마도 지난 반 년의 재택근무를 마무리하게 될 것 같다.


당장 계획했던 생산적인 일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내 삶이 크게 변하진 않는다. 아니 실은 그것을 한다고 해서 내 삶이 크게 변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래도 뭔가 시도해 보고 싶었다.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렇게 어영부영 지내다가 시간을 흘려버리고 말았다.


코로나19가 터지기 전까지, 나는 회사에 다니면서 MBA도 졸업하고, 학부도 하나를 더 마쳤다. 많은 사람들이 힘들지 않느냐고 물었고, 가끔은 '내가 왜 이렇게까지 살아야 하나' 하는 생각도 해 보지 않은 건 아니다. 실제로도 MBA를 졸업하고 학부까지 하나 더 마쳤지만 내 삶은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렇게 힘들지 않았다. 그냥 그때의 삶에, 그때의 여가 시간에 그것들을 조금씩 더하는 정도였다. 가끔은 힘에 부칠 때도 있었지만 충분히 할 만했다. 내가 그 과정들을 함께 밟으면서 세상을 살아간다는 생각과 계획이 있었고, 실제로도 그렇게 살아가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데 그런 생각들을 하지 않고 그냥 지내다 보니 사는대로 살고,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짧은 시간이라도 그렇게 지내다 보면 그 나태함과 게으름이 몸에 익숙해져서 이 관성을 벗어나려면 엄청난 노력을 들여야 한다. 결국 난 그렇게 새로운 도전은 해 보지 못하고 이번 재택근무를 마무리 짓게 될 전망이다.


뭐든 미루지 않고, 처음에 시간이 생겼을  바로 계획을 세우고 실행에 옮겼어야 했다. 나는 코로나19 오래  것이라는 예측은 정확히 맞추었지만,  안에서  삶도 거기에 적응하고  것이라는 점을 예상하지 못했다. 나는 예전처럼  생각하는 대로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일  알았는데, 지금의 나는 그때보다 체력도 좋지 않고,  무엇보다 나이를 먹으면서 체념에 익숙해졌다. ' 봤자 뭐하겠어?' 이런 생각이 조금씩조금씩  생각을 갉아먹으면서 결국 지금  사는 대로 생각하고 있다. 했어도 달라지지 않았을 수도 있다. 아니 아마도 그랬을 확률이 높겠지. 그래도 어차피 이렇게 흘려보낼 시간이라면, 뭐라도  봤다면 후회는 남지 않았을 것이다.


아마도 재택근무는 이렇게 끝나게 되겠지만, 올해 하반기에는  앞으로 후회하지 않도록 다시금 생각하는 대로 살아보려는 시도는  봐야겠다.  그렇게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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