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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nest Sep 13. 2022

싸가지 없는 이야기

어느 누군가의 죽음에 대하여

8월에만 세 번의 장례식이 있었다. 달 초부터 달 말까지. 고인이 되신 분의 연세도 40대부터 90대까지 다양했고, 어떤 상은 흔히 말하는 호상이었으며, 어떤 상은 문상객 모두가 비통함을 숨길 수 없는 그런 장례식이었다. 그 어느 쪽도 아닌 장례도 있었음은 물론이다.


작년 늦가을, 한 친구가 먼저 하늘나라로 떠났다. 돌아보면 나는 그 친구를 실제로 두어 번 만났나 싶고 지난 수 년 사이 연락한 적도 손에 꼽는다. 그렇다고 해서 친구의 장례가 처음이었냐 하면 그것도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슬프고 황망했다. 우리 모두에겐 추억이란 게 있었으므로. 시간을 20년이나 되돌려야 한다는 게 좀 그렇긴 하지만 20년 전에는 그 친구와 한 주가 멀다 하고 인터넷으로 채팅하기에 열심이었다. 우리 둘만 그랬다는 게 아니다. 여러 친구가 있었다. 만약 같은 대학에 갔다면 더 친해졌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 친구는 아마도 우리가 같은 대학에 가게 될 것이라고 이야기했었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그 친구가 더 좋은 학교에 갈 것이라는 걸. 그렇게 대학에 진학한 뒤에는 그 친구와 거의 연락한 적이 없었지만 손 대면 바로 닿을 것 같은 고등학교 3학년의 많은 시간 속에 그 친구가 함께했다는 기억이 내게 있었다.


동갑내기의 빈소에 가서 절을 했던 건 그보다도 한 2, 3년 전이지 싶다. 그런데 그때는 미처 하지 못했던 생각이 작년 친구의 장례식장에서는 떠올랐다. 그다지 좋은 생각은 아니었지만. '이게 끝이 아니겠구나...' 어느덧 친구들 모두 사십 줄에 접어들었다. 사고이든 건강 문제이든 친구의 장례는 이번 한 번으로 끝이 아니라 앞으로 끊임없이 이어질 것이다. 그래도 그 소식이 천천히 들렸으면 했건만.


한 해도 안 되어 한 선배의 부고가 날아들었다.


8월의 첫 날에 있었던 일이었다. 


그러고 보니 이 선배와도 지난 5년간 얼굴을 본 적이 있었나 싶다. 전화통화 한 기억도 겨우 한 번 떠오른다. 그러나 그게 다가 아니다. 내가 대학에 막 들어갔던 그때, 선배는 군대에서 전역해서 가끔 학교로 찾아왔다. 동아리에 내 동기가 많지 않았던 까닭에 신입생 때는 선배와 자주 만나고, 연락하고, 밥도 먹고, 술도 먹었다. 그렇게 따지니 이 선배와의 기억도 거의 20년 전에 멈춰 있구나. 아무튼 우리는 20년 전 서로가 가장 빛나던 그 시절의 적지 않은 시간을 함께 보냈다. 그 시간이 어제가, 지난달이, 작년이 아닌 듯 어떠랴.


8월 중순이 되니 전 회사 파트장님의 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는 부음이 전해졌다. 불과 두 달 전에 장인어른이 돌아가셨는데 연이어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다. 연세가 많으셨지만 간암 판정을 받고 보름도 못 버티신 셈이 되었다고 했다. 가족들 모두가 황망했을 것이다. 8월 말에는 대학 시절 교수님의 어머님께서 돌아가셨단 소식을 들었다. 호상이었다. 아마 오랜 시간 요양원에 계셨던 듯 싶고, 장남이 아닌 교수님께서 벌써 정년퇴직을 하셨으니 연세도 지긋하셨을 것이다. 아흔을 훌쩍 넘기고 떠나셨다. 그러나 어떤 죽음인들 남겨진 사람에게 슬픔이 아닌 것이 있겠는가. 교수님께서는 환한 표정이셨지만 나는 차마 상가에서는 웃지 못한다.




이 나이 때쯤 많이 듣게 되는 것이 또래 부모님들의 부고이다. 내 아버지도 칠순이 머지않은 것을 생각하면 형제 중 막내거나 늦둥이이거나 하다면 부모님의 연세가 대략 짐작이 되니 여기저기서 부고가 들릴 법한 나이다. 그래서 이제는 다들 부모님 건강을 잘 챙기라는 인사가 어색하지 않게 되었다.


그런데 작년, 올해 연이어 또래와의 작별을 겪고 나니 이제는 조금 싸가지 없는 생각이 먼저 든다. 부모님 세대가 떠나시는 게 황망하고 서운하고 아프기는 하지만, 지금 친구의 죽음처럼 황망하지는 않지 않을까. 나는 친구의 떠남을 전혀 일말의 짐작도 하지 못했다. 지병이 있었다 해도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본인조차도 몰랐던 병이다. 불혹을 젊지 않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아직 세상에서 해야 할 일이 많은 나이인데. 이번에 떠난 선배는 심지어 아이가 셋이었다. 죽음을 비교한다는 게 무의미하겠지만, 자녀들이 모두 장성한 부모님 세대와 친구들 사이에 어느 쪽이 더 비통하겠는가.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나는 친구들에게 '이제 너네 건강부터 잘 챙겨라'라고 한다. 실은 그래야 부모님 건강도 챙길 수 있다.


인명은 재천이라 사람의 한 치 앞날을 누가 알 수 있겠느냐만서도, 한 번 만나면 헤어질 수밖에 없는 게 세상의 이치라고 하더라도, 떠나는 길 미리 알고 거기에 순서 좀 있었다면 우리의 삶이 조금 덜 섭섭하고 애닯지는 않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참척'의 고통은 그 누구도 알 수 없다는데, 후세대를 앞세우는 앞세대의 비통함을 생각하면 순서대로 가는 것이 사람들에게 뭐 그리 나쁠 일일까 싶다. 이것 또한 너무 싸가지 없는 생각이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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