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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nest Jul 07. 2021

당신의 잘못이 아닙니다

전국의 모든 집 없는 사람들에게 건네는 위로

며칠 전 텔레비전에서 한 범죄학 프로그램을 보는데 판사 영감이 피해자들에게 위로의 말을 건넸다. 수많은 범죄 피해자들이 자신을 책망하고 후회하고는 하지만, 결코 그들의 잘못이 아니라고. 시골에서 올라와 물정을 몰랐던 까닭에 나도 차비를 빌려주고 받지 못하는 등의 소소한 범죄 피해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인생이 뒤흔들릴 만큼 엄청난 범죄의 피해를 겪었던 것은 아니다. 그런데도 그 말이 내게 정말 큰 위로가 되었다.


오늘날의 한국 사회에서 집이 없다는 것은 거의 죄와 같다. 집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은 계층이 다르며, 당연한 말이겠지만 자산의 크기도 다르다. 이렇게 말하면 또 많은 긍정적인(?) 사람들이 내게 '네가 오늘 잘 집도 없는 건 아니잖아'라고 이야기하고는 하지만, 불과 몇 달 전 집주인이 바뀌면서 계약기간마저 지켜지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불안을 겪었던 세입자의 입장에서 보면 그건 정말 위로를 위한 위로일 뿐이다. 나는 요즘 주위 사람들에게 '예비 경기도민'이라고 말한다. 집이 없는 게 문제가 아니라 치솟은 전셋값으로 인해 다음 번 계약에서는 당연히 경기도로 밀려날 것이기 때문이다.


나 또한 숱하게 후회했고 나 자신을 책망했다. 집을 살 기회가 아예 없었던 것도 아니었고, 몇 번은 진지하게 고민하기도 했었던 까닭에 더 후회되었다. 8년 전에 한 번은 서울서부지법에 경매를 하러 간 적도 있었다. 낙찰가는 급매가와 거의 가격이 유사했기 때문에 낙찰받지 못했지만, 그때 만약 비슷한 가격을 써 냈다면 지금 3배도 넘게 올랐을 것이다. 7년 전에도 한 아파트를 살까 고민하기도 했었지만, 매달 100만 원씩 10년이나 갚아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을 접었던 기억이 난다. 돌아보면 정말 어리석은 선택이었다. 새로 분양하는 아파트가 내가 생각하는 가치보다 조금 비쌌기 때문에 그냥 지나치기도 했고, 심지어는 동생이 청약하려던 것을 말린 적도 있다. 그런 모든 순간이 후회되었고 나 스스로가 너무 싫었다. 집주인이 바뀌면서, 그리고 한동안 마음고생을 할 때에는 그것 때문에 잠을 못 잘 정도는 아니었으되 실은 나도 스트레스를 무척 많이 받았다.


영감의 그 말. 결코 당신의 잘못이 아니라는 그 말이 꼭 내게 하는 말 같았다. 그러고 보니 정말 그렇다. 집을 사지 못한 사람의 잘못이 아니다. 어쩌면 무능은 능력의 부족일 뿐 죄가 안 될지도 모르겠지만(나는 능력이 없으면서도 그 자리를 맡은 것은 죄라고 생각한다), 실은 무능한 대통령과 정치인들이 범죄자이다. 그들은 아무런 죄책감도 느끼지 못하고 두 발 뻗고 잠만 잘 자며, 심지어는 다시 대통령으로 뽑아 달라고까지 뻔뻔스럽게 이야기하고 있는데, 도대체 피해자인 무주택자들은 왜 스스로를 책망하고 후회해야 하는 것인가.




"집을 사지 않은 네가 잘못이야. 집을 사는 것도 투자인데 네 투자에 책임을 져야지"라는 이야기를 한 사람도 내 주위에 있었다. 피가 거꾸로 솟을 것 같았다. 내가 정말 고액의 자산가라서 수백억, 수 조의 재산이 있고, 그 재산을 분산해서 투자하는 가운데 부동산을 선택하지 않았다면, 그 말에 일리가 있을 수도 있다. 그런데 전세금조차 없어서 대출받아서 겨우 살고 있는데, 대출을 최대한 받아서 집을 사지 않은 내가 '사지 않는 쪽으로 투자' 결정을 했기 때문에 집값 폭등은 내 투자의 결과이고, 내가 감내해야만 하는 일일까. 그런 식으로 따지면 오늘 태어난 아이도 바로 집을 사야 한다. 그 아이가 집을 사지 않으면 잘못 투자한 셈이 된다. 아무리 부동산이면 모든 것이 다 되는 나라라지만, 너무 가혹하지 않은가. 그래, 백 번 양보해서 나는 최대한 빚도 내고 어떻게 하면 집을 살 수 있었는데 안 산 것이라고 치자. 그런데 정말 돈이 없고 빚을 낼 수 없어서 집을 사지 못한 청년들은, 더 어린 아이들은 무슨 잘못이란 말인가. 굳이 저 말을 비유하자면 '너가 어려운 집에 태어난 것도 잘못이야'라는 말과 무엇이 다른가.


저렇게까지 말한다면 누군가는 집이 필수재가 아니라고 이야기할지도 모르겠다. 막말로 노숙하면 되는 것 아닌가. 그러나 의식주는 우리 삶의 필수 요소다. 지금은 더운 여름이니 옷을 안 입어도 살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그렇게 살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해 갖추어야 하는 최소한의 조건이라는 것이 있다. 그게 의식주다. 집도 마찬가지다. 정부에서는 최저 생활면적마저 정하여 발표한다. 사람이 사는데 그만한 주거공간은 필요하다는 의미다. 집은 주식도 가상자산도 아니다. 세상에 남들이 산 주식은 다 폭등했는데, 내 주식은 오르지 않았다고 사기당했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주식이 없어도 사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집은 다르다.


그럼에도 당장 살 집을 내놓으라고 한 적도 없다. 집값을 폭락시켜 달라고 이야기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무능한 대통령과 무식하고 용감한 일부 정치인과 위정자들이 세상을 뒤집어 버렸다. (말을 하고 보니 그들은 원래부터 세상을 뒤집는 게 목표였던 사람들이었다.) 장난으로 던진 돌에 개구리가 맞아 죽고, 사기꾼에게 피해자들은 사기당했을 뿐이다. 다른 판사 영감은 사기 피해자들 같은 경우에는 본인들이 기대했던 수익이 있었기 때문에 사기가 명백함에도 눈이 먼 경우도 있었다고 했다. 그런데 이 경우는 무언가. 집값이 내릴 거라는 사기에 당한 것이 아니다. 사기에 동참할 자산조차 없었는데, 사기당하고 만 피해자들이다. 사기꾼은 떵떵거리며 멀쩡한데, 그들이 왜 스스로를 책망하고 후회해야 하는가.




 정당의 대통령 후보 경선에  명의 전직 총리가 출마해서는 자신들을 대통령으로 뽑아 달라고 유세하고 있다. 그들에게 염치란 있는 것일까. 사기꾼이 기껏 사기를 치고 나서는, '지난번엔 제가 부족했습니다. 이번엔 잘할께요' 하는 꼴이다. 모든 정책의 책임은 대통령이 지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면 일인지상 만인지하라고 하는 총리는 그동안 과연 무엇을 했나. 그들이 자리를 걸고 막아섰기 때문에 그나마  정도인 것인가. 혹시 그런 것이라면 그들의 출마정당할 수도 있다. 그러나  생각엔 그런  같지 않다.  나라의 운영이라는 것은 수천만 국민의 목숨이 걸린 일이다. 우리는  일에 시행착오를 겪으며 나아갈  없다. 물론 시행착오가 없을 수는 없겠지. 그러나  시행착오는 작은 것이어야 하고, 돌이킬  있는 것이어야 하며, 그래서   발걸음으로 나아갈  있는 것이어야 한다. 망국의 군주에게 망국의 경험이 있으니 다음엔 잘할 것이라며 다시 나라를 맡기는 국민은 없다.


무능한 대통령과 가식적인 위정자들은 자신들이 저지를 범죄를 반성하지도 않고 저렇게 뻔뻔하게 얼굴을 들이밀고 있는데, 수많은 범죄의 피해자들은 오늘도 자신을 자책하고 지난날을 후회하면서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3년 전 퀴즈쇼에 출연했을 때, 중간에 방송을 보고 있는 사람들에게 한마디를 하라고 기회를 준 적이 있었다. 그때 나는 전 세계의 모든 청년들에게 그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은 결코 그들의 탓이 아니라고 말했었다.(물론 그걸 본 세계의 청년은 거의 없겠지.) 그들의 잘못이 아니다. 누군가는 집을 사지 않은 너의 잘못이라는 말처럼, '그들 가운데 1등이 되지 못한 너의 잘못'이라고 말할지도 모르겠지만, 1등을 하지 못했다고 해서 그것이 잘못은 아니다. 최선을 다하고 성실한 사람이라면 어느 정도의 삶을 살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한다. 그리고 지금 한국은 그 기대를 무너뜨린 범죄자들이 뻔뻔한 얼굴로 고개를 들고 자신을 지지해 달라고 하고 있는 세상이다.


나도 그 판사 영감처럼 말하고 싶다. 소리치고 싶다. 여러분. 여러분의 잘못이 아닙니다. 정작 범죄자들은, 사기꾼들은 지금 잠도 잘 자고 큰소리 치면서 잘 살고 있어요. 여러분이 원망해야 할 사람은, 비난해야 할 사람은 따로 있습니다.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아무것도 바뀌지 않겠지만, 여러분, 스스로를 책망하지만은 마세요. 결코, 당신의 잘못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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