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 도착한 다음 날, 필요한 것들 사기 위해 동네에서 제일 큰 마트에 들렀다. 이것저것 카트에 주워 담고 더 살 것들을 찾아 헤매다 2층에 물건들이 더 있나 싶어서 엘리베이터 앞으로 갔다. 순간, 쎄한 느낌이 왔다. 엘리베이터 앞의 수많은 사람 중 카트에 물건을 실은 채 서 있던 것은 나 혼자. 나는, 나도 모르게 계산도 하지 않은 물건들을 고스란히 가지고 당당하게 마트를 빠져 나와 있었던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마트에 가면 외부로 통하는 길은 모조리 검색대나 계산대로 막혀 있어, 이처럼 파렴치한 상황을 연출하는 것이 불가능했기에,당연히 비슷한 시스템을 전제하고 생전 처음 가보는 마트를 자유롭게 헤매다 계산도 안 하고 빠져 나온 것이다. 나만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을 뿐이지, 그때까지 어느 누구도 나를 의심스럽게 쳐다보지 않았다.
일본에 머무르며 비슷한 경험들은 또 있었다.
일본에서 인터넷으로 아이의 장난감을 구매했다. 포장을 뜯지도 않은 채 한참 두었다가 장난감을 꺼넀는데 작동이 안되는 거다. 한 푼이 아까웠던 처지라 그냥 지나가자니 억울하고, 항의를 하자니 이미 구입한 지 두 달이나 지난 장난감을 이제서야 꺼내보니 고장나 있더라라는 말을 믿어줄 것 같지도 않고. 한참을 고민하다 사전, 번역기를 총 동원하여 최대한 나를 거짓말 하는 사람으로 보지 않게끔 여러 이유들을 일본어 문장으로 만들어서 열심히 외운 후 AS센터에 전화를 걸었다. 어차피 내 일본어를 들으면 단박에 외국인인 걸 알테니 고국에 다녀오느라 이제서야 발견했다는 그럴듯한 핑계를 몇 번이나 머리 속에서 되뇌었다.
"제가 두 달 전에 장난감을 구입했는데, 사정이 생겨 지금 꺼내보니까 고장이 났습니다."
쿵쾅 거리는 가슴을 온몸으로 느끼며 덜덜 떠는 손으로 수화기를 붙들고 어렵게 말을 꺼냈더니만,
"아, 알겠습니다. 주소를 알려주시면 저희가 새 제품을 보내드리겠습니다."
나는 내가 왜 고장난 것을 이제사 발견했는지에 대한 답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어떤 고장인지조차도 궁금해하지 않는 게 아닌가. 혹시나 싶어
"그럼 제가 가지고 있던 걸 다시 보내드리면 될까요?"라고 시나리오에도 없던 질문을 했더니,
"아닙니다. 알아서 처리하시거나 가지고 계시면 됩니다."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이 날의 기억은 외국 살이의 에피소드로 지나가지 않고 두고두고 나의 마음 속에 남았다. 그날, 그곳에서 내가 느꼈던 감정은 '신뢰 받고 있다'였다. '저 사람은 나를 속이지 않을테니 믿어주자.' 하는 느낌. 단편적인 경험들이고, 일본이란 나라에 대해서도 모르는 게 많은 터라, 일본 사회는 어떻더라. 하는 일반론적인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냥 그 순간의 느낌이 중요했다. '나를 믿고 있구나.'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어떻게 이곳에서 생활해 나갈까. 싶었던 마음이 비로소 안정감을 찾기 시작했다. 나를 믿고 있으니, 나도 믿음에 맞게 행동을 하면 잘 살 수 있겠구나.
일본 생활을 정리하고 귀국하여 며칠 뒤 복직을 했다. 그리고 얼마 뒤 학교에서는 학생들의 휴대전화 사용과 관한 교칙을 제정하며 대대적인 토론이 벌어졌다.
"수업 시간에 휴대 전화를 사용하다 걸리면 교사가 전화기를 압수해 담임 교사에게 전달합시다."
"애들이 휴대폰 제출한답시고 여분으로 가지고 있던 공폰을 내면 어떡합니까? 통화가 되는지도 확인해야 합니다."
"하루동안 압수한다는 규정을 만들면 애들이 의도적으로 7교시 끝날 무렵에 쓸 수도 있습니다. 별도의 규정을 만들어야 합니다."
예상되는 변수들이 이곳 저곳에서 터져 나오다 보니, 퇴근 시간을 훌쩍 넘겼는데도 회의가 쉬이 끝나지 않았다. 그날, 자리에 앉아 있으며 그물에 걸린 물고기들을 생각했다. 학교에서는 계속 그물망을 촘촘히 짜 가고, 아이들은 어떻게든 틈을 비집고 나가려고 하고, 그러면 그물은 더 촘촘해지고, 아이들은 틈새를 뒤지고......
왜 우리는 아이들을 옭죄지 않으면, 아이들이 어디론가 빠져나갈 것이라고만 생각하는 걸까?
왜 자꾸 '너는 나를 속이는 존재이고, 나는 널 의심하고 있어.'라는 메시지를 아이들에게 주입하는 것일까.
직장으로서 학교는 참 특별한 곳이다. 학생과 교사의 사이에는 아무런 이해 관계도 성립하지 않는다. 교사의 여러 업무는 아이들로부터 주어지는 어떠한 대가를 기대하고 하는 일들이 아니다. 교육을 종종 서비스업에 빗대곤 하지만, 이런 면에서 두 직종은 차원이 다르다.
그렇다면 교사야 말로 아이들을 무한정 신뢰해 볼 수도 있지 않을까?
모든 아이들이 정직하지는 않다. 눈에 보이는 뻔한 거짓말부터 나름 치밀한 속임수를 쓰려고 드는 아이들도 있다. 하지만, 그럴 때 조차도 '나는 너를 믿는다.'라는 메시지를 준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이해 관계로 얽히고 설킨 곳에서 어차피 사방에서 경계와 의심의 눈초리를 감당하며 살아야 하는 것이 보통의 삶이라면, 학교에서라도 누군가에게 무한한 신뢰를 받고 있다는 경험을 한번쯤은 해봐도 되지 않을까
규제하고 억압해서 무엇인가를 '못'하거나, 무엇인가를 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것보다
믿어줌으로써 무엇인가를 '안'하거나 무엇인가를 해낼 수 있게 만드는 교육. 그것은 너무 허황된 이상인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