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onest Aug 02. 2021

나는 왜 사는가

며칠 전 길을 걷다 말고 갑작스레 '나는 왜 사는가'에 대한 의문이 들어서 무척 우울해졌다. 사람이 사는 이유는 다양하다. 누군가는 사는 것 자체가 행복할테고, 또 그때 같이 있었던 다른 직원분처럼 자녀를 기르면서 사는 이유를 찾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어떤 사람은 사랑하는 짝이 있어서 그 사람이 삶의 이유가 되기도 할테고, 행복하지도 즐겁지도 않은 삶이더라도 자신이 이 세상으로부터 부여받은 사명감 때문에 사는 사람도 있겠다. 어떤 이유로든 누군가는 삶이 너무 즐거워서 누군가는 자신이 세상을 살아야만 하기 때문에 세상을 계속 살아가고 있을텐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내게는 그 어떤 것도 해당하지 않았다. 갑작스레 막 먹었던 점심이 도로 올라오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나는 그냥 밥버러지일뿐이었던가...'


돌이켜 보면 살면서 내가 '행복하다'고 느꼈던 때는 손에 꼽지 않나 싶다. 결국 나는 한 번도 행복해서 사는 사람은 아니었고, 행복하기 위해 산다는 생각은 해 본 적도 없다. 그나마 서른 살 정도까지는 나름의 사명감(?)을 가지고 세상을 살았던 것 같다. 누구도 내게 부여한 적이 없는 사명감이었지만 나름대로 그 사명감이 내가 사는 이유가 되었기 때문에 그때의 나는 늘 자신만만했다. 세상이 부여한 사명감에 사는 사람에게는 세상이 또한 그만큼의 보답을 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래서 30년 가까이 의미를 부여하며 살았던 학업에서 떠나게 되었을 때 무척 괴로웠던 기억이 난다. 그때 나는 스스로 밥 먹는 것조차 무척 혐오했었고, 가끔씩 나를 '두 발로 걷는 돼지' 정도로 여겼던 듯 싶다. 어떤 이유로든 다행히 그때의 자기혐오감을 극복하고 이렇게 살게 되었지만, 회고해 보면 그 이후로는 '내가 왜 사는지'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전화영어 수업을 하다 보면 가끔은 이런 '나는 왜 사는가'와 같은 철학적인 질문에도 맞닥뜨리게 되는데, 그때 내가 했던 대답은 '내가 태어나기 전보다 조금 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와 같은 막연한 이상이었다. 막연한 이상이라고 하기에는 사명감을 잃은 후로 지난 10년간은 거의 이런 생각을 가지며 살았고, 그래서 늘 일상생활 속에서도 일회용품도 덜 쓰고, 덜 버리며 자원 자체를 아끼려고 노력하면서 살아오기는 했다. 물론 그것이 내 삶을 희생한 형태인 적은 한 번도 없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과연 나의 삶의 이유라는 것이 정당한 것인가 회의가 생기기도 한다. 비행기 운항이 탄소발자국이 그렇게 많이 찍힌다던데, 나는 비행기 타는 것을 그렇게 좋아한다. 물론 그렇다고 해 봤자 살면서 몇 번이나 타 보았겠느냐만은.


40년 가까운 인생을 살아온 결과 이제 나는 사명감에 가득 찬 삶보다는 행복해서 사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 사명감이라는 것은 기실 누구도 그에게 부여한 것이 아니며, 어쩌면 스스로의 위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에 조금 더 솔직해져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지금 내가 행복한가, 즐거운가 돌아보면 결코 그렇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내 삶의 이유가 되는 자녀가 있는 것도 아니요, 열렬히 사랑하는 누군가가 내 삶의 이유가 되어 주지도 않는다. 정말 나는 왜 살고 있는 것일까. 행복하지도 즐겁지도 않으며, 늘 우울하고 불만 가득하며 이렇게 별로인 삶을.


사람의 인생은 다 살아보기 전에는 알 수가 없는 것이라 어쩌면 다른 사람들이 내게 이야기하는 것처럼 어느 날 내 삶에 기대하지도 않았던 엄청난 환희가 찾아올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냉정하게 내 삶을 바라보면 그럴 일은 거의 없다는 것을 나는 모르지 않는다. 늘 내가 이야기하지만 앞으로의 내 삶은 더 나빠지면 나빠졌지, 좋아질 일은 별로 없을 것이다. 결국 지금도 좋지 않은 삶에서 앞으로 더 좋지 않아질 삶이고 만다면, 나는 왜 살아야 하는 것일까. 그리고 왜 사는 것일까. 사는 이유가 꼭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닐지 모르겠지만, 이유도 없는 삶이라면 실은 그 삶이 없는 것이 세상엔 더 보탬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작가의 이전글 우리가 뽑아야 하는 지도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