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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미워이 Jun 03. 2023

Nostalgia in 새로운 역사의 탄생

2023 NBA Finals Denver vs Miami

2023년 NBA 파이널이 벌써 시작해 버렸다. 1차전은 언뜻 보면 덴버가 손쉽게 승리를 챙긴 것처럼 보였지만 마이애미는 마지막까지 물러서지 않았다. 시리즈 전적과 상관없이 명승부가 펼쳐질 것이 기대가 된다.


파이널이 시작하기 전 글을 써서 올리겠다던 나의 결심은 타고난 게으름 앞에 아주 쉽게 무너져 버렸다. 뭐 좀 그렇다 한들 큰일이야 나겠는가? 나는 전망이나 예측엔 촉이 안 좋은 편이다. 보통은 언더독 팀을 응원하는 데다가 나의 바람과 다른 객관적 사실에 대해서는 애써 외면하는 편이어서 결국엔 내가 희망하는 결과를 보는 경우가 매우 드물고, 그러다 보니 고리타분한 설교나 잔소리에 가까운 글만 주구장창 쓰게 되는 것 같다.


본론으로 들어가서, 이번 파이널은 어느 팀이 이기던 곧 새로운 역사의 주인공이 되는, 최근 십 수년 동안 찾기 힘든 구도하에 펼쳐지고 있다. 이렇게 저렇게 엮으면 누구나 찾을 수 있을 만한 역사상 최초라는 타이틀을 붙일 수 있는 포인트들은 모든 경기에 존재하겠지만, 범위를 좁혀 필자가 NBA에 집중하기 시작한 1992년 이래 목격한 일들 안으로 한정하여 이런 포인트 몇 가지를 짚으며 추억팔이를 해보려 한다.


최초의 8번 시드 우승 vs 팀 창단 후 첫 우승


우선 마이애미는…


마이애미는 밀워키를 누르면서 이미 큰 이변을 만들어 냈다. 결승까지 오게 될 거라고 예상한 사람은 많지 않았지만 보스턴을 3대 0으로 몰아붙일 때 이미 8번 시드 우승이라는 새 역사에 도전하게 될 것으로 모두의 기대를 받기 시작했다. 시리즈를 7차전까지 끌고 가면서 상대팀에게 새 역사 창조의 기회를 내어줄 뻔했다는 사실도 흥미롭다.


마이애미 이전에 8번 시드의 기적을 일궈낸 팀은 1999년 뉴욕 닉스로 그 당시 동부 1번 시드가 마이애미였다. 아픈 만큼 성숙하는 것인가, 그때 1번 시드로 자존심을 구겼던 히트는 이번에는 자신들이 8번 시드가 되어 1번 시드 밀워키를 제압했고, 1999년 자신들을 최초의 희생양으로 삼고 8번 시드로 파이널까지 갔던 뉴욕을 컨퍼런스 준결승에서 이기고, 보스턴과 7차전 혈투 끝에 어렵게 여기까지 올라왔다.


여담으로, 지금 마이애미와 상대하는 덴버도 8번 시드의 기적을 선보인 이력이 있다. 당시에 파이널까지 올라가지는 못했지만 플레이오프 1라운드가 아직 5전 3선 승제였던 1994년에 당시 서부 1번 시드 시애틀 슈퍼소닉스를 상대로 0대 2에서 3대 2로 역전하는 이변의 주인공이었다. 2라운드에서 광탈의 아픔을 겪기는 했지만 1라운드 시애틀과의 5차전 승리가 확정되는 순간 코트에 누워 농구공을 들고 감격하는 디켐베 무톰보의 영상은 아직까지도 플레이오프 광고에 종종 등장하는 명장면이다.  


앞서 언급했던 8번 시드 최초로 파이널에 진출했던 뉴욕이 만난 팀은 서부 1번 시드 샌안토니오스퍼스로 뉴욕에게 4-1로 승리하며 창단 후 첫 우승의 기쁨을 차지했다. 이번에 서부 1번 시드 덴버가 동부 8번 시드 마이애미에게 승리한다면 창단 후 첫 우승의 역사를 쓰게 되는 것이다. 마이애미는 Son of Beach 르브론이 웨이드와 보쉬를 거느리고 두 번의 우승을 차지했던 2013년 이후 10년 만에 다시 우승을 노리고 있다. 팀 역사상 최초 우승을 했던 2006년도 샤크와 웨이드뿐만 아니라 전성기를 놓치긴 했으나 이름값으론 빠지지 않을 알론조 모닝, 게리 페이튼, 앙투앙 워커, 제이슨 윌리엄스 등 많은 스타플레이어를 보유하고 있었는데, 드래프트조차 되지 않았던 선수들로 로스터를 꽉 채우고 있는 지금의 마이애미는 과거 우승을 노리던 마이애미와는 정체성에 큰 차이가 있다.


그렇다면 덴버는…


1번 시드로 결승에 올라 팀 창단 후 최초 우승을 노리는 덴버는 파이널 무대 역시 이번이 처음으로 나름의 새 역사를 이미 써 놓은 상태다. 이 전까지 최고 성적은 컨퍼런스 파이널 진출로 총 5회 진출하였는데 직전의 네 번을 LA 레이커스와 맞붙었으니 네 번의 대결 끝에 마침내 승리한 것이다. 레이커스와의 질긴 악연을 끊고 일궈낸 값진 파이널 진출이라는 부분은 이번 컨퍼런스 파이널 당시 많이 화자 되지 않은 것 같다. (아닌가…)


니콜라 요키치가 데뷔할 당시 지금처럼 위대한 선수가 될 거라고 예상한 이는 없었지만, 과거 덴버의 에이스 카멜로 앤서니가 덴버에 드래프트 될 때 르브론 제임스와 같은 슈퍼스타가 될 거라고 기대한 사람들은 많았다. 앤서니 당시의 덴버는 화려한 서포팅 캐스트로 로스터를 채우고도 챔피언 도전자의 꿈조차 이루지 못하고 그 과정에 인내를 상실한 대도시 출신 에이스에게 버림받아야 했던 산골마을 팀이었지만, 이후에도 이 팀에게는 뭔가 알 수 없는 끈끈한 팀 스피릿이 계속 존재해 왔다. 2015년 마이클 말론이 감독으로 부임하고 나서 유럽에서 건너온 마치 외계인 같은 이 이상한 선수를 중심으로 수년간 팀을 빌드업해 왔고 그 와중에 선수 생명의 위기를 안고 재활하는 몇몇 선수들을 끝까지 믿고 기다려주면서 결과적으로 가장 완성도 높은 지금의 팀이 탄생하였다.


NBA의 역사는 깊고도 넓어서 이런저런 사건들을 꺼내어 이야기를 만들어 내려면 어떻게든 만들어 내겠지만, 나 같은 사람이 기억하는 짧은 역사 안에서도 너무도 분명하게 확인 가능한 이야기 소재를 제공해 주는 것이 이번 파이널이라고 이 글을 읽는 (아직은) 소수의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었다.


막대한 자본력을 실력인양 뽐내는 작금의 프로스포츠 생태계를 지배하며 TV 시청률과 광고, 관객입장 수입만을 걱정하는 이들을 오로지 실력과 투지로 확실하게 제압하는, 현실과는 조금 동떨어진 느낌의 두 팀이 쓰게 될 새로운 역사가 앞서 보았던 여러 우승들보다 더 가치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 지기를 바라고 있다.


정작 최초의 역사를 만들어내는 상황 앞의 두 팀은 사람들이 말하는 최초라는 타이틀에 큰 의미를 두고 있지 않을 것이다. 표면적으로는 1위와 8위의 싸움이지만, 정규리그 순위는 더 이상 의미가 없어 보인다. 어떤 의미에서는 두 팀 모두 언더독이다. 말년에 맞이한 두 번째 파이널 무대에서 지미 버틀러에겐 우승이 너무나 간절할 것이다. 사람들이 자신들에겐 별 관심을 주지 않는다 생각하는 덴버도 지금 서있는 그 자리가 어쩌면 다시 올라오기 어려운 위치임을 분명 알고 있을 것이다.


“LAKERS 대 CELTICS, 클래식 매치의 재현”에 실패하여 누군가는 참 속이 쓰리겠지만, 역사를 잘 들여다보면 그런 식의 억지 수사를 붙여가며 의미를 부여하지 않아도 충분히 생각해 볼 만한 이야기들을 담고 있는 파이널을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중이다.


곧 새로운 역사가 탄생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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