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꼬가 간지러워~!'

감정의 진폭

by 송송



"언니, 지금 똥꼬가 간지럽지 않아?"

올해 초등학교 입학한 둘째 아이는 신나는 일이 있을 때 이런 표현을 자주 쓴다. 처음에는 무슨 뜻일까 궁금했는데, 내가 그 맘때쯤이었던 시기를 기억해 보니, 어렴풋이 나도 '똥꼬가 간지러운' 느낌을 받았던 때가 생각이 난다.

문구점에 진열된 인형을 점찍어두고 내 생일이 하루 하루 앞으로 다가올 때, 내가 정말 귀여워했던 사촌 동생이 우리집에 놀러온다고 했을 때, 크리스마스 전날 머리 맡에 놓일 선물을 기대하며 잠이 들 때 나는 '똥꼬가 가려웠다'. 뭔가 너무 흥분되어 내 몸의 중심으로부터 뭔가 스물스물 올라오는 느낌. 언어로 표현한 적이 없어, 내 기억 속에서 사라졌던 느낌인데, 딸 아이의 말 속에서 그 기분이 되살아났다.


내가 가장 최근 이런 감정을 느껴봤던 적이 언제였더라.

아무리 생각해 봐도 모르겠다. 이제는 더 이상 나의 감정에 내 몸이 먼저 반응하지 않는 것 같다. 공자가 불혹(不惑)이니, 이순(耳順)이니 하는 말을 만들어낸 것도 이런 이치아니었을까. 자연스럽게 나이가 들다보면 이르게 되는 상태.

나는 나이가 들어가며 감정들이 무뎌지고, 어린 아이들은 세상을 온 몸으로 느끼며 크나보다. 똑같이 시간은 흘러가지만 늙어가는 자와 커 가는 자들에게 세상은 이렇게 다르게 다가온다.


감정을 진폭으로 나타낸다면, 나이가 먹어갈 수록 그 폭은 점점 줄어가는 것 같다. 아이들은 긍정적인 감정도, 부정적인 감정도 나보다 훨씬 크게 받아들인다. 별 거 아닌 것 같은 상황에서도 불안해 하고, 마찬가지로 별 거 아닌 것 같은데 기뻐하고, 별 것도 아닌 것에 울고 웃는다.


학교에서 중간 고사를 치르는 오늘도, 삼삼오오 모여 공부는 안 하고 지들끼리 떠들다가 서로 이름을 새롭게 지어 준다며 이름 첫 글자 뒤에 밑도 끝도 없이 '자'를 붙이며 서로 '가자, 유자, 강자, 수자' 라고 부르며 난리가 났다. 정말 저게 그렇게 재미있는 일인가 싶어서 "그게 그렇게 웃기니?"하는 말에도 아이들은 까르르 웃어댄다.


여기서 아이들만의 힘을 느낀다. 머리로 하는 계산보다 온몸으로 느끼는 감정이 앞서는, 그리고 그것에 대해 순수하게 반응하는 나이.

입시 경쟁의 과열로, 아이들은 이기적이고 계산적으로 변했다고들 하지만, 그래도 학교에는 여전히 그런 순수함들이 존재한다. 나는 귀찮아서 봐도 모르는 척 지나가는, 불합리한 관행들에 대해 조목조목 따지고, 친구가 힘들어 할 때면 공부도 팽개친 채 친구의 고민을 몇 시간씩 들어주고, 함께 울어준다.



몇 년 전 한 아이가 졸업식날 교무실에 찾아와서, 자신이 한참 힘들었을 때 내가 자기를 위해 기도해준다고 해서 너무나 큰 힘이 되었노라며 감사 인사를 전하고 갔다. 도무지 그런 기억이 없어 문자 메시지 내역을 뒤져 보니, 아이와 문자 메시지 몇 개를 주고 받다가, 내용을 마무리 해야 되는데 딱히 쓸 말이 없어서 '~가 잘 해 낼 수 있길 기도할게.'라고 한 마디 붙였던 게 기억이 났다. 아이는 자기를 위해 담임이 기도해주리라 믿고 힘을 냈다는데, 나는 기도는 커녕, 그런 말을 했다는 것조차 모르고 있었으니, 인사를 받기에는 너무 민망하고 미안해서 어설프게 웃으며 어정쩡하게 서 있었다.

아이를 돌려보내고 오만가지 생각이 머리에 떠올랐다. 이 아이는 그래도 감사하다고 생각하니 찾아와서 얘기를 하고 갔지, 나의 의도치 않은 말이나 행동에 상처를 받은 아이들은 또 얼만큼 많았을까.


아이들과 지내는 기간이, 나에게는 지나가는 1년이지만, 아이들에겐 이렇게 온몸으로 세상을 느끼며 커 가는,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귀중한 시간이 된다. 학교라는 곳은 반복된 일상을 살아가는 곳이지만, 무뎌지고 무감해지는 감정을 경계하며 나의 시선이 아이들의 감정의 스펙트럼에 닿아 있도록, 매일을 새롭게 살아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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