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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nest Jul 31. 2021

우리가 뽑아야 하는 지도자

대한민국 역사에서 그렇지 않았던 시기가 얼마나 있었느냐고 묻는다면 할 말이 없겠지만, 지옥 같았던 15년의 시간을 뒤로 하고 내년이면 다시 대통령 선거를 치르게 된다. 특히 나에게는 지난 5년간의 시간이 더욱더 지옥 같았다. 지금의 대통령이 최선의 선택이라고 여기진 않았었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이번 정부의 출범에 기대를 건 바가 컸었는데, 모든 것은 염려하던 대로 되었던 반면 기대했던 것은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못했다. 내가, 그리고 우리가 지도자를 잘못 선택한 탓이다.




그 어떤 지도자라고 해도 자신이 속한 국가 혹은 지역의 쇠망을 원하는 사람은 없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물론 개중에는 자신이 대표하는 국가나 지역보다 자기 자신 혹은 가족의 영달을 우선하는 지도자는 있었을 것이다. 아니 우리 역사에도 있었다. 그러나 그런 지도자의 경우조차도 자신이 이끄는 국가와 가족이 모두 함께 좋아지는 쪽을 더욱 선호했으리라. 다만,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경우에는 본인과 가족을 우선하는 경우도 있었겠지만.


그런 점에서 나는 대한민국의 저승사자 같았던 지난 15년 동안의 대통령들조차도 실은 나라를 생각하는 애국심은 가득 차 있었을 거라고 본다. 결과가 좋지 않았던 것은 그들도 의도하지 않았던 것이다. 선의로 가득한 정책을 편다고 해서 결과도 선해지지는 않는다. 더불어 세계는 물론이고 우리나라조차도 그들이 생각했던 방향대로 흘러가지 않았을 것이다. 아마 그들이 꿈꾸는 세상은 그런 세상이었을 것이다. 모두가 행복하고 부자가 되어 있으며, 우리나라는 세계적으로 대접받는 그러한 세상. 그들이 꿈꾸었던 세상 속에서 누군가는 행복을, 누군가는 부를, 누군가는 지위를 누렸겠지만 결과적으로 그들이 원했던 세상은 눈곱만큼도 이루어지지 못했고, 실은 나는 당연히 그렇게 될 거라고 생각했었다. 물론 늘 내가 틀리고 그들의 기대가 옳기를 바랐지만.




사람들은 늘 최선의 기대를 가지고 지도자를 뽑는다. 그게 틀렸다. 지난 15년의 역사는 우리에게 그것이 틀렸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무엇이든 그들이 기대했던 대로 생각했던 대로 펼쳐졌다면 좋았을 것이다. 대통령의 측근도 모두 양심적이고 도덕성이 충만하며, 능력 또한 완벽한 사람이었다면 좋았겠지. 그러나 모두가 알다시피 대통령들이 발탁한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A라는 정책을 펴면 B라는 결과나 나오길 기대했을 것이다. 사람들은 A라는 정책에서 C라는 방향을 읽고, D라고 행동할 것이라고는 전혀 예측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 와중에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E라는 글로벌 금융위기도 있었고, F라는 세월호 사고도 겪었으며, G라는 코로나19마저 터졌다. 모두가 다 최선의 결과를 이끌어 내길 기대했던 대통령들의 기대에는 없었던 것들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코스피지수가 5천을 갈 것이라고 호언장담했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올 줄 몰랐을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국민행복시대를 여는 474 성장을 내걸었다. 유럽 재정위기, 세월호 사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나라를 만들겠다고 했다. 결과적으로 만들었지만 아마 이런 식은 아니었을테지. (그래서 난 문재인이 가장 나쁜 대통령이라고 생각한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는 코로나19 때문에 온 것이 아니다.)




대통령이 아니라 한 번 우리의 삶을 돌아보자. 우리가 기대했던 대로 최선의 방향으로 결과가 펼쳐지는 일이 삶에 얼마나 있던가. 누구나 다 결혼하면 행복하게 살 것 같지만 실제로 그렇게 사는 사는 부부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운수 좋은 날>이라는 소설이 있다. 주인공은 유달리 운 좋은 하루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오지만 결과는 어땠던가. 그래서 우리는 기대했던 대로 모든 것이 잘 펼쳐지는 '선물 같은 하루'를 인생에 정말 꼽을 만큼 드물게 경험한다. 아마 대통령들에게도 5년 임기 중에 그런 날이 없진 않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그 며칠을 기대하고 지도자를 뽑을 수는 없는 것 아니던가.


최선의 환경에서 최고의 결과를 기대하는 지도자보다, 부디 최고가 아니더라도 그 과정에서 있을 부작용과 최악의 상황을 대비하는 지도자가 대통령이 되었으면 좋겠다. 한때 플라톤이 이야기한 철인정치가 맞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한 적도 많았다. 많은 국민이 우매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혹여 그렇게 대부분의 국민이 우매하다고 하더라도 지도자는 그 환경에 맞추어 국가를 이끌어가야 한다. 자신이 이끄는 대로 나라가 움직이지 않는다고 우매한 백성을 탓할 지도자라면, 우리에겐 필요없다. 어쩌겠는가. 우매한 국민은 모두 내쫓고 일부 우수한 국민만 가지고 나라를 운영해 갈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혹여 그렇게 할 수 있다고 치자. 그렇게 되면 그때 발생하는 격심한 인구변화에 과연 그 지도자는 대비가 되어 있을까. 그것조차 예비한 지도자라면 더욱 필요없다. 그 지도자는 다른 작은 나라를 가서 이끄는 것이 마땅할테니.


기대를 가지고 지도자를 선출한다는 것은 정말 위험한 일이다. 우리는 그것을 한 번도, 두 번도 아닌 무려 지난 15년의 세 번의 경험을 통해서 깨우쳤다. 지지하는 사람이 많은 지도자가 되기보다는 반대하는 사람이 적은 지도자였으면 좋겠다. 자신의 선택과 결정에 확신을 하는 지도자보다는 반대편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고뇌하는 지도자여야 하겠다.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지지를 많이 받는 사람이기보다는 적이 많지 않고 고루 호감을 얻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무능하지 않은 지도자였으면 좋겠다. 지난 15년간의 대통령들은 모두 이런 지도자상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었고, 그 결과는 우리가 익히 경험해서 알고 있지 않던가.




내가 이런 글을 쓰는 이유는 안타깝게도 내년에도 사람들은 최악을 피할 수 있는 사람보다 자신이 기대하는 최선의 사람을 뽑으려고 할까 싶어서다. 물론 대통령은 한 시대의 상징 같다고도 볼 수 있기 때문에 각자 자신이 기대하는 사람을 뽑는 것이 꼭 틀렸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 기대가 실망으로, 그리고 후회로 바뀌는 시간은 또 과연 얼마나 짧았던가. 결코 나라는, 국민은, 그리고 이 세상은 지도자들이 기대했던 방향과 환경대로 이루어져 있지 않고 그렇게 되지도 않는다. 최선의 기대가 최악의 결과를 가져오는 것보단 우리 삶이 그래도 더 나빠지지는 않도록 최악의 결과는 피하는 쪽이 더 좋지 않겠는가. 안타깝게도 최악을 피하는 사람일수록 대중들에게 인간적인 매력도 또한 떨어지는 것처럼 보인다. 건국 이래 최고 무능해 보이는 지금의 대통령이 아직도 40%의 지지도를 받고 있는데, 그를 직접 본 나 또한 그가 왜 사람들로부터 이런 지지를 받는지 이해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대통령이라면 한 사람의 사람을 위로하는 것보다 한 국가를 위로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나이지만, 어쩌겠는가. 누군가에게는 본인의 위로가 더 중요할 것이다.


지난 미국 대선에서 민주당원들이 바이든을 후보로 뽑았던 것은 최악의 결과를 피하기 위해서였다. 사회민주주의자들은 샌더스를 뽑고 싶었을테고 여성들은 해리스를 더 지지했을지도 모르지만, 모두가 자신들이 기대했던 대로 결과가 이루어지지 않을 수도 있음을 알았고 결국 미국은 바이든을 선택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선택이 바로 이것이라는 것을 모두가 꼭 알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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