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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nest Sep 11. 2021

영리한 사람의 영리하지 못한 삶

대학교를 다니던 때, 지금은 총기가 많이 흐려지신 어느 교수님께서 그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었다. 자신은 충분히 의지도 있고, 능력도 있는데 왜 65세라는 정년이 있어 은퇴해야 하는지 처음에는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고 하는. 그런데 반전이 있다. 교수님의 말씀이, 60세까지는 세상이 자기가 생각하고 예상한 방향대로 잘 흘러갔었는데, 60세를 넘으면서부터는 그 예측이 자주 틀리더란다. 그래서 그때 본인도 납득했단다. 아, 이래서 정년이 있어야 하는구나.




세상의 모든 돈이 되지 않는 지식은 모두 내게 모인다고 자랑할 수 있는 나다. 특기가 생각이라고 할 만큼 항상 생각 속에 둘러싸여 있고, 분야를 가리지 않고 두루 사람을 만나며, 책도 신문도 열심히 읽는다. 그렇다 보니 나도 어느 순간부터는 그 교수님처럼 세상이 내가 생각하는 대로 흘러간다는 느낌을 받게 되었다. 오해하지 말자. 내가 생각하는 대로 흘러가는 세상이 꼭 내게 좋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대체로 부정적인 경우가 더 많다. 내가 생각하는 대로 흘러가는 세상이라는 것은 나의 예측대로 세상이 흘러가는 것일 뿐, 내 바람대로 간다는 것은 아니다. 같은 생각에 드는 어휘겠지만, '바람'과 '예측'은 전혀 다른 단어다.


지난글에 썼던 '재난지원금'부터 이야기해 보자. 결론부터 이야기해서, 아니 이렇게 될 줄 정말 몰랐단 말인가? 대통령이나 국무총리나, 전직 야당 대표나 모두 12%의 국민에게 자부심과 명예가 부여되니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는 건가? 나는 처음부터 지금과 같은 그림이 그려졌다. 100%의 국민 모두에게 지급하지 않는다면, 경계선에 있는 사람들의 반발은 생겨나지 않을 수가 없다. 지금처럼 자산가에게 폭넓게 지급하지 않고, 자산의 규모를 줄였다고 생각해 보자. 그렇다면 반발이 적었을까? 결코 그렇지 않다.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자산의 규모란 없다.) 단 하나의 해법은 전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자산과 소득, 부채의 완벽한 계상법을 찾아내어 줄을 세운 다음에 거기에서도 경계선에서는 소득 역전 현상이 일어나지 않도록 재난지원금을 지급하는 것이었을텐데, 이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이것도 아니라면 국민들이 국가의 모든 행정을 완벽한 수준으로 신뢰하게 만들었다면 이런 불만이 없었을 것이다. 이것은 가능한 일이다. 한국이 아닌 북유럽의 다른 나라에서라면.


브런치에도 글을 썼던 것 같은데, 재작년에 우리 회사에서 모회사의 다른 자회사를 인수했다. 나는 대표에게 '이건 배임입니다'라고 직접 언급하며 반발하는 입장이었고, 덕분에 인사상 불이익이 가해져 지금의 팀으로 쫓겨나기도 했었다. (지금 팀의 일이 더 잘 맞는 건 안비밀) 그때도 대표를 비롯해 나름대로 장밋빛 미래를 펼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그래서였는지 모르지만 직원도 예정했던 것보다 한 명을 더 뽑았다. 인수되어 들어온 직원들은 첫해에는 계약직이어서 조금 불안했지만 이후 우리 회사의 정규직이 되면서 결과적으로는 근무여건이 더 좋아졌다. 일단 급여도 올랐고, 회사 규모 자체가 커졌으니 예전 부도 직전의 회사와는 다른 상황이다. 그들 개개인에게는 좋아졌을지 모르지만 결과적으로 회사는 어떤가. 인수한 회사는 현재 하나의 부서로 존재하는데 매출이 갈수록 줄고 있다. 아니 급감하고 있다. 솔직히 나는 그 콘텐츠를 돈 주고 사 보는 사람이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다. 결국 이제는 인수를 강요한 모회사의 대표마저 부담스럽다고 하는 실정이다. 정말 까무러치게 놀랍다. '이렇게 될 줄 몰랐단 말인가?'


작년부터는 우리 회사에서 유튜브 채널을 시작했다. 유튜브 담당 직원도 두 명을 뽑았다. 그와 관련된 일을 하는 직원까지 더하면 숫자는 더 늘어난다. 글을 읽는 당신이 '너는 뭐든 반대만 하는 거 아니냐?' 라고 이야기할지도 모른다. 나는 유튜브 시작도 반대했으니까. 반대를 하기 위한 반대가 아니다. 유튜브 채널을 만든다고 모두 조회수가 100만을 찍고, 다 광고로 끝없는 수입을 올리는 것이 아니다. 철저하게 준비되어 있어야 하고, 콘텐츠도 있어야 하며, 무엇보다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이야기여야 한다. 그런데 그중에서 우리에게 무엇이 있었나. 나는 진지하게 '내가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서 만담을 해도 이것보다는 조회수가 잘 나올 것'이라는 입장이었다.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어제 다른 회사 동료의 이야기를 들으니 처음에는 유튜브 광고 수입으로 회사를 지탱해 보겠다던 직원들도 이제는 모두 입장을 바꿨다고 한다. 유튜브로는 단돈 10원의 수익을 내기는 어렵다는 쪽으로. 3살짜리 아이는 이런 예측을 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냉철하게 판단할 때, 13살짜리 아이도 조금만 영리하다면 이 정도 예측은 할 수 있었다. 그것을 이 회사의 대표라는 사람, 팀장이라는 사람, 그리고 수많은 직원들은 전혀 몰랐다. 알고도 했다면 배임이고, 몰랐다면 무능 아닐까.


최근의 부동산 광풍만 해도 그렇다. 대통령이 취임하자마자 임대사업자 등록을 하라며 각종 혜택을 줬을 때, '어? 이건 아닌데?' 라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나도 혜택이 많았다. 당장 내가 가장 놀랐던 것은 새로 집을 사서 그 혜택들을 모두 받고 임대사업자로 등록할 수도 있었다. '이거는 집값을 적극적으로 올리는 정책인데'라는 불안감이 휩싸였다. 아니나 다를까. 김수현이라는 양반은 자기가 은퇴할 때와 지금은 시장이 너무 다르다며 본인의 책임은 없다는 것 같았다. 아니다. 산불도 처음은 담배꽁초 하나로 시작한다는 것을 왜 모를까. 이것 하나만이 아니다. 문재인(이라고 쓰고 문제이자 재앙이라고 읽는다.)이 앞으로도 수많은 부동산 대책은 준비되어 있다고 호언장담하는 것을 볼 때도 나는 '망했다'고 생각했다. 산불이 났을 때 우리가 왜 맞불을 놓는지 아는가. 작은 불씨에 물병 하나만 끼얹으면 될 수도 있는데.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이미 번진 산불은 어디까지 더 커질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일개 필부인 나조차도 알고 있었던 사실을 지금의 위정자(위선에 가득 찬 집정자)들만 모르고 있다.


이 밖에 친구들, 주변 사람들과의 소소한 일상을 예로 든다면 끝도 없다. 그래서 한때 내게 가장 맞는 일은 LC가 아닐까 생각했었다. 보험을 파는 LC가 아니라, 진짜로 다른 사람들의 삶을 컨설팅해 주는 Life Cousultant. 지금도 이런 바람은 가지고 있다. 물론 어떤 식으로 수익을 내고, 돈을 받아야 할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아서, 그리고 다들 무료이기 때문에 수없이 많은 상담을 받지만 돈을 내고도 물어볼지는 회의적이라서 쉽게 시작하지 못하고 있다. 아마 그렇게 평생 무료봉사나 하지 않을까.




그렇다. 나는 영리한 사람이라 자부하고, 앞으로도 세상은 결국 내가 예측하는 대로 흘러갈 것이라는 강한 확신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내 삶을 영리하게 살지 못했다. 더 슬픈 건, 앞으로도 내 삶은 별로 영리하지 못할 것 같아서다.


회사는 계속 내리막길일 거다. 망해 가는 회사일수록 되지도 않는 신사업을 벌린다. 딱 우리 회사다. 게다가 회사 직원의 절반이 월급 도둑이다. 정년을 55세로 단축하지 않는 이상 이 회사에는 미래가 없다. 이 모든 사실을 다른 직원들은 몰라도 나는 알고 있다. 그런데 나에게도 대안이 없다. 이 회사를 만 6년 이상 다니면서 나도 이 안락한(?) 생활에 많이 익숙해졌고, 무엇보다 이젠 다른 일을 시작할 용기도 재능도 없다. 그래서 겨우 내가 내린 한 가지 판단은 '회사 일에 신경을 쓰지 않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노조도 탈퇴했고. 모든 것을 나만큼 예측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나만큼 우려를 가진 직원들도 없지 않다. 나는 정말 회사 일에 신경을 쓰고 싶지 않은데, 그럴 때면 굳이 내게 와서 이런저런 일을 전해 준다. 그나마 내가 했던 영리한 선택이 회사 일을 신경 쓰지 않는 것이었는데, 인간관계를 모두 단절하지 않으니 그것조차도 어렵다. 나는 또 영리하지 못한 삶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집값으로 스트레스를 받고 우울해 할 일이 아니었다.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나도 적극 거기에 뛰어들었어야 했는데. 심지어 내게는 좋은 물건(?)을 물어다 주는 친구도 있었다. 만약 그 친구가 사라는 것만 샀어도 나는 떼부자가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그러지 못했다. 부모님께서 나를 잘못 키우셨던 까닭에. 지금도 나는 그 생각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내가 생각해도 과다한 가격의 집인데, 그것을 내가 사는 것도 불만이지만 거품이 분명한 가격을 받고 다른 사람에게 팔아넘기는 것이 과연 정당한가, 그리고 내가 이렇게 돈을 버는 것도 과연 정당한가에 대한 강한 회의가 있다. 이런 마음을 가지고 살 거라면 유럽의 시민의식이 강하게 발달한 어떤 나라에서 태어났어야 했는데, 나는 잘못 태어났다. 하필 돈이면 다 되는 한국이라니. 문제는 내가 아직도 돈이면 다 되는 한국에 완벽하게 적응을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 나이에 이런 말을 해서 웃기지만, 부모님께서 자식을 잘못 키우셨다. 도덕, 윤리, 가치, 노동이 어떻든 물질만능주의의 자식으로 키우셨다면 나도 지금 세상에서 한몫 했을텐데.




처음 마켓컬리가 광고를 시작했을 때였다. 그 광고를 보는 순간, 수익성은 조금 떨어질지 몰라도 패러다임이 변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나도 저 회사에 투자하고 싶다!'고 마음먹고, 주위를 알아보았다. 그러나 지금까지도 마켓컬리는 상장사가 아니다. 기껏 알아본 친구가 어떤 사모펀드를 이야기해 주었다. 그곳이 마켓컬리에 투자하고 있으니, 그곳을 살 수 있다는 식으로. 자본가도 아닌 내가 거기에 투자한다고 해 봤자 고작 몇백만 원밖에 되지 못했다. 그렇게 나는 성공할 줄 알면서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랬던 마켓컬리가 올해 말이나 내년 초에 상장을 한다는 기사가 올라왔다. 만약 내가 마음먹었던 그때 투자를 했다면 난 도박장에서나 거둘 수 있는 수익을 올렸을 것이다. 기업투자이기 때문에 이것이 부도덕한 것도 아니다. 그러나 나는 성공할 것이 뻔한 투자도 할 수 없었다. 이런 결과를 놓고 한탄했더니 한 선배가 그런 말을 해 주었다.


"그래서 네가 힘든 거야. 차라리 모르고 살면 아무렇지도 않을텐데. 알면서 안 되니까 스트레스를 더 받는 거라고."


나는 비록 영리하지만, 내 삶은 영리하지 못하다는 것을 인정할 수 있다. 그런데 내가 영리하지 못한 삶에서 가장 힘든 것은 현실적으로 부닥친 손해가 아니다. 망해 가는 것을, 무너져 가는 것을 보면서도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 그리고 그 과정에서 제발 나의 생각과 예측이 틀렸으면 바라는 스스로의 확신이 버려지기를 바라야만 한다는 것이 가장 어렵고 힘들다. 어찌 보면 가장 영리하지 못한 것은 내 마음이다. 현실적으로는 어렵더라도 마음이라도 편하고 쉬운 삶을 살았으면 좋겠는데, 영리함이 오히려 그것을 제약한다. 재능을 펼칠 환경이 주어지지 않는다면, 오히려 그 재능은 재앙이 되고 만다. 조선시대의 노비에게나 해당되는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그러고 보니 나도 지금 노비인 것 같지만) 지금의 나도 그렇다. 영리한 사람의 영리하지 못한, 참으로 별로인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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