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격적인 사랑이란

새로운 가족이 생기다

by 북한강

나는 꽤 자주 출국을 하는 편인데 자발적으로 출국을 하는 이유는 단 하나,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나러 가기 위해서다. 사랑하는 사람들 모두는 내 친구들이고, 국적이 전부 다르기에 국경을 자주 넘나드는 것처럼 보였을 뿐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내 주변 사람들은 나를 부러워하는데 나는 그저 내 친구들을 보기 위해 갔을 뿐이지 그 친구들이 전부 한국에 살았다면 결코 비행기에 오르지 않았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관광이나 여행 등, 돌아다니는 것을 아주 싫어하고 해외에 나가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는 말을 절대 믿지 않기 때문. 어차피 무엇이든 배우려고 하는 자세가 된 사람들은 방구석에만 처박혀 있어도 큰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 방구석에만 처박혀 있어도 다수의 전문가들에게 매번 극찬을 듣는 사람이 바로 나니까. 이 주제로 할 말이 참 많은데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또 다른 글로 남겨 보겠다.


아무튼 올해 초, 일 때문에 미국으로 출국했다. 일 때문에 출국을 하는 건 처음이었고, 그래서 더 가기 싫었다. 일을 한국에서 하는 것도 싫은데 미국에 가서 일을 해야 한다니. 돈도 많이 안 주면서!! 하지만 내가 전에 경험해 본 적이 없는 완전히 새로운 업무였기에 눈 딱 감고 도전했다. 영어 전공자가 서른이 다 되도록 미국에 가 본 적이 없을 정도로 미국은 나에게 아무런 존재감이 없는 나라였는데 이것을 핑계 삼아 가 보기로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 일을 안 했으면 어쨌을까 싶기도 하다.


작년에 뉴질랜드에서 한 달 동안 홈스테이를 했는데 정말 ’그냥 그랬다‘. 말 그대로 특별히 좋지도, 나쁘지도 않았는데 일단 호스트와 시간을 많이 못 보냈고 내가 눈치를 너무 많이 봤기 때문이다. 지금 돌이켜보면 호스트와 시간을 더 보냈어야 했고, 쓸데없이 눈치를 보지도 말았어야 했다. 아무튼 내 첫 경험은 특별한 색을 띠지도 않은 채 잊혔다. 그리고 이번이 바로 내 두 번째 홈스테이가 되었고, ’그냥 그렇기는‘커녕 매일이 충격의 연속이었다.


미국에 가기도 전에 회사에서 연락을 받았다. 호스트께서 기대를 너무 많이 하고 계신다고 내 이메일 주소를 알려달라고 하셨다고. 작년에는 호스트에게 따로 미리 연락을 받지는 않았기에 기대하는 마음이 조금 싹트기도 했다. 회사 연락을 받자마자 곧바로 이메일이 날아왔는데 열어 보니 스크롤을 몇 번이고 내려야 할 만큼 다정함과 사랑이 가득 담긴 장문의 편지였다. 아주 자세한 자기소개 및 가족 소개로 시작해서 내가 일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아래층 전체를 내게 내주시겠다는 내용, 'Your American Mom' 끝맺음까지. 나도 진심과 성의를 가득 담아 답장을 보냈다. 이날은 12월 31일이었고, 덕분에 우중충했던 작년 말을 행복하게 마무리할 수 있었다. 그리고 미국에 가는 비행기 안에서부터 시작된 일 때문에 정신이 계속 없었는데 뒤에서 나를 가볍게 안으며 놀랜 나의 ‘엄마’ 덕분에 본격적인 업무도 행복으로 시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매 순간 놀라운 일이 계속 이어졌다.


일단 집에 도착했을 때 혹시나 내가 음식에 적응을 못 할까 봐 라면과 김, 김치 등 한식을 잔뜩 준비해 주셨다(하지만 나는 어떤 음식이든 다 잘 먹기 때문에 매번 집밥을 해 주시느라 미리 준비해 주신 한식을 다 먹지는 못 해서 아직까지 죄송한 마음이 든다). 또 아래층을 소개해 주셨을 때, 칠판에 내 일정이 이미 전부 적혀 있었고 환영 선물(열쇠고리, 엽서, 스티커, 벽걸이 달력 등)과 간식이 가득했다. 정말 기대가 크셨던 모양이구나, 속으로 생각했다. 호스트께서 보내셨던 이메일에 답장 중, 핫초코를 먹을 수 있어 겨울이 좋다는 내용을 적었는데 다음 날 출근길에 마실 수 있게 핫초코를 만들어 주셨고 내가 아이다호를 떠날 때까지 ‘출근길 핫초코’는 계속되었다. 이날 출근길에 이번 겨울에 레몬청을 만들어 하나는 지역아동센터에 기부하고 하나는 내가 먹고 있다고, 나는 따뜻한 차를 마실 수 있어서 겨울을 참 좋아한다고, 홍차에 레몬을 항상 넣어 먹는 나에게 내가 만든 레몬청은 단순히 레몬이 아니라 작은 행복을 넣는 것 같다고, 정말 지나가는 어투로 말씀을 드렸는데 퇴근하고 보니 레몬을 썰어 소분을 해 두시기도 했다. 이때 정말로 크게 놀랐다. 그리고 나는 그게 끝인 줄 알았다.


덕분에 집에 두고 온 내 레몬청을 그만 그리워할 수 있었다.


아이다호를 떠나기 전 마지막 주말 토요일, 호스트와 함께 서점을 들렀다. 한국에서 책을 한 권 가져왔지만 단 한 쪽도 읽을 시간이 나지 않아 꽤나 자책하고 있던 시기라 서점에 있는 것만으로도 큰 위안이 되었다. 호스트께서 어떤 책을 집으시고는 세계 2차 대전 때 실제로 있었던 내용이라며 설명을 해 주셨다. 나는 호스트께서 추천해 주신 책이기에 언젠가 나중에라도 읽고 나서 호스트께 말씀드리고 싶었기에 표지를 사진으로 남겨 두었다. 그리고 집에 도착했을 때 호스트께서는 아까 산 책이라며 나에게 설명해 주셨던 그 책을 선물로 주셨다. 꼭 완독해서 호스트께 독후감을 발표하자는(?) 다짐을 하며 내지에 짧은 문구를 부탁드렸다. 지금 읽는 책(박경석, 출근길 지하철)을 다 읽으면 장기전이 되더라도 이 책을 꼭 자세하게 파헤치고 싶다.


필기체를 쓸 줄 알아서 다행이야.


그 다음 날, 호스트께서 일정을 자세하게 말씀해주시지 않은 채로 어디를 가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솔직히 정말로, 진심으로 아찔했다. 매일 격무에 시달려서 일요일만큼은 아무것도 안 하고 싶었는데 또 나를 위해 일정을 준비해 주셨으니 일단 나갈 채비를 했다. 나는 단순히 외식을 하는 줄 알고 꼬질한 상태로 일단 집을 나섰는데 첫 주말에 갔던 그 식당이었다. 호스트를 따라 들어가던 도중 웬 낯선 신사 한 분께서 나에게 인사를 하셨다. 미국이니까, 나도 반갑게 인사를 했다. 그런데 갑자기 그분께서 내 어깨에 손을 얹는 게 아닌가?! 신사의 돌발행동에 너무 당황한 나는 ’드디어 아이다호에서 처음으로 인종차별을 경험하는 건가?‘ 하고 속으로 생각하며 맞받아칠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I'm Teri's husband."라고 말씀하셨다!! 그동안 전화로만 이야기를 나눴던 나의 ‘아빠’가 실제로 나를 보기 위해 오셨던 거였고 나는 너무 놀라서 자리에서 거의 튀어 올랐다고 봐도 무방했을 것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더 일찍 일어나서 씻고 나올걸!! 속으로 울부짖었다. 여하튼 흥분한 마음을 가라앉히고 앉아서 이야기를 들어 보니, 나를 정말 보고 싶어 하셨는데 내가 아이다호에 머무르는 마지막 주라서 시애틀에서 새벽 4시에 일어나셔서 6시간 동안 직접 운전을 하셔서 아이다호까지 오신 것이다. 그러니까 고작 나와 점심을 함께 하시려고 왕복 12시간 운전을 감수하고 오신 셈이 된다. 내게 점심을 사 주시고, 직접 구매하신 밸런타인데이 선물까지 내게 건네주셨다. 이때 내가 느꼈던 기분은 지금도 말로 표현할 수 없다. ‘영광’이라는 단어도 이때 나의 기분을 충분히 표현할 수 없다. 뛰어난 작가들의 어휘를 빌려 표현하고 싶어도 결코 적합한 표현을 찾지 못 할 것만 같은 순간이었다.


처음 받아 본 밸런타인데이 선물


뉴욕으로 넘어가기 며칠 전, 호스트께서 장을 보시다가 내가 뉴욕에서 입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옷을 선물로 사 오셨다. 한 벌은 새하얗고 부드러운 털이 소매와 깃에 달린 백조가 연상되는 우유처럼 하얀 로브, 다른 한 벌은 분홍색 경량패딩이었다. 로브는 마음에 들었고 딱 맞았으나 경량패딩은 소매 부분이 신축성이 없는 재질이라 받쳐 입는 옷이 얇았는데도 계속 입기엔 무리가 있어 보여서 환불을 부탁드렸다. 로브의 가격표에 'Madden NYC'라고 쓰여 있는 걸 보시고는 사 주고 싶으셨다고 말씀하셨다. 그러고 나서 하시는 말씀이 “남편과 내가 함께 주는 마지막 선물이니 절대 거절하지 말고 꼭 받거라. 뉴욕에서 사고 싶은 것을 사서 잘 쓰기만 하면 된다.”라고 말씀하시며 100달러를 용돈으로 주셨다. 정말 거절하고 싶었지만 이 100달러로 호스트 부부의 선물을 사서 보내는 것으로 보답하리라고 마음먹었다. 그리고 나는 뉴욕으로 넘어가서 로브를 입은 사진을 매번 보내는 것으로 보답했고, 100달러는 아직도 쓰지 못 했다.


뉴욕으로 넘어가는 당일 새벽, 호스트께서는 나에게 비행기에서 먹으라며 간식꾸러미를 주셨다. 사랑한다는 글귀가 담긴 팝업카드와 뉴욕 스티커가 들어있는 간식꾸러미를 받았다. 나뿐만 아니라 이 집과 인연이 있던 모든 이들의 몫까지 준비해 주셨다. 그리고 나는 호스트와 헤어질 때부터 공항으로 가는 길 내내 차 안에서 울었다. 아무도 울지 않았는데 다 큰 어른인 나만 펑펑 울었다. 누군가는 내가 한국에 큰일이 있는 것으로 오해할 만큼 눈물을 쏟았다. 실로 믿기지 않았다. 이 사람은 나를 보기 전부터 내가 떠나는 날까지 정성을 쏟지 않은 날이 도대체 있기는 한 건지. 이 사람은 왜 나에게 최선을 다하는지. 나는 누군가에게 이렇게 대할 수 있는지. 나의 답은 당연히 ‘아니요’ 일 텐데 이 사람은 나와 정반대의 대답을 내놓을 것만 같다. 사랑이라는 건 무엇인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다정함과 사랑을 갖춘 사람은 바로 이런 사람이구나. 비행기 안에서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생각이 아니라 아마 배움이 꼬리에 꼬리를 문 것이겠지. 그리고 우리의 인연은 여전하며 매일 내 전화기에 울리는 안부문자는 하루를 소화할 수 있는 희망으로 내 마음도 울리고 있다. 나도 누군가에게 호스트처럼 대하고 싶어졌고, 호스트 덕분에 나도 생판 모르는 누군가에게 희망이 되기로 다짐했다. 그리고 나는 부룬디에 여섯 살배기 딸을 둔 엄마가 되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내년엔 이기적일 만큼 더 행복하고 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