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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미워이 May 28. 2023

새로운 역사 탄생이 달갑지 않은 이유

2023 NBA Eastern Conference Final Game 6

마이애미가 3승을 먼저 챙기면서 사실상 파이널 진출을 확정 지은 듯했지만 보스턴에게 3게임을 연속해서 패배하고 분위기가 많이 기운 듯하다.


4-5차전, 접전 없이 해법을 못 찾고 마이애미가 완패를 당하는 것을 보니 분위기가 심상치 않구나 싶었는데, 마이애미 홈에서 펼쳐진 6차전도 드라마틱한 게임엔딩에 비해 경기 내용은 어웨이팀 보스턴이 압도했다고 봐도 무방했다. 잃을 것 없는 8번 시드로 매 경기 마지막처럼 뛴 마이애미가 체력도 전술도 바닥이 드러난 것 아닌가 하는 우려를 하게 된다.


‘우려’라고 표현한 건 마이애미를 응원해서라기보다 내가 응원하지 않는 팀이 새 역사 창조의 주인공이 된다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은근 작용하는 것 아닌가 생각해 본다. 보스턴 셀틱스가 0대 3으로 궁지에 몰리기 시작할 때부터 너도나도 이미 언급한 내용이지만, 미 프로스포츠 역사상 7전 4 선승제 포스트 시즌에서 먼저 3패를 당한 팀이 시리즈를 뒤집고 승리한 경우가 딱 한 번 있는데 공교롭게도 보스턴의 팀이었다. 2004년 MLB 아메리칸리그 챔피언쉽에서 보스턴 레드삭스가 뉴욕 양키스를 상대로 해낸 이력이 있다. 동일한 역사의 인용이 이제 보스턴이 아닌 마이애미에게 압박을 가하고 있는 중이다.


스포츠는 어디까지나 가치중립적인 것으로 선악구도로 바라보면 안 되겠지만, 선과 악의 대결 구도는 현실에서도 스포츠 영화에서도 아주 흔하게 보는 설정이다. 내가 응원하면 선이고 상대방은 악이 되는 상황, 막대한 자본과 인맥을 무기로 리그 균형을 깨는 팀에 대한 거부감, 승부욕이 지나쳐 더럽고 비겁한 플레이를 일삼는 선수에 대한 반감, 인종차별이 만연했던 과거 흑백의 갈등 구도 등 그렇게 되는 데도 여러 이유가 있다.


나의 응원팀이 애당초 탈락을 하여서 남은 플레이오프 경기를 편안하게 바라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마이애미의 역전패를 우려하는 이유는 마이애미가 가진 선수 구성과 팀스피릿이 NBA의 여느 팀과 차별화되어 있고 그것으로 보다 높은 결과물을 만들어 내길 바라고 있기 때문이다. 슈퍼스타를 끌어다가 윈나우를 노리는 여러 팀들이 계속 실패를 맛보는 와중에 언드래프티가 주전의 반을 차지하는 팀이 3 시즌 연속으로 파이널 또는 컨퍼런스 파이널에 올라오고 2년 연속 같은 팀을 상대로 7차전 명승부를 펼치고 있다.


프로스포츠는 아무리 좋게 말을 해도 결국 비즈니스임을 부정하기 어렵게 움직인다. 돈이 많기도 어렵지만, 돈 많은 팀이 어려운 길을 택하는 것 또한 보기 어려운 일이다. 마이애미가 돈이 얼마나 있는지는 몰라도 그들이 현재 보유한 로스터를 쉬운 길을 택한 결과로 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르브론-웨이드-보쉬를 데리고 4년 연속 파이널에 진출했던 슈퍼팀 시절의 영광(혹은 불명예)을 뒤로하고 기본에 충실하면서 마지막인 것처럼 열정을 쏟아붓는 농구로 다시 태어난 마이애미는 르브론이 떠날 때마다 풀 한 포기 자라지 않던 클리브랜드(그나마 두 번째 이별 후 생각보다 빨리 강팀으로 돌아왔지만)와는 달리 계속해서 강인한 팀으로 동부 컨퍼런스의 혼이 되어왔다. 우승을 좇아 여기저기 팀을 옮겨 다닌 D모 H모 I모 선수의 팀들이 파이널 근처도 가지 못하는 것을 보면서 슈퍼스타 중심의 팀이었을 때나 언드래프티 중심의 팀일 때나 좋은 팀을 꾸려나가는 감독과 구단의 역량에 경의를 표하게 된다. 이런 주장을 하는 내가 응원하는 팀이 리그에서 가장 많은 돈을 가진 팀 중 하나라는 부조리한 사실 때문에, 그 팀이 만들어낸 건전한 팀스피릿을 가장 퇴색하게 만든 것은 결국 그들이 가진 막강한 머니파워로 일궈낸 아픈 역사라는 것(+이름을 언급하기 싫은 더티 플레이어)이라고 주장하면서 대변해야 하는 수고를 감당하는 중이다. (그래서 어느 팀인지 밝히지 않겠다.)


전설적인 UCLA의 감독 존 우든의 책 속에서 스포츠를 ‘인생의 전부가 반나절에 펼쳐지는 것’이라고 비유한 내용이 있다. 한 경기 안에서 기뻐하고 좌절하고 예측할 수 없는 일이 쉴 새 없이 반복되는 과정을 보며 선수나 그것을 지켜보는 여러 사람들의 생각과 감정이 요동친다. 프로스포츠가 비즈니스이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까지 수많은 사람들을 일희일비하게 만드는 것은 이를 통해 인생에 관한 중요한 교훈을 매우 직관적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난, 결국엔 충분한 재정을 보유하는 것이 승리에 절대적으로 중요하다는 빗나간 교훈으로 결론이 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


우리가 스포츠 경기를 통해 깨닫는 의미가 약육강식과 적자생존, 물질적 풍요가 가져다주는 유익 같은 종류의 것이라면 인류가 가장 먼저 그만둬야 할 일 중 하나가 바로 스포츠일 것이다. 스포츠가 갖는 숭고한 의미를 지키기 위해 투쟁한 많은 스포츠인들과 스포츠인을 가장한 장사치들과의 대립구도가 오늘날 스포츠를 이끌어가는 원동력이라는 생각도 든다. 앞서 이것이 스포츠를 선과 악의 구도로 바라보게 만드는 한 축이라고 하였는데 돈 많은 구단이 그들이 얻게 된 부를 어떻게 사용하는 가에 따라서 우리는 이 구도를 벗어날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것이 부질없는 기대라는 게 명확한 현실 속에서 그나마 선악의 관점을 가지고 응원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고 이런 글을 쓰는 것도 그런 행동의 일환인 것 같다. 단지 내가 응원하는 팀도 아닌데 새 역사를 만들어내는 게 불편해서 이 글을 시작한 게 아니다.


현재 마이애미가 상대하는 보스턴이 돈으로 급조한 슈퍼팀이 아니며, 결승에 이미 올라가 기다리고 있는 팀이 레이커스가 아닌 덴버인 지금 상황은 누가 우승해도 크게 나무랄 데 없는 시즌으로 아름다운 마무리가 예정되어 있다는 점에서, 먹기 좋은 글감이나 찾아보면서 편안하게 남은 경기들을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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