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책 없는 용기의 결말

길고양이 구조이야기

by 희월

어느 평범한 오후였다. 남자친구 M과 함께 바니를 데리고 강변 산책로를 따라 걷고 있었다.

우리를 앞질러 가던 바니의 걸음이 멈췄고, 그 시선에 끝에는 오랜 시간 홀로 배회하다 지쳐 보이는 아기고양이가 있었다. 고양이가 많은 곳이라서 밥을 챙겨주는 사람들이 많지만 누가 봐도 무리에서 도태되어 굶주린 상태로 보였다. 어미가 버리지 않았다면 온몸이 오물 투성이 일리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걸어가고 있던 방향을 기준으로 왼쪽은 찻길, 오른쪽은 산책로를 따라 설치된 일정한 간격의 나무 난간이 있고, 난간 옆은 무릎 높이의 풀밭이었다. 조심스럽게 다가가자 고양이는 뒷걸음질 치며 풀 속에 숨었다가 다시 모습을 비추었다. 걸음이 빠르진 않았다. 한발 한발 내딛을 때마다 발을 떨었다.


고양이를 안전하게 잡을 만한 상자나 수건도 없었지만 망설임도 없었다. 쓰고 있던 모자를 벗어 난간 안으로 손을 천천히 뻗었고 조심스럽게 고양이를 잡아 모자로 몸통을 감쌌다. 누구한테 입양 보낼지, 내가 키울 수 있는지 충분히 생각할 시간이 없었다. 그저 병원에 데려가야 한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평소에 고양이만 보면 털을 세우며 경계하는 바니가 어떤 상황인지 알아챈 걸까, 꼬리를 넓게 흔들며 걸었다. 혹시나 병원에 가기 전에 죽을까 봐 고양이 울음소리가 멈출 때마다 불안해하며 울음소리와 숨소리를 확인했다.



바니를 데려가는 동물병원에 가기엔 거리가 너무 멀고 시간적 여유도 없었다. 그때 무심하게 지나다니던 길에 보이는 허름한 간판의 동물병원이 기억났다. 급한 걸음으로 가야 해서 바니는 집에 데려다 놓고 M과 함께 고양이만 데리고 병원으로 향했다. 점심시간일까 봐 미리 전화로 확인한 뒤 방문했다. 수의사가 눈곱과 이물질로 가득한 고양이의 얼굴을 닦아주고 물과 밥을 먹였다. 성장상태를 보니 생후 한 달쯤 됐고, 1~2주밖에 되지 않은 아이들도 구조되어 병원에 많이 오지만 죽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했다. 살 수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 기뻤다.

배가 조금 빵빵해진 고양이는 기운을 차렸다. 진료비를 내고 당장 먹일 만큼의 습식사료를 사들고 병원에서 나왔다.


그동안 길에서 뭘 먹고 어떤 생활을 했는지 모르기 때문에 바니와 격리를 시켜놓아야 했다. 고양이 집을 사더라도 당장 안전하게 있을만한 공간이 필요한데, 택배상자도 모조리 다 버려서 막막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집에 도착하자 문 앞에 마침 택배가 와있었고 상자 크기는 고양이 집으로 쓰기에 완벽했다.


바니를 씻길 때 쓰려고 사두고 아직 써보지 않은 욕조와 개샴푸를 고양이에게 먼저 쓰게 될 줄은 몰랐다.

개도 안 씻겨봤는데 고양이를 다룰 줄도 모르는 내가 갑자기 고양이 목욕을 시킬 줄 누가 알았을까.


어쨌든 물 온도를 미지근하게 맞추고 고양이를 씻기기 시작했다. 물이 닿자마자 역시나 격한 몸부림과 함께 우렁차게 울었다.


"왜앵. 우왜앵. 애애애애앵. 우애애앵."


목욕을 마치고 드라이를 해주려는데 소변과 설사를 한 바탕해 버린 탓에 꼬리와 뒷다리에 다시 똥 범벅이 돼버렸다. 다시 씻기고 말리는 과정을 여러 번 한 뒤에야 깨끗하고 보송보송한 상태가 되었다.


하필 이런 날, M은 기차를 타고 본가로 가야 했고 나는 출근을 해야 했다. 일하는 시간이 짧아서 다행이지만 오고 가는 시간까지 합하면 그래도 4~5시간이라 불안이 가득했다. 출근 전 고양이에게 밥을 먹이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변을 보고 엉덩이, 다리, 꼬리에 다 묻어서 다시 씻기고 말렸다.


퇴근하자마자 배고픔도 잊고 바로 바니 산책을 다녀와서 고양이에게 밥을 주고, 한 번 더 고양이의 건강상태를 꼼꼼하게 확인하고 싶어서 바니가 다니는 병원에 데려갔다. 기본적인 신체검사와 범백 검사 (고양이 파보 바이러스)도 받았다. 다행히 음성으로 나왔지만 미세한 혈흔이 면봉에 묻어 나와서 잠복기를 고려한 가루약을 처방받았다. 그 외에는 건강에 큰 문제가 없는 것을 확인하고 엄마의 도움으로 차를 타고 서둘러 집으로 향했다.


고양이를 처음에 넣어둔 택배상자는 배설물로 젖어 냄새가 나서 엄마에게 부탁했던 다용도 바구니에 배변패드를 여러 장 깔아서 고양이 집으로 만들어주었다. 양쪽으로 손잡이 구멍이 있고 사방으로 작은 구멍들이 있어서 뚜껑을 닫아놔도 안심할 수 있었다. 상자 안에서 꺼내주어야 조금씩 걷던 고양이는 금세 스스로 나와 의자에서 쉽게 뛰어내리고, 방바닥에서 돌아다녔다. 몸무게는 겨우 400g. 생후 5주 추정. 230mm인 내 발보다 작고 민들레 홀씨 같은 생명체가 그저 신기했다. 고양이가 침대 위에 있는 바니 근처에 가도 바니는 바라보기만 했다. 산책 중에 보이는 고양이에게는 털을 세우지만 아기라는 것을 아는 걸까, 그 아이에게는 조심스러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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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집에 데려다주면서 이제 어떻게 할 거냐고 물었다. 현실적으로 생각해 보면 나는 고양이를 키울 수 있는 여건이 안된다. 믿을 수 있는 곳이 있다면 보내는 것이 최선이다. 아니, 최선을 다해 믿고 보낼 수 있는 곳을 찾아야 한다. 입양자가 있다면 좋겠지만 만약 없다면 바니를 입양했던 곳에 보내면 어떨까. 보호소와는 확연히 다른 환경이고 고양이들이 있는 6층은 숨숨집과 캣타워들로 이루어져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곳이었다. 일단 내일 아침에 전화해 보기로 하고 집에 도착하자마자 바니와 고양이의 저녁식사를 챙기고 나서야 한숨 돌릴 수 있었다. 내가 자처한 상황이지만 이 정도로 정신없는 하루는 참 오랜만이었다.


구조 2일 차. 오전 10시가 되자마자 바니 입양처에 고양이 구조 사정을 이야기했다. 그런데 야생에서 바로 구조된 동물은 입소가 불가능하다고 했다. 왜 당연히 내 생각대로 될 거라고 확신했을까. 헛된 기대와 비례한 절망적인 답을 듣고 다시 고민했다. 엄마는 대책도 없이 왜 데려왔냐고 했다. 반박은 할 수 없지만 무작정 비난부터 하는 엄마가 미웠다. 대책 없는 행동이었던 건 인정한다. 하지만 지나칠 수 없었고, 살리고 싶었다. 결과를 책임지고 방법을 찾는 게 우선이었다.


입양자를 찾기 위한 연락을 돌린 후 출근을 해야 했다. 어제와 같이 고양이와 바니의 안전을 위해 고양이 상자 뚜껑을 닫아놨다. 보호소에는 여러 가지 이유로 보내고 싶지 않았다. 연락을 기다리며 만약 입양할 사람을 찾지 못한다면 내가 키울 각오를 하며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그때, 친한 언니의 친구분이 입양을 하겠다는 감사한 소식을 들었다. 현재 3마리의 성묘들을 키우고 계신 분이라고 했다.


구조 3일 차. 고양이가 밥은 잘 먹는데 어제부터 하루 종일 소변만 보고 대변을 보지 않았다. 배변 유도를 해도 소용없었다. 불안한 마음에 다시 병원에 가서 엑스레이를 찍어보니 1센티미터의 뭉친 변이 항문을 막고 있었다. 스스로 내보내기에는 힘이 부족한 탓이라고. 손가락 관장을 하기에는 항문이 너무 작아서 작은 튜브로 관장약을 소량 넣어주셨다. 2~3시간 정도 지켜봐야 한다고 했지만 입양자와의 약속시간이 1시간도 남지 않아서 병원 진료 내용을 정리해서 알려드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 사이에 소변으로 더러워진 고양이를 다시 집에 데려와 씻기고 말린 뒤 서둘러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입양자의 선한 분위기와 짧은 대화만으로도 동물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것이 느껴졌다.


그 후 3주가 흐른 지금, 고양이는 '밤톨이'라는 이름으로 건강하게 자라고 있다. 그때 구조하기를 주저하고 그냥 지나쳤더라면, 정말 어미가 버린 게 맞다면 매정한 야생에서 다른 누군가에게 발견되기 전에 짧은 생을 마감하지 않았을까. 나의 대책 없는 용기는 어쩌면 다수에게서 비난의 화살을 받을 만한 행동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용기는 한 생명이 따뜻하고 안전한 보금자리에서 건강하게 성장하며 살아갈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는 것을 기억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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