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onest Sep 27. 2021

게으른 자에게 주어진 벌

지난해 내가 브런치를 시작할 수 있었던 것은 한 공모전 덕분이었다. 아마도 재작년이었나 본데 한 글쓰기 공모전에서 수상한 글을 브런치에 보냈고, 브런치 작가로 시작할 수 있었다. 그런 공모에, 응모에 조금 더 일찍 눈을 떴다면 좋았으리라. 아쉬움이 없지 않았지만 그나마 지금에라도 눈을 뜨고 욕심을 가지게 된 것에 다행이라 생각하며 살았다. 그리고 지난해 11월에 또 한 공모전이 있었다. 지난해에는 12월에 더 큰 공모전이 많이 있었던 까닭에 그 공모전을 그냥 지나쳐 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올해는 마지막 기회이니 꼭 응모해야지, 하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마감일이었던 어제까지 결국 나는 공모작을 내지 못하고 말았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바로 내가 게을렀던 탓으로.




일요일인 어제가 응모 마감일이었다. 목요일까지 서류로 준비할 수 있는 것은 모두 끝내 놓고, 마침 금요일에 집에서 쉬게 된 까닭에 금토일 3일 중 하루만 집중해서 준비하면 공모전에 무리없이 응모할 수 있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목요일에는 잠도 잘 잤다. 글을 쓰는 것도 상당한 집중력을 요하는 일이라 금요일에 한나절 집중해서 잘하면 응모작을 완성할 수 있으리라 싶었다. 마침 그 응모작의 초안도 이 브런치에 올라와 있다. 그런데. 그놈의 시간 여유가 문제였다. 금요일에는 토일 이틀이나 남아 있다 보니 결국 어영부영 하루종일 게으름을 피우다 하루를 보내고 말았다. 또 금요일에는 잠도 설쳤다. 토요일에는 이른 저녁부터 일본에서 오랜만에 귀국한 후배를 만나기로 약속이 되어 있었는데, 늦잠을 자고 일어나니 바로 준비해서 약속을 나가야 할 형편이었다.


토요일 밤에는 무거운 발걸음으로 집으로 돌아오면서 아직은 하루가 남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갑자기 집안에 돌발변수가 생겼고, 이런저런 일을 처리하고 예정되어 있던 약속까지 모두 취소한 끝에 돌아온 시간이 일요일 오후 5시였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그때부터 집중해서 글을 붙잡고 썼지만, 계획했던 분량의 1/3밖에는 완성하지 못했다. 모두가 알다시피 일요일 저녁은 텔레비전의 최고 황금시간대다. 즐겨 보던 프로그램과 뉴스, 드라마를 보고 나서 나머지 2/3를 완성하면 되겠다 싶었는데, 토요일 밤에 갑작스럽게 생긴 집안일의 여파로 전날 밤늦게까지 운전을 한 데다 잠까지 설쳐서 일찍부터 졸음이 몰려 왔다. '그래. 그냥 다시 잘 다듬어서 12월에 있는 공모전에 내지 뭐.' 그래도 내일은 미리 완성을 해 두어야겠다고 다짐하며 잠자리에 들었다. 그리고 오후 3시를 눈앞에 둔 지금, 나는 그 글은 열어 보지도 않고 있다.


이번 공모전은 응모 자격에 제한이 있어서 나는 올해가 평생의 마지막 기회일 수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날려 버리고 말았다. 마감일을 탓할 것도 없다. 자유 주제로 형식도 정해져 있다. 작년에 그 공모전을 알았을 때부터 나에게는 거의 10개월에 가까운 준비할 시간이 있었던 셈이다. 물론 이렇게 작년보다 두 달이나 빨리 할 줄은 모르기는 했다. 공모전 일정을 뒤늦게 알았지만 지난 금토일 3일이나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이 있었다. 마침 지난 주말은 평소와는 다르게 약속이 많이 있기는 했지만, 그래서 금요일도 쉬었다. 그런데 정말 쉬고 말았다. 이럴 것 같았으면 차라리 금요일에 쉬지나 말 걸.




불과 십수 개월 전까지만 하더라도 나는 부지런한 사람에 속한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물론 그 부지런함이 모두 거기에 걸맞는 소득을 올린 것은 아니었지만 첫 번째 석사를 따고 나서는 바로 두 번째 석사를 준비했고, 두 번째 석사를 따면서 세 번째 학사 입학을 준비했다. 그리고 1년 반쯤 전에 세 번째 학사까지 잘 마쳤다. 모두가 다 알다시피 그 이후 우리에게 코로나가 찾아왔다. 실은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 많이 늘면서 내가 무언가를 하거나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은 더 많아졌다고 보아야 옳다. 실제로도 그렇다. 돌아보니 올 한 해는 지난 9개월 내내 일주일에 3일만 출근하고 이틀은 재택근무하는 삶이었다. 하루에 출퇴근에 왕복 3시간 가까이 걸리는 내 현실을 생각하면, 거기에 출근 준비 등에 소요되는 시간을 더했을 때 실제로 나는 일주일에 거의 하루가 보너스로 주어지는 삶을 살았던 것이다. 그런데 그 시간을 나는 어떻게 보냈던가.


시계를 6년 전으로 돌려서 첫 번째 석사학위를 땄던 때를 돌이켜 보자. 주말에는 도서관을 가고, 평일 밤엔 대학원 같은 전공 사람들의 세미나에 참석해 가며 석사학위논문을 썼다. 만약 그때 내게 지금처럼 일주일에 하루의 선물이 주어졌다면 이루 말로 다할 수 없이 행복해 하며 논문을 더 깊이 있게 완성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을 것이다. 그럼, 지금의 나는 할 일이 없나. 나는 석사학위논문을 제출하기는 했지만 아직 학술지에 공식 발표는 하지 않았다. 벌써 몇 해 전부터 공식 발표하면 도와주겠다는 S(샤)대학의 교수님도 계시고, 그야말로 나는 글만 완성하면 되는 상황인데 여전히 시작의 '시'자도 내딛지 못하고 있다.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바로 나의 게으름 탓이다.


물론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처음에는 평일에 이틀의 재택근무를 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 좋았다. 이제는 결혼을 하고 자녀를 둔 친구들이 많아서 평일 낮에 회사 근처로 찾아가지 않고서야 볼 수 없는 친구들도 많아 전날 밤 미리 일을 해 두고 점심에는 나들이를 다녀온 적도 몇 번 있다. 개중에는 정말 몇 년만에 만난 친구들도 적지 않고, 지난 10개월의 처음 몇 달은 나름대로 이런 만남과 약속으로도 스스로 뿌듯해 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나는 올해부터 새로운 운동을 시작했다. 멀리까지 다녀와야 하는 매우 특별한 운동인 까닭에 아마 올해와 같은 계기가 없었다면 시작하지 못했을 터다. 그러나 막상 또 곰곰이 생각해 보면 새로 시작한 운동에 들인 시간은 지금까지 고작 13시간에 불과하다. 하루종일 할 수도 없지만, 하루종일 했다고 치면 고작 이틀도 안 되는 시간을 보낸 것이다. 친구들과의 만남도 마찬가지다. 그것이 지난 10개월 동안 매주 주어진 보너스 같은 하루에 했던 일이라고 생각하기엔 너무나도 작고 초라하다.


브런치도 마찬가지다. 15년쯤 전에 내가 처음 블로그를 시작했을 때, 처음에는 하루에도 서너 편의 글을 올렸었다. 덕분에 유명한 블로거가 되어 인터뷰도 할 수 있었던 거다. 처음에는 브런치에 일주일에 한 편이라도 글을 써야지, 그건 정말 금방인데, 라고 생각했었지만 지금 보면 어떤가. 그나마 오늘의 이 글도 어제의 응모 마감일을 놓치는 일이 있지 않았더라면, 그런 양심의 가책이 없었다면 쓰지 못했을 글이다.




응모작을 냈어도 떨어졌을 수도 있다. 뭐라도 해 보려고 했어도 결과가 좋지 않았을 수도 있다. 만약 내가 그 모든 것에 실패했다면 '차라리 쉬는 것만도 못했잖아' 라고 후회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게을러서 이 모든 것을 시도해 보지도 못한 사람에게는 더 큰 벌이 기다린다. 자괴감과 자기혐오. 이제는 그만 나를 덜 싫어하고 스스로를 좋아해야겠다고, 그렇게 긍정적이어야 뭔가 더 발전도 있고 좋아지지 않겠냐고 생각하고는 하지만, 게으름으로 인해 이렇게 나에게 주어진 기회(?)를 하나씩하나씩 날리다 보면 결코 나를 어여삐 여길 수가 없다. 남는 것은 그저 '역시 안 되는구나', '다 내 탓이지' 하는 후회뿐. 실은 이것만 피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도전과 시도는 그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


늘 내게 시간이 주어지길 바랐다. 시간이 주어지면 논문도 발표할 수 있고, 그럴 듯한 글도 많이 쓸 수 있고, 책도 많이 읽을 거라고 다짐했었다. 그러나 돌이켜 보니 시간은 주어졌으나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었다. 우리 사회가 '독감처럼 코로나19와도 더불어 사는 사회'로의 전환을 눈앞에 두고 있다. 이제 정말 내게 보너스처럼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다. 작은 것 하나만이라도 다짐하고 실천해 나가야 할 때다. 아니, 큰 것은 아마 할 깜냥도 없을 거고.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지 않으면서 작은 것 하나만이라도 지금 당장 실천'하는 삶을 지금 바로 시작해야겠다.


더는 내가 싫어지지 않도록.

작가의 이전글 영리한 사람의 영리하지 못한 삶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