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목줄을 풀면 어떡해요!"

오프리쉬(Off-leash)

by 희월

며칠 전 바니와 산책 중 오프리쉬 상태로 비숑 한 마리가 바니를 향해 질주했다. 그냥 지나치면 따라올 기세라 줄을 짧게 잡고 다리로 바니를 막아섰다. 멀리서 주인이 부르는데도 전혀 교육이 되지 않은 건지 돌아갈 생각이 없어 보였다. 보호자의 무책임함에 멀리 있는 견주에게 나는 눈을 부릅뜨며 소리쳤다.


"여기서 목줄을 풀면 어떡해요! 울타리도 없는데!"


비숑의 견주는 두 손을 앞으로 모으며 "어머~죄송해요~" 라며 전혀 죄송하지 않은 것 같은 사과를 했다.

나는 째려보는 눈으로 무언의 경고를 보내며 바니와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매일 4번 이상의 산책을 다니며 오프리쉬로 인해 겪은 작고 큰 사건사고는 거의 매번 일어나는 것 같다.


분명 나와 처음 산책을 나갔을 땐 다른 강아지를 그냥 지나쳤었다. 그런데 무책임하게 반려견을 풀어둔 강아지들이 흥분상태로 바니를 향해 뛰어오거나, 줄을 매고 있어도 자신의 개가 어떻게 하든 웃어넘기는 견주들을 수차례 겪으며 이제는 이구아나처럼 목부터 엉덩이까지 털을 날카롭게 세운다. 무작정 다른 강아지가 지나가면 보호자가 "저기 친구다 친구~인사해~"라고 말하며 상대 강아지가 줄을 당기며 달려오고, 이어서 보호자가 따라 웃으며 걸어온다. 상대 개는 순하지 않았다. 으르렁댔고, 짖고, 공격하려고 했다. 그 상황이 그저 재밌는 듯 방관하던 보호자. 또 다른 경우는, 내가 안 괜찮다고 했는데도 "아~저희 강아지는 괜찮아서요~"라며 내가 바니를 막아서는데도 눈치 없이 자리를 피하지 않던 보호자.


가장 답답한 건 상대 보호자들의 태도다. 보호자끼리도 초면인데 무작정 강아지를 끌고 나온 것만 보고 자신의 반려견에게 "친구다 친구! 인사해~"라며 웃으며 다가오는 이들, 내가 거절해도 "우리 애는 괜찮아요"라며 눈치 없이 자리를 피하지 않는 이들. 강아지를 키우며 겪는 대부분의 문제는 결국 보호자가 만든다.


강아지가 멀리서 보일 때마다 우리를 향해 오지 않는데도 털을 세우며 거친 숨소리로 달려들려 하는 바니의 행동을 교정해 보기 위해 간식도 활용해 보고, 블로킹도 해보고, 다른 여러 가지 방법들을 동원하여 노력해 봤지만 호전이 없었다. 인적이 드문 곳만 골라 다니는 건 도시에선 정말 어려운 일이다. 조금 더 한적한 곳으로 이사를 오게 되면서 환경이 달라지면 바니도 다시 예전처럼 다른 강아지들을 무시하고 지나갈 수 있게 될까 기대했지만 바니의 경계심은 여전하다.


목줄 착용이 의무화되었음에도 여전히 도로 근처에서조차 목줄을 풀고 '자유'를 만끽하게 두는 견주들이 많다. 그들은 자신의 개가 언제 어떤 유혹에 튀어나갈지, 어떤 사고를 당할지 전혀 생각하지 않는 듯하다. 매너 있게 반려견을 제어하며 배려해 주는 보호자들도 분명 있지만, 여전히 오프리쉬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이들이 산책길의 평화를 깨뜨린다.


개를 마당에 묶어놓고 사람이 먹다 남은 음식을 개밥으로 주던 시절에서 언젠가부터 반려견이 살아가는 데에 산책이 필수라는 것이 널리 퍼지기 시작했다. 공원에 개를 데리고 나온 사람들이 늘어나고 산책 장소로 많이 찾는 공원에 가면 '펫티켓'을 알리는 현수막이나 표지판이 비치되어 있다.


그러나 잘 보이지 않는 걸까, 대문짝만한 현수막이 있는데도 울타리가 없는 공원에서 목줄을 풀고 장난감을 던져준다. 공원을 이용하는 사람들 중 개와 관련된 트라우마가 있는 행인이 있을수도 있고, 개를 싫어하는 사람에게 목줄이 풀린 개가 흥분한 상태로 달려가 공포심 또는 혐오감을 일으킬지 모를 일이다.


내 반려견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환영받기 원한다면 보호자부터 기본적인 공중도덕을 지키며 반려견을 올바르게 교육하고 보호하는 것이 진정한 사랑 아닐까.


공원 뿐만 아니라 도로를 걸어갈 때도 마찬가지다. ’내 개는 나를 잘 따르니까 아무일도 없을거야.‘ 라는 멍청한 확신으로 목줄없이 산책을 나갔다가 교통사고로 무지개 다리를 건넜다는 사례들도 몇 번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 내가 중학생 때 잠깐 키우던 아기 요크셔테리어 ‘써니’가 있었다. 외할머니의 반려견이 낳은 새끼들 중 한 마리였다. 그때도 나는 강아지를 비롯한 모든 동물들을 좋아했지만 키우는 방법은 몰랐고, 배변교육이나 산책의 중요성을 아는 사람은 우리 가족 구성원 중 아무도 없었다. 써니는 수컷이었다. 엄마는 써니가 우리를 반길때마다 발정을 보이는게 징그럽고 똥오줌을 치우는것도 힘들다며 애견미용을 하는 딸을 둔 지인에게 양도를 했다. 써니는 건강한 성견이 되었고, 14살 무렵에 늘 다니던 초등학교 운동장에 평소와 같이 주인과 목줄 없이 산책을 가던 중에 차도로 갑자기 튀어나가 교통사고로 무지개 다리를 건넜다는 소식을 들었다.


공중도덕을 지키는 것과 더불어 소중한 반려견이 마지막 순간까지 안전하기를 바란다면 예상치 못한 변수까지 고려하는 보호자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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