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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nest Dec 06. 2021

나잇살

한때는 너무 살이 찌지 않아 걱정이었다. 자기 전에 일부러 라면을 끓여 먹으면서 그렇게 좋아하지도 않는 치즈를 넣었더랬다. 그렇게 하면 살이 찐다는 속설 때문에. 탄수화물을 좋아하고, 한 번에 폭식하는 체질. 편식하는 데다가 집에서 떨어져 나와 살다 보니 거의 늘 사 먹는 식사에도 왜 살이 찌지 않는지 궁금해질 지경이었다. 그냥 그런 체질인가 보다 했다. 원래 마른 체질. 딱히 몸이 좋은 게 아니라서 어떤 옷을 입었을 때 테가 잘 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썩 못나게 보이지도 않았었다. 그때는 몰랐던 마른 몸이 가진 장점이었다.




지금의 나는 대학교에 막 들어갔을 때의 나와 키는 거의 같지만 몸무게는 무려 40%(kg이 아닙니다.)가 더 나간다. 군대에서 막 나와 사회생활을 시작했던 10여 년 전과 비교해도 거의 15%(마찬가지로 kg이 아닙니다.) 이상 불었고, 4년 전 결혼했을 때와 비교해도 10% 정도가 더 쪘다. 어떻게 보면 이렇게 하루가 다르게 불어가는 몸을 보면서 조심하고 있기 때문에 이 정도다. 예전처럼 살이 찔 걱정을 하지 않고 마음껏 먹고, 들이키다 보면 결과가 어떻게 될지 나는 모른다.(그리고 그렇게 될까 봐서 너무 두렵다.)


보름 전, 집에서 가까운 스타필드에 처음 갔다가 우연히 들린 옷가게에서 예쁜 목폴라 티를 보았다. 10여 년 전 나는 비슷한 스타일의 비슷한 색상의 목폴라 티를 입었었고, 그 옷이 테가 잘 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못 봐 줄 정도는 아니었다. 마른 몸이었던 까닭에. 다시 만난 비슷한 스타일의 옷을 반가워하며 걸친 내 모습은 내가 기대했던 것과는 너무 달랐다. 예전의 와인색 목폴라 티셔츠를 입었던 당시의 나는 지금보다 몸무게가 15%는 더 가벼웠다. 뱃살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고, 다른 곳에도 붙은 군살이 따로 없었다. 그래서 멋있어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렇게 나빠 보이지도 않았었는데.


그런데 이제는 아니었다.


주위에 누군가가 이야기하지 않아도 나 스스로 그 옷이 나와 너무나도 어울리지 않는 것을 쉬이 느낄 수 있었다. 살 찐 것이 나쁘고 마른 몸이 좋다는 것이 아니다. 미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를 수도 있다. 그런 문제가 아니다. 그냥 내가 스스로 보기에도 너무나도 별로였다. 배가 나오고 살이 붙으면 몸매를 커버할 수 있는 옷을 입어야 한다더니 정말 딱 그 짝이다.




솔직히 말하면 왜 그런지 모르겠다. 억울하다. 불과 5~6년 전만 해도 나는 살을 찌우려고 칼국수를 먹고 나면 꼭 공기밥도 달라고 했었다. 그런데 이제는 그렇지 않다. 그때는 가만히 늘어져서 텔레비전을 보고 누워 있기만 하기도 했었는데. 이제는 한 발자국이라도 더 움직이려고 한다. 길을 일부러 돌아서 갈 때도 있다. 그런데 도리어 살은 더 쪘다. 조심한다고 했는데도.


나이를 먹으니 건강이라는 것이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닌 줄도 알겠고, 몸무게가 늘고 보니 또 그만큼 더 쉽게 피곤해진다는 것도 느낀다. 하긴 한창 때는 없던 모래주머니를 10개씩 차고 다니는 셈인데 피곤하지 않을 수가 있나. 이래서 살을 빼야 몸이 더 가볍다고 느낀다는 것이구나. 최근에는 말을 타다가 떨어졌는데, 혼자서 그런 망상에 빠졌다. 내가 아직 말을 타지 못할 정도의 몸무게는 아니지만(말을 보호하기 위해 일정 몸무게 이상은 말에 태우지 않는다. 관광지에서도 마찬가지다.) 말을 타는 사람 중에는 무거운 편이라 말이 힘들어 일부러 그랬나. 막 대학에 입학했을 때는 여자 아이들이 자기보다 가벼울지도 모른다고 멀리 떨어져 있으라고 했었는데. 이제는 누구도 그런 걱정을 하진 않을 것이다.(유일한 장점인가.)




당장 돈을 들이더라도 억지로 운동을 더 해야겠다. 의식적으로 먹는 것을 더 줄여야겠다. 오늘부터는, 아니 어제부터는 하루에 1.5끼씩만 먹을 작정이다. 1끼는 충분히 먹기 때문에 남은 끼니는 좀 부실하게 먹어도 되지 싶다. 당장 오늘 저녁에 집에 가서도 에너지바 하나만 딱 먹을 생각이다. 당분간은 송년이라 이런저런 약속과 모임이 많다. 맛있는 것을 먹는 자리에서 뺄 생각은 없고, 그 대신 회사에서 점심에 에너지바 하나만 먹고 매일 낙산을 한 바퀴씩 돌면 어떨까 싶다. 당장 내일부터 해야겠다.


그래도 아직은 기회가 있다. 간당간당하지만 표준 몸무게이고, 급격하게 살을 빼진 않아도 될 것 같다. 반 년 동안 한 달에 1kg씩만 빼면 그 뒤에는 먹고 싶은 것 먹고 하고 싶은 것 하면서 편하게 살아도 되지 않을까 싶다. 실은 그래서 나잇살을 빼고 싶다. 살이 찌고 나니 갑자기 폭식을 해서 2~3kg 더 찐다는 것이 영 불편하다. 우스운 이야기지만 내가 폭식을 할 수 있게 미리 준비해 놓고 싶다. 지금 당장 그렇게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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