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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nest Sep 08. 2021

<기생충>의 송강호는 받지 못하는 이상한 재난지원금

2021년의 재난지원금 지급은 과연 공정한가

못 받을 것을 알고 있었다. 우리집도 4인 가구라면 아마 받을 수 있었겠지만 안타깝게도 나와 아내는 '사회적 불임'인 까닭에 우리는 2인 가정이다. 소득이 없는 부모님께서 피부양자로 등록되어 있어서 혹시나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 보지 않은 건 아니지만, 주소가 다르기 때문에 해당되지 않는다. 주소가 다른 자녀는 부모에게 포함되어 계산된다던데, 이건 또 무슨 차이인지 모르겠다.(그러나 이것은 납득할 수 있다. 그래도 아버지는 국민연금은 받고 계시니까.) 아침에 카드사앱으로 조회해 보았다. 그래도 혹시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역시나 나는 대상이 아니었다. 너무 일찍 조회했나 싶어서 한두 시간 뒤에 다시 들어가 보았다. 그런데도 나는 대상이 아니라고 한다. 내가 정말 대한민국의 상위 12%인가.




한 정당의 대선 후보 TV토론회에서 어떤 후보가 다른 후보에게 질문을 던졌다고 한다. <기생충>의 이선균에게 지급할 여유가 있다면, 송강호를 더 돕는 것이 합당하지 않겠느냐는 질문이었다. 그러면서 이선균을 지원하지 않는다고 이선균의 조세저항이 올라갈 것이라는 이야기에는 부유층의 명예와 자부심을 손상시키는 것이라는 궤변(나는 궤변이라고 생각한다.)을 늘어놓았다.


그래서 지금 인터넷에는 수많은 자부심과 명예가 난무하고 있다. 나도 12%의 국민에 해당한다는 자부심을 선물로 받았다. 만약 내가 정말 나 스스로 인정할 수 있는 우리나라 상위 12%의 국민이라면 어쩌면 나도 자부심과 명예로 그것을 대신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그 12%를 과연 공정한 제도와 원칙에 의해 선발했나? 행정편의주의적으로 자기들 마음대로 정하고, '대신 너희들에게는 자부심을 줄께'라는 망언으로 손쉽게 대체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오늘 본 어느 인터넷 댓글은 정말 압권이었다. '나라에서 저에게 자부심으로 재난지원금을 대신한다니, 저는 이제 애국심으로 세금을 대신 내도 될까요?' 진심으로 이렇게 하고 싶다.




그 후보의 발언이 무색하게 놀랍게도 이번 재난지원금은 송강호의 세금으로 이선균을 돕는 시스템이다. 한 번 볼까.(일부 과장과 비약이 있을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전부 비합리적인 추론은 아닙니다.)


일단 송강호 가족은 4인 가정이 모두 일을 하고 있다. 이선균 집안이 상당히 부유층임을 감안할 때, 풀타임으로 일하는 송강호와 장혜진은 대략 월 300만 원 이상의 수입은 올릴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두 자녀도 그 집에서 과외 선생으로 일하고 있다. 정확한 급여는 예측할 수 없으나, 상당한 고액과외일 것으로 보인다. 두 자녀가 각각 한 달에 200만 원 정도의 수입을 올린다면 이 집안의 소득은 1천만 원으로, 부부의 맞벌이를 감안하더라도 이번 재난지원금 기준액을 훌쩍 넘긴다.


반면 이선균은 어떨까. 이선균이 꼭 급여생활자일 것이라고 단정하지 말자. 고 이건희 회장은 오랫동안 삼성에서 급여를 한 푼도 받지 않았다. 물론 상당한 배당 수입 등이 있었지만. 만약 이선균도 자신의 회사이기 때문에 급여를 받지 않고 일하고 있다면 어떻게 될까. 하물며 그 회사가 꼭 상장사라는 법도 없다.(배당이 정기적이지 않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이선균의 차는 어떤가? 그 정도의 차를 탄다면 비용이 꽤 들 거라고? 이선균이 출퇴근할 때 타는 차는 아마 그 회사차일텐데? 이선균의 씀씀이를 생각했을 때 어느 정도의 수입과 자산은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선균이 급여를 받지 않고 있다면, 그리고 그 집이 서울의 어떤 부유한 동네가 아니라면 이선균은 충분히 재난지원금을 수령할 가능성이 있다. 모든 고급주택이 서울의 부유한 동네에 있다고만 생각하지 말자. 주변 신도시에도 그런 고급주택은 얼마든지 있다. 이선균의 주택은 상당히 관리를 잘한 것 같아 보이지만, 이번 재난지원금의 자산 커트라인은 시가 21억 원 상당이다. 그 집이 서울이나 신도시 중에서도 분당, 판교에 있는 것이 아니라면 이선균은 송강호가 낸 세금으로 75만 원의 재난지원금을 받을지도 모른다.


여기에는 많은 가정이 있다. 일단 송강호 가족은 모두 이선균 가정에 의해 임의채용되어 4대 보험을 적용받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4대 보험의 테두리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에 아마도 재난지원금을 받을 수 있을테지만, 그렇다면 또 여기에서도 의문이 남는다. 한 달에 1천만 원의 수입을 올리는 가정이 4대 보험에 가입되어 있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재난지원금을 받는 건 또 공정한 것인가? 그리고 이선균이 자신이 대표인 회사에서 일을 하기 때문에 급여를 많이 받지 않아야 한다는 조건이 또 있다.(그러나 이런 경우는 매우 흔하다.) 여러 가정이 맞아떨어져야 하긴 하지만, 우리는 실제로 주위에서 이런 사례를 숱하게 보았고, 또 가능성이 없지 않다.


결국, 이번 재난지원금이 이선균의 세금으로 송강호네 가족을 돕는다는 가정은 틀렸고, 어쩌면 거꾸로일 가능성조차 있다.




차분하게 생각해 보았다. 나와 아내가 죽을 때까지 지금처럼 아껴 쓰며 성실히 일한다고 했을 때, 21억 원짜리 집을 마련할 수 있을까? 불가능할 것이다. 21억 짜리 집을 대출없이 산 사람이 어디 있느냐고 한 경우도 보았는데, 40%의 대출을 감안해(사실은 40%까지 대출되지 않지만) 그 집의 순자산이 대략 13억 정도라고 가정해 보자. 그럼 나와 아내가 죽을 때까지 성실히 일하면 13억을 모을 수 있을까? 그것도 불가능하다. 그런데 그 사람보다 내가 더 여유 있는 상류층이란 말인가? 나라에서 판단하기에는?


가구원 수의 차이는 있지만 친한 친구 2명과 함께 나까지 셋이 있는 단체카톡방이 있다. 그중에서 나만 재난지원금을 받지 못하는데, 다른 두 친구는 모두 심지어 서울에 집을 가지고 있다. 한 친구는 현재 전국 각지에 집을 4채 이상 가지고 있고, 그 친구 혼자 버는 수입이 우리 부부가 함께 버는 수입보다도 더 많다. 물론 이 친구는 4인 가정이다. 그래. 사람에 따라서는 4인 가정을 돕는 게 2인 가정을 돕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애가 둘이니 돈이 얼마나 많이 들어가겠는가? 곧 아이의 취학 연령에 맞추어 그 4채의 집을 정리하고 잠실의 준신축 아파트(이렇게 적으면 어떤 단지일지 거의 대부분 알 거라고 생각한다.)에 대출도 없이 들어갈 예정인 이 친구보다, 내가 더 여유 있는 사람이라고? 다른 친구는 부인이 작은 회사의 대표로 있다. 그래서 부인의 수입을 임의로 조정한다. 수많은 복지혜택을 누리기 위해서. 우리나라는 이런 경우가 꽤 많다. 물론 그 친구도 자녀가 한 명 있다. 그래, 아이 있는 집을 아이 없는 집이 도와야 할 수도 있다. 그런데 그런 도움이, 여건이 안 되어서 아이를 낳지 못하는 거라는 생각은 아예 하지 못한 건가? 그렇게 치면 아이가 넷인 이서현(이재용 부회장 동생)을 먼저 도와야 할 것 같은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워낙 줄세우기에 친숙하기 때문에 전 국민의 자산과 소득, 부채 등을 잘 계상해서 등수를 매긴 다음 뒤에서부터 88%까지 재난지원금을 줬다면 이런 불만이 덜했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했을 때도 88.01%에 있는 사람과 79.99%에 있는 사람 사이에 소득 역전 현상이 발생하기 때문에 재난지원금은 결코 공정해지지 않는다. 지난 5년 동안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많이 이야기했던 것이 공정, 정의, 공평 같은 것이었다. 그런데 5년이나 부르짖었던 공정과 정의, 공평의 대가가 고작 이런 것인가. 위정자들은 정말 지금의 88% 지급이 최선이고 공정하며, 상위 12%(그것조차도 과연 맞는지 의구심이 들지만)의 사람에게는 자부심과 명예가 주어졌기 때문에 최고의 결과라고 생각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한 정당의 유력 후보가 기본소득을 주창하면서 이번 대선에서는 기본소득이 중요한 의제로 떠오를 모양이다. 나는 그 후보가 과연 기본소득에 대해 얼마나 잘 이해하고 있는지는 의문이지만, 우리 사회가 공정과 정의를 위해 치러야 할 비용(당장 지금의 이 재난지원금만 보더라도)을 생각했을 때, 모두에게 지급하는 기본소득이 앞으로 우리가 나아가야 할 하나의 방향임에는 틀림없다고 생각한다. 적정한 기본소득이 지급되면, 그것으로 수많은 복지수당을 대체할 수 있고, 심지어 최저임금마저 국가에서 일부 대신 지급하는 셈이 되어 고용주에게 덜 부담을 주게 된다.(물론 모두에게 지급되는 기본소득으로 인한 물가상승 등의 부의 영향도 감안해야 한다.)


기본소득 도입에 앞서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과연 기본소득으로 복지수당, 재정보조, 사회보험 등을 대체할 수 있느냐이다. 사람들은 이미 받고 있는 것은 당연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기본소득으로 그것을 대체한다고 할 때에는 지금의 복지수급자들은 오히려 손해라고 느낄 수 있고, 저항이 상당할 수 있다. 결국 앞으로 좋은 일자리는 많이 사라질 수밖에 없고,(우리는 이제 모두 배달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 소비시장을 만들고 사람들의 최소한의 삶의 질을 유지하기 위해 어느 정도의 소득보전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나는 기본소득은 필요하다고도 보지만, 기본소득 도입 이후의 복지시스템을 어떻게 할지에 대한 생산적인 논의 없이 겨우 '이선균에게도 재난지원금을 주자는 것이냐?'(심지어 정작 받아야 할 송강호는 받지 못하는데)는 식의 유치한 논의를 바라보고 있지만 마음이 참 어둡다. 기본소득과 관련한 수많은 책을 보았지만, 기본소득이 복지를 대신할 수 있다는 단순한 논리만 있었을 뿐, 그 과정에서의 저항을 어떻게 극복할지에 대한 논의는 하나도 없었다.


마음이 정말 어둡다. 집정자들은 이번 재난지원금으로 내년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큰 이득을 바랐던 것 같은데, 그런 얄팍한 기대로 국가의 예산 수십조 원이 쓰였다. 물론 그 모든 돈은 소비되겠지만, 그중에 정부에서 기대했던 순증효과는 얼마나 있을지는 회의적이다. 하물며 그 과정에서 공정과 정의, 공평 등의 가치는 다시 또 큰 상처를 입었다. 반면 재난지원금은 오히려 사람들에게 기본소득이 왜 더 공평한지에 대해서는 돌아보게 하는 계기는 되지 않았나 싶다. 예비 경기도민으로서 지금 경기도에 사는 사람들이 진심으로 부럽다. 물론 나는 자산과 소득, 부채 등을 세밀하게 측정해서 88%의 국민에게 재난지원금을 줬다면 혹시 내가 88.01%여도 수용할 용의가 있다. 그런데 지금처럼 (모두 그런 것은 아니고 허점이겠지만 그렇다면 허점 없이 제도를 만드는 게 집정자들의 의무다.) 더 많은 소득을 벌고, 더 많은 아니 셀 수 없이 많은 자산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조차도 지급되는 재난지원금을, 여유가 없어 아이를 갖지 못하는 가정에게 지급되지 못하는 현실은 납득하기 어렵다.


이런 나라에서, 저렇게 한심한 집정자들에게는 애국심으로 대신할 세금조차 아깝다. 암울한 밤이다.




# 출처를 명확히 밝히신다면, <기생충> 비유는 여러 곳에 퍼나르셔도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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