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당해고

그럼에도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하다

by 희월

올해 1월 2일에 입사했고 며칠 전 화요일 점심시간이 다가오는 시간에 나는 당일해고를 통보받았다. 아무리 내가 잘못했다지만 사람을 이렇게 막 잘라도 되는 걸까. 해고당한 이야기를 굳이 해봤자 내 얼굴에 침 뱉는 것 밖에 안 되겠지만 누군가의 지루한 일상에 내 얘기가 잠깐의 가십거리가 되어도 좋고, 나와 비슷한 상황이라면 혼자가 아니라는 위로가 되어도 좋다.


내가 일했던 동물병원의 구성원은 원장님, 8년 차 오픈멤버인 매니저 J, 입사 5개월 차 테크니션 H, 그리고 신입이었던 나. 알아야 할 것도, 기억해야 할 것도 많아서 잠깐이라도 정신줄을 놓으면 실수가 되고, 사고를 치게 된다. 이곳은 작은 실수도 그냥 넘어가지 않았고, 옆에서 잘하는지 감시하고 있으면 오히려 더 실수를 하게 돼서 매일 잔소리를 들었다. 시간이 지나면 나도 능숙해질 거라 믿었다. 매니저는 내가 출근한 지 3일 만에 한 번씩 스치며 알려준 것들을 매니저의 기준으로 완벽하게 하지 못했다며 지적을 시작했다. 5개월 차 사수는 일머리가 없다는 말을 매일 듣는다. '그래도 애는 착해'의 표본이었다. 그 사람에 비해 나는 객관적으로 지적을 덜 받았다. 그래서 나는 아직 서툴지만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참고로 내 자리를 스쳐간 수많은 신입 또는 경력직들은 수습기간을 다 채우지 못하고 한 달 만에 그만둔 (나처럼 어이없게 잘렸을지 모르는) 사람들이 한 트럭이라고 했다. 그럼에도 신입이었던 나를 뽑은 이유라면 여러 지원자들을 일일이 다 면접을 보기 귀찮고, 20대 보다 30대가 더 낫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날은 평범한 오전이었다. 웬일인지 실수 없이 순조로운 팀워크가 흘러가고 있었다. 정신없이 업무 흐름에 몸을 맡기다가 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에 데스크로 나갔다. 두 명의 외국인 보호자와 반려묘였다. 한국어가 서툰 그들을 위해 나는 영어로 접수를 받았고, 그때까지 나는 11시가 겨우 넘은 시각이라고 착각했다. 5분 뒤 일어날 일을 전혀 예상하지 못한 채 접수를 마치고 처치실로 들어왔다. 매니저가 말했다.


"쌤. 지금 시간이 몇 시예요?"


아차. 12시 15분이었다. 평일 2시부터 4시까지는 수술시간이고 12시에 수술 준비에 들어가기 때문에 오전 접수는 12시에 마감을 해야 한다. 매니저가 이어 말했다.


매니저: "지금 접수를 받으면 어떡해요? 하... 12시 넘었잖아요. 확인 안 해요?"


나는 곧바로 두 손을 앞으로 모으고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매니저: "일단 하던 거 해요."


그러다 노트북 모니터로 접수 프로그램을 보던 원장님이 뒤늦게 다시 말했다.


원장: "이거 뭐야!! 지금 접수를 받으면 어떡해?"


나는 다시 하던 일을 멈추고 원장님께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쌤은 앞에 나가지 마. 알았어?"


"네."


삭막한 분위기 속에서 하던 일을 이어가야 했고, 원장은 담배를 피우러 나갔다 온 뒤 '인심 좋고 친절한 원장' 가면으로 갈아 끼우고 내가 접수한 진료를 받았다. 그리고 내가 화장실에 잠시 다녀온 사이에 외국인 보호자와 반려묘는 병원 밖을 나와 어딘가로 가고 있었다. 처치실로 들어가니 원장이 나를 진료실로 불렀다. '잘못했으니 혼은 나겠지만 해고는 아니겠지. 설마.'


원장: "쌤 언제 입사했지?"


나: "1월 2일이요"


원장: "그럼 이제 두 달이 다 되어가는데. 아직도 분위기 파악이 안 되나? 이걸 실수라고 해야 돼... 아님 사고라고 해야 돼?"


나: "시간을 확인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원장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이미 나를 자르기로 결정한 눈빛으로 말했다.


원장: "사람이 세명이면 일이 더 스무스하게 돼야 하는데, 지금 내가 봤을 때 J가 없으면 개판이야. J를 안 거치면 병원이 안 돌아가거든? 쌤도 느끼지? H(5개월 차)는 대놓고 사고 치는데 적어도 큰 사고는 안치거든? 내가 매 순간 쌤들이랑 같이 있지는 않아도, 다 보이는 게 있고 들리는 게 있어. 쌤 매일 지적받지?"


입을 닫은 채 속으로 말했다. 'H도 맨날 혼나잖아요. 왜 나한테만 그래요.'


원장: "아까 그 고양이 말이야. 접수 마감시간 아니었으면 내가 혈액검사 다 하고 이런저런 검사 다 해봐야 했던 상태였거든? 애가 좀 이상하더라고. 근데 그럴 수 있는 시간이 아니어서 다른 병원 보낸 거야. 내가 이런 진료 스트레스가 엄청 심한 사람이야."


나: "네"


원장: "J는 얼마나 답답하겠어? 알려줘도 숙지도 안되고, 매일 실수하고. 안 그래?"


잠깐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원장이 말을 이어갔다.


원장: "이렇게 되면 내가 세 사람을 쓰는 게 더 마이너스인 것 같다. 쌤은 다른 일 찾아봐요. 내가 봤을 때 쌤한테 병원은 아닌 거 같아. 좀 버겁지 않아? 월급은 내가 이번 달 거 다 챙겨줄 테니까... 지금 정리해서 가요. 나도 사람 내보내는 거 힘들어. 근데 나는 운영자라서 아닌 것 같으면 빨리 정리해야 돼. 나도 미안하게 생각하고, 이제 가봐."


언젠가 내가 해고당할 일이 생길까 봐 미리 알아뒀던 게 생각났다. 고용주는 해고를 하더라도 30일 전에 미리 예고해야 하고 해고통지서를 서면으로 작성해야 하는 게 원칙이라는 것을. 원칙을 좋아하는 나는 녹취를 못했으니 서류로라도 증거를 남기기 위해 마지막으로 요청했다.


나: "그럼 해고 통보서 하나 작성해 주세요."


원장: "그거 수습기간은 해당 안 되는 거 아닌가? 왜. 어디 제출하게?"


나: "그냥 제가 가지고 있으려고요."


원장: "뭐, 그래요."


면담이 끝나고 원장은 처치실로 들어가 상황을 간단하게 말했다.


"Y쌤(나) 갈 거야~"


일하는 동안이나, 마지막이나 한결같이 재수 없었다. 매일 혼나는 H도 오늘 나와 같은 실수를 한 적이 있었고, 그는 실수로 인정되었다. H의 상황을 잠깐 꺼내보자면 병원에 오기 전 보호자가 전화로 진료 대기 상황에 대해 물었고, H가 12시까지 오라고 했다. 그런데 하필 전화를 받았을 때는 한가했고, 보호자가 12시에 맞춰서 도착했을 때는 진료가 밀려있었다.

H: "지금 진료 안 되는데요. 마감됐어요."


보호자: "12시까지 오라면서요."


H: "아까는 한가했어요. 근데 진료가 밀려서 접수 마감됐고 지금 진료 안 돼요."


보호자: "어이가 없네..."


나 같아도 어이가 없었을 것 같다.


H: "저희도 진료 대기가 어떻게 될지 모르잖아요."


죄송하다는 말이 먼저 아닌가. 매니저와 원장은 모르겠지만 H는 보호자에게 다소 불친절하고, 진료가 밀릴 때는 대면이든 비대면이든 짜증 섞인 말투로 대한다. 신기하게도 이 병원에 오는 보호자들은 하나같이 다 너그러워서 그의 불친절함에 컴플레인을 건 적이 없다. 원장과 매니저님께 말하고 싶었지만 매일 봐야 하는 사람이고 나를 제외한 셋 중에 그래도 내가 덜 혼나도록 챙겨주는 사람이라 괜히 불화를 만들고 싶지 않아서 언젠가는 직접 보게 되겠지, 하며 가만히 있었다.


그 보호자의 반려견은 당장 내일 무지개다리를 건너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노견이었다. 결국 진료를 보지 못하고 먼 길을 다시 돌아갔다. 그 강아지가 혹시나 돌아가는 길에 무지개다리를 건넜다면, 그리고 원장이 알게 되었다면 과연 H도 해고되었을까?


H에게는 실수로 인정해 주면서 왜 나는 해고 사유가 되는 건지 황당하고 어이도 없었고, 신입을 뽑아놓고 수습기간도 다 채우기 전에 2년 차의 능숙함을 바라는 것도 어처구니가 없었다. 이럴 거면 처음부터 경력직을 뽑을 것이지 왜 신입을 고용했는지. 어차피 나에겐 다음 계획이 있기 때문에 미련은 없었다. 근무복을 입고 출근한 탓에 깨끗이 세탁해서 다른 날 반납하기로 하고 병원을 나와 M과 엄마에게 연락해 사실을 알렸다.


"나 잘렸어."


다행히 우리 집은 보수적이지 않아서 이런 상황도 "다른 일 알아보면 되지. 배우고 싶은 거 있으면 말해 도와줄게."라고 넘어간다. 늘 내편인 M도 "어차피 동물병원에서 계속 일할 거 아니었는데 뭐. 이제 하고 싶은 거 해. 시간 아끼고 좋지 뭐. 내일부터 거기는 사람 하나 빠져서 더 개판이겠다."라고 격려해 줬다. 원장은 그날 가능성이 충분한 인재이자 하나의 잠재고객을 잃었다. 그리고 나는 다시 두 마리의 반려견들과 함께 보낼 시간과 내 인생을 더 알차게 계획할 시간을 얻었다고 합리화하며 잠깐 무너진 멘탈을 다시 회복했다.


집에 와서 맛있는 점심을 먹고 바니와 산책을 다녀와서 소파에 앉아 좋아하는 드라마를 틀었다. 그리고 부당해고에 대해 법적으로 받을 수 있는 보상이 있는지 알아보았다. 내 상황은 아쉽게도 5인 미만의 사업장에 내가 근로한 기간이 3개월 미만이라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간간히 그때의 상황이 떠올라 나의 바보 같은 실수를 되돌리고 싶고, 인정하고 싶지 않은 원장의 말들이 머릿속에 맴돌아 억울함이 고개를 내밀지만 금세 사라진다. 병원 휴무일이 지난 어제 약속대로 해고통지서를 받으러 갔다. 예상대로 진료가 밀려있었고, H는 데스크에서 대놓고 일그러진 얼굴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티를 내며 업무 전화도 불친절하게 받고 있었다. 속이 시원했다. 미리 출력해 둔 서류를 받아만 가면 될 줄 알았는데 잠깐 기다리라더니 처치실로 들어오라고 했다. 원장의 얼굴을 보고 싶지 않았지만 어색하게 인사를 하고 매니저가 두 장의 해고통보서를 출력해 내 앞에 나란히 놓았다. 근로계약서와 동일하게 내용을 검토한 후 서명을 한 다음 서류를 챙겨 인사를 하고 처치실에서 나왔다. 해고통보서에 적힌 해고 사유는 '업무수행능력 부족'이었다. 그동안 감정적으로 행동한 적은 없었지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감정을 실어 문을 '쾅' 닫고 병원을 나왔다.


원칙적으로 업무능력부족으로 해고를 할 수 없게 되어있다지만 사실 나는 그 부분에 동의하지 않는다. 두 달 만에 일을 못한다는 이유로 자르는 건 좀 너무한다 싶다. 그런데 입장을 바꿔 적응 기간이 충분하고 업무를 자세히 알려줬는데도 직원이 매일 사고를 치고 운영에 방해가 된다면 어떻게 매일 그 직원과 일을 할 수 있을까. 그런데 업무 능력 부족으로 해고를 하는 게 정당한 사유가 될 수 없다니. 법이란 참 이상하다.


이번 일 외에도 이곳에 오래 일하다가는 정신적으로 받는 스트레스로 몸이 망가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던 상황이 여러 번 있었다. 출근을 해야 하는데 바니가 설사를 하고 낑낑대며 기력이 없던 날이 있었다. 반려견 동반 출근이 원칙상 안되지만 원장님께 미리 양해를 구하고 불편한 마음으로 데려갔었다. 그런데 생각 없이 데려온 것처럼 '웬만하면 데리고 오지 마. 여기 직장이야. 설사가... 응급은 아니잖아? 괜히 데려왔다가 자네도 신경 쓰이고 나도 신경 쓰여.'라고 했다. 직장이기 전에 동물병원이고 원장도 고양이를 여러 마리 키우는 보호자이면서, 나도 직원이기전에 내 반려견의 보호자라는 것을 이해받지 못한 것에 속상했다. '동물병원' 원장이라는 사람의 모순적인 발언에 당장 사직서를 던지고 싶었지만 잘리지 않는 한 버텨보겠다며 어떤 지적을 받아도 토 달지 않았고 더 잘해보겠다 다짐했었다.


어쨌든, 해고를 당한 날의 내 잘못을 인정한다. 소중한 고객을 잃게 했으니 병원 운영에 지장을 준 것이 맞다. 작고 큰 실수를 번복했으니 나의 포부와 노력과는 무관하게 운영자의 입장에서 나는 당장 꺼져줬으면 하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어렵게 구한 직장이지만 되돌릴 수 없으니 이제 내가 얻은 것들과 나의 앞날만 생각한다. 동물병원에서의 일 자체는 재밌었고, 동물을 '잘' 다루는 것이 어떤 것인지도 알게 되었다. 규모가 작은 1인 병원이었지만, 그곳이 아니면 배울 수 없는 것들을 직접 경험했다는 것에 의미를 두고 나는 내 인생의 다음 챕터로 넘어가려고 한다. 다시 백수가 되었지만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하다.


생각보다 주변에 부당해고를 당한 사람들이 많았다. 그리고 이 글을 읽는 사람들 중에도 혹시나 있다면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인내심이 부족하고 비겁한 고용주는 가능성이 충분한 인력을 잃었고, 또 다른 사람을 고용해 처음부터 다시 일을 가르쳐야 하는 수고를 해야 하며, 당신은 더 나은 앞날을 위한 더 값진 '시간'과 '기회'라는 걸 얻었다는 걸.


작가의 이전글"여기서 목줄을 풀면 어떡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