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해, 나를 키운 건 8할이 학생들이었다.
나에겐 큰 선물이었던 아이들 이야기
교사들 사이에선 '담임 복'이라는 말을 많이 쓴다. 야무지고 똘똘한 아이들이 많은 학급을 담임할 때와 상대적으로 그렇지 않을 때와, 신경 써야 할 일들은 차이가 꽤 난다. 동학년이더라도 정말 '운'에 따라 학급 분위기는 천차만별이어서, 매해 아이들을 배정 받기 전날에는, 잠자리에 들기 전 간만에 '하느님'을 소환해 기복 신앙에 기대 보기도 한다.
지금까지, 아니 앞으로도 없을 담임 복의 최고치는, 내가 결혼하던 해에 찾아왔다.
"선생님, 비둘기가 알을 낳았나 봐요, 으으 새끼도 있어요. 악, 이상한 냄새까지 나요!!!!"
그맘 때 우리 학급을 제일 괴롭히던 존재는 비둘기였다. 학급마다 발코니가 있고, 발코니 한 귀퉁이에 청소 용품을 보관해 두는 장소가 있었는데 비둘기 딴에도 '더러움'만 참으면 나름 아늑하고 안전하다고 생각했는지, 몇 번을 날아들며 시찰을 하다, 지푸라기들을 물어오며 둥지를 짓는가 싶더니, 잠깐 방심한 새에 그곳에서 알을 낳고 부화까지 해버린 거다.
당시 나는 첫째 아이를 뱃속에 품고 심한 입덧에 시달리고 있을 때였다. 내가 발코니로 향하는 문을 열려고 하자 아이들 몇몇이 나를 막아섰다.
"선생님은 임신하셨으니까 보시면 안돼요. 저희가 알아서 할게요."
마침, 정기적으로 가는 병원 검진까지 예정된 터여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데 퇴근 시간이 됐다는 걸 눈치 챈 아이들은 내 등을 떠밀기까지 했다.
"저희가 알아서 할테니까 걱정 마시고 선생님 얼른 가세요."
학교를 그대로 나서자니 아이들에게 너무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한 아이에게 내 카드를 주며 끝나거든 나에게 연락을 주고, 학교 앞에 있던 냉면 맛집에서 냉면 한 그릇씩 먹고 가라고 했다. 너무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에 냉면 먹고 가라는 부분에서는 '제발 제발 꼭 먹어. 명령이야. 안 먹으면 혼낼 거야.'라고 몇 번씩이나 다짐을 받았다.
"네네, 걱정 말고 가세요. 이 카드로 저희 저녁도 잘 챙겨 먹을게요."
몇 시간 후
'선생님, 냉면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라고 문자가 왔다. 하지만 아무리 뒤져봐도 카드 결제를 알리는 문자는 오지 않았다.
다음 날 발코니는 말끔하게 청소가 되어 있었다. 비둘기 둥지와 새끼들은 학교 잔디밭에다 그대로 옮겨 놓고 냄새가 가시지 않아 물청소까지 했단다. 그러면서도 연신, 엄마 비둘기가 둥지 옮긴 곳을 알 수 있을까 걱정을 해댔다. 나는 아이들에게 왜 어제 저녁을 먹지도 않고 고맙다는 문자를 보냈냐고 물었다.
"아, 저희 다 배가 안 고파서요. 근데 또 안 먹었다고 하면 선생님이 너무 신경쓰실까봐 그랬어요. 헤헷."
이 순간, 누가 선생이고 누가 학생인지가 심각하게 헷갈리기 시작했다.
그 해 내내 그랬다. 덤벙거려서 전달 사항을 상습적으로 빼먹는 담임 교사의 성향을 파악하고, 종례 전에는 학급 회장이 옆반 회장들과 서로 전달 내용을 크로스 체크 하며 종례에 들어가면
"선생님, 오늘 ~~ 이야기 해주셔야 해요."라고 챙기지를 않나,
체육 대회고 축제고, 학교 행사가 있을 때는 뒷정리를 시키러 가보면 이미 정리를 다 마치고 아이들 각자 손에 쓰레기를 든 채 교실로 가고 있지를 않나.
이쯤되니, 내가 아이들을 가르치고 챙기는 게 아니라, 우리반 35명 아이들 모두가 나 하나를 키워내고 있는 느낌마저 들 지경이었다.
이듬해, 나는 출산을 위해 휴가를 냈고, 아이들은 입시를 앞둔 3학년이 되었다. 4월에 첫아이를 낳고, 육아 초보로 하루하루 정신없이 살던 어느 날, 한 아이에게 문자가 왔다.
' 오늘 오후에 잠깐 선생님 댁 근처로 찾아가도 될까요?'
한창 바쁠텐데 무슨 일인가 싶어, 날짜를 봤더니 5월 15일.
아이들은 집 앞 빵집에서 케이크에 촛불을 붙이며 도무지 나한테 감사할 거리가 뭐가 있는지 모르겠는데, 나를 둘러싸고 스승의 날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다고 몇 번이나 이야기하고 돌아갔다.
대학생이 되어서도, 직장인이 되어서도 아이들은 종종 소식을 전하고 우리 집에 가끔 놀러오기도 한다.
한번은, 아이들이 우리집에 놀러온다고 했는데, 첫째 아이가 감기 기운이 있어 그 시간에 소아과 진료를 봐야 하니 그 근처서 만나자고 했더니만,
나보다도 더 일찍 약속 장소에 도착해서 소아과에 가 내 이름으로 예약을 해주고 나를 맞이하지를 않나,
아이들이 깨어 있을 때는 온몸으로 아이들과 놀아주다, 아이들이 낮잠을 잘 때면, 자긴 가만히 있는 것보다 이게 더 재밌다며 청소를 하고 설거지를 하지를 않나,
유럽 베낭 여행을 가서 맨날 맥도널드만 다니며 식비를 아껴 우리 아이들 선물을 사오질 않나,
화장품 매장에서 근무하던 아이는 우리집에서 한참을 놀고 간 후 문자 메시지를 보내
'선생님이 부담스러워 하실까봐 책꽂이 둘째 칸에 작은 선물을 두고 왔어요.'라며 화장품 세트를 주지를 않나,
이 아이들만 생각하면 '내가 전생에 어떤 업적을 쌓았나'하는 합리적 의심이 들 수밖에 없다.
육아 휴직을 몇 년 지내고 복직한 후.
또다시 비둘기는 우리 학급 발코니에 알을 낳았다.
모성애 때문인지 어떤 간접 위협에도 꿈쩍 않던 비둘기와 신경전을 펼치다, 문득 고개를 들어 보니
아이들은 행여나 비둘기가 자기들에게 날아들까 싶어
문과 창문을 꼭꼭 닫은 채 창밖에서 나를 '구경'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