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연돈 돈까스, 시식과 그 후일담
스무 번도 넘는 실패가 있었다. 어떤 과학자는 단 한 번도 실패하지 않았고 그 많은 과정을 거쳐 성공한 것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하던데, 내 경우에는 아니다. 그냥 실패였다.(왜 실패인지는 뒤에 설명) 가장 아쉬웠던 실패는 지난 3월 말과 4월 초였다. 라디오로 시간을 들으며 시간에 맞추어 완벽하게 예약하기를 눌렀다고 생각했는데, 결과적으로 또 실패였다. 그때 알았다. 왜 실패했는지. 그래서 다음에 오면 다른 방법으로 시도해 보겠다고 마음 먹었고 결과적으로 그렇게 성공했다. 1년이 넘게 스무 번도 넘는 실패 끝에 드디어 나는 지난 7월 14일 저녁 8시 연돈에서 돈까스를 먹어 볼 수 있었다.
골목식당이라는 프로그램은 거의 본 적이 없다. 아니 아마 아예 모르던 프로그램이라고 해야 맞을 것이다. 그랬는데 포방터식당의 한 돈까스집이 엄청난 화제를 끌었다. 이제는 모를래야 모를 수가 없었다. 그 식당 기사로 도배가 되었으니까. 방송 후 손님이 폭발적으로 늘었다. 시간이 지나면 잠잠해지지 않을까 싶었다. 그럼 그때 한 번 가 봐야지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웬걸. 경쟁이 점점 더 상승작용을 일으켰다. 줄 서서 대기하는 시간이 갈수록 늘어났고 도중에 사장님은 여러 사정으로 제주도로 식당을 옮겨 새로 문을 여셨다.
제주도에서는 더했다. 앞에 텐트를 치고 기다려서 사람들이 돈까스를 먹었다. '이렇게까지 할 일인가' 싶었다. 그러던 도중 연돈에서 새로운 시스템을 도입했다. 바로 온라인 예약. 단, 예약은 제주도에서만 가능했다. 나의 도전기도 이때부터 시작된다. 아마도 첫 도전은 작년 7월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처음에는 쉽게 성공할 줄 알았다. 8시가 되자마자 예약하면 뭐 그리 어려울 게 있을까 싶었다. 그런데 7월에 제주도에 있던 3박 4일 동안 이틀의 기회가 있었는데 모두 실패하고 말았다. 그래서 8월에 제주도에 갔을 때 또 도전했다. 이번에도 여지없이 실패였다. 지난 3월 말과 4월 초에는 사흘의 기회가 주어졌다. 그러나 역시나 모두 실패였다.
지난 봄에는 정말 확실히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무슨 과학적인 근거를 댈 수 있는 건 아니고, 7시 59분 59초에 맞추어 딱 예약을 시도했을 뿐 아니라 느낌상으로도 꼭 될 것 같았다. 그런데도 실패했다. 그때 생각했다. 그동안 항상 등심까스 1인분과 치즈까스 1인분으로 예약을 시도했었다. 혹시 그래서 실패한 게 아닐까 싶었다. 결과적으로 이번에는 등심까스만 2인분을 시도하는 것으로 마음을 먹었고, 그 결과 성공이었다. 웃기는 이야기지만 처음엔 믿기지 않았다. 지인들을 통틀어 내가 처음이었다. 끼얏호!
식당의 후기는 예약을 받는 테이블링 앱을 통해 그 위용을 확인할 수 있다. 무슨 알바를 쓰는 것도 아닐텐데 평점이 4.8점이나 된다. 만약 사람들이 이 식당에 가는 게 이렇게 어렵지 않았다면, 그리고 그렇게 큰 기대를 가지고 방문하지 않았다면 내 생각에 평점은 더 높았을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처음 돈까스를 입에 물었을 때 나도 조금은 놀랐다. '아, 이렇게까지 해서 먹어야 할 정도의 맛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나야 오랜 줄서기는 하지 않고 먹을 수 있었지만서도. 그러나 이것 하나만큼은 정말 장담할 수 있다. 단언컨대 전국에서 9천 원에 파는 돈까스 가운데에서는 가장 맛있다. 내가 돈까스를 많이 먹어 본 것도 아니고 마니아도 아니지만 잘은 모르겠으나 1만 5천 원에서 2만 원 정도를 쓴다면 이 정도 돈까스를 충분히 먹을 수 있을 것 같다. 당장 내가 일하는 대학로에서는 '정돈'이라는 유명한 돈까스집이 있다. 연돈이 더 낫긴 하지만 정돈의 돈까스도 수준급이다. 다만, 정돈의 돈까스는 최소 1만 4천 원부터 시작한다. 연돈과는 다르게 밥은 그냥 리필해 주지만. 그런데 연돈에서는 더 나은 돈까스를 9천 원에 먹을 수 있다. 가격 대비 성능비로 이만한 식당을 찾을 수 있을까.
내 나이 불혹이니 그동안 먹은 돈까스를 모두 더하면 수백 끼가 아니라 아마도 수천 끼는 될 것이다. 그런데 그동안 먹어 본 수천 끼의 돈까스 중에 고기와 튀김옷의 비율이 가장 내 마음에 들었다. 이건 사람마다 호불호가 갈릴 수 있다. 지난 봄 꿩 대신 닭이라고 연돈을 대신해서 갔던 다른 돈까스 맛집이 있다. 그 집도 돈까스가 1만 5천 원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내 입맛에 그 집은 고기를 연돈보다 더 넉넉하게 썼지만 썩 만족스럽지는 않았다. 튀김옷에 비해 고기가 너무 두껍다고 느껴졌다. 그러나 이 점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겠지.
사진에 보이듯이 돈까스 양이 많지는 않다. 맛있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양이 많지 않은 아내도 연돈 돈까스는 어렵지 않게 한 그릇을 다 비웠다.(쩝. 남겼어도 됐을텐데...) 한 조각 한 조각 줄어드는 게 너무 아쉽게 느껴졌다.
그래서 우리는 다음 날 또, 연돈에서 돈까스를 먹었다.
연돈에서는 월요일을 제외하고 매일 12시부터 3시까지, 그리고 저녁 6시부터 8시까지 모두 7개의 시간대로 나누어 예약을 받는다. 대략 하루에 110그릇 정도를 판다고 생각하고 한 시간에 15그릇 정도까지는 예약을 받지 않을까 싶었다. 처음 도착해서는 과연 이번 시간대에 손님이 몇 명이나 될지 궁금해서 살펴보았다. 그 결과, 정말 충격적인 사실을 알았다.
나는 저녁 8시로 예약을 했는데, 그 8시 타임대에 치즈까스는 단 한 그릇뿐이었다. 안심까스도 8그릇 이내였다. 나머지 15그릇 가까이 모두 등심까스였다. '아, 그랬구나! 그래서 내가 실패할 수밖에 없었구나!' 싶었다. 내가 주로 신청했던 저녁 8시를 기준으로 제주도 전역에서 연돈에서 치즈까스를 먹을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뿐이었던 셈이다. 나는 그 어려운 도전을 그동안 계속해서 하고 있었다. 그래서 계속 실패했었다. 설명하면 연돈의 예약 시스템은 하나의 메뉴라도 예약이 다 차면 같은 메뉴가 섞인 다른 예약도 모두 거부된다. 치즈까스가 한 그릇 나가고 나면 자동으로 다른 돈까스로 예약이 변경되진 않는 셈이다. 어쩌면 지난 3월의 나는 예약에 성공할 순번이었을지도 모른다. 치즈까스만 시도하지 않았다면. 그때의 교훈 덕택에 이번엔 등심까스로만 예약해서 성공할 수 있었다.
1) 연돈에서 꼭 돈까스를 먹고 싶다면, 등심까스에 집중하라. 그게 가장 성공 확률이 높다.
대개 제주도를 놀러 가는 경우가 많을텐데 돈까스를 먹으려고 8시까지 기다리는 것은 조금 지루하긴 했다. 마냥 기다렸던 것은 아니고 다 나름의 일정을 소화하긴 했지만, 어쨌든 저녁 일정이 8시에 고정되어 있었다. 더군다나 너무 늦어서도 안 되었다. 여행지에서 저녁은 더 일찍 먹거나 늦어도 7시까지는 먹는 경우가 대부분일텐데 8시는 솔직히 늦기는 했다.
연돈으로 돈까스를 먹으러 갔던 그날, 아내가 다른 메뉴로 다음 날도 한 번 예약을 시도해 보자고 했다. 이미 한 번 왔기 때문에 나는 크게 내키지는 않았지만 솔직히 성공할까 싶어서 그렇게 하자고 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안심까스로 한 번 시도해 보았는데 역시나 실패였다. 그런데! 아내가 성공했다. 아내는 급한 마음에 제일 위에 있던 등심까스를 그냥 2인분 눌러 버렸던 것이다. 그 바람에 우리는 지난 1년 넘게 스무 번도 넘게 실패했지만 이번에는 이틀 연속 연돈 돈까스를 먹게 되었다. 어떻게 성공할 수 있었을까.
연돈에서 돈까스를 한 입 베어 물고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 아침에 첫 기름으로 막 튀겨낸 돈까스를 먹는다면 마지막 시간대인 지금 먹는 것보다는 훨씬 더 맛있겠구나.' 그렇지만 아마도 12시는 경쟁이 엄청 치열하지 않을까 싶다. 1시도, 저녁 6시도 그렇다. 우리는 저녁 8시에 시도했기 때문에 맛은 조금 떨어질 수 있어도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저녁을 8시까지 기다려 보면 안다. 이것이 또 하나의 성공 꿀팁이다.
2) 저녁 8시로 예약하는 게 좋다. 7시 59분 59초에 바로 예약에 진입하면서 저녁 8시에 등심까스를 예약한다면 거의 성공할 수 있다.
이렇게 한다고 해서 모두 성공할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다. 내 경우에는 이틀 모두 평일이란 점이 유리했다. 아무래도 주말보다는 낫지 않을까? 두 번째 방문한 날은 금요일이었지만 시스템상 금요일에 돈까스를 먹으려면 목요일 저녁 8시 전에는 제주도에 도착해 있어야 한다. 그래서 비교적 쉽게 예약에 성공할 수 있지 않았나 싶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천운이 따랐을 것이다. 천운을 여기에 쓰고 싶지는 않았지만...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카레도 함께 시켜 먹었다. 그렇지만 개인적으로 돈까스를 제외한 나머지 음식들도 돈까스만큼 최고였던 것 같지는 않다. 한 후배가 정돈 돈까스를 평하며 '거기는 된장국이 정말 맛있어요'라는 평가를 해서 무척 놀랐던 적이 있는데 카레나 된장국은 정돈이 더 나았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연돈은 그 무엇보다도 돈까스가 너무나 훌륭했다. 9천 원이 아니라 1만 5천 원이어도 사 먹을 것이다. 그리고 다음 번에 제주도에 갔을 때도 나는 다시 한번 이런 수강신청 시스템에 시간과 노력을 아끼지 않고 도전할 것이다.
둘째 날에 또 갔을 때는 첫날 양이 조금 적었던 것 같아서 가게 옆에서 판매하는 볼카츠를 사서 들어가서는 함께 먹었다. 볼카츠도 역시 맛있었다. 볼카츠 한 개에 3천 원인데 이것 또한 생각해 보면 이런 가성비는 없는 것 같다. 정말 그야말로 미친 가성비다!!
사람마다 미각은 모두 다르고 음식에 대한 평가도 천차만별일 수밖에 없다. 또한 연돈 돈까스는 대중음식이기 때문에 어쩌면 극강의 질을 담보하는 최고의 음식은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나 단 한 줄로 이번에 먹어 본 연돈의 돈까스를 평한다면 어디에 가도 이 가격에 이 정도 수준의 돈까스는 찾을 수 없는, 단언컨대 전국에서 판매하는 9천 원대의 돈까스 가운데에는 최고의 맛이라고 자신 있게 추천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궁금하다고? 그렇다면 알려 준 방법대로 예약에 도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