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알고 있는 그 아이는 당신의 아이가 아닐지도..

너무 다른 아이의 모습에 놀라지 마세요.

by 송송

H의 어머니가 진학과 관련하여 면담을 신청하셨다. 어머니는 오시자 마자.

"우리 H가 워낙 말도 없고, 얌전해서 학교 생활은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어요. 집에 오면 바로 지 방으로 쏙 들어가서 나오지도 않아서, 애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모르겠고요." 하며 걱정을 늘어놓으셨다.

쉬는 시간에 교실에 가보면 늘 친구들과 밝게 웃고 떠들던 모습이 떠올라 의아했지만, 학기 초여서 내가 잘못봤나보다 싶었다.

면담을 하고 난 다음날 모의 고사 성적표가 배부되었다. H는 성적표를 받자마자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큰 목소리로 "X발, X나 방했네."하고 탄식을 해 모든 아이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야, 너 엄마가 되게 얌전하다고 하시던데?"

"아, 네.. 제가 집에선 좀 그래요. 히히."

사회 생활을 하는 모든 사람들은 다면적이다. 나 역시, 교무실에서의 나와 교실에서의 나, 집에서의 나의 모습이 제각각이다. 심지어 채팅창에서조차도 누구와 대화를 나누는지, 어느 채팅방에 들어가 있는지에 따라 나의 모습은 달라진다.

아이들이 어렸을 적 어린이집 면담을 갔을 때 "언니가 동생을 얼마나 아끼는지, 너무 보기 좋아요."라는 선생님의 말에 서로 잡아 먹을 듯 싸우던 모습이 떠올라 경악스러웠던 것처럼,

학급에서 "잘 하고 있으니 조금만 더 힘 내자."라고 응원의 메시지를 남발하는 나와

집에서는 구구단을 버벅대는 3학년 딸에게 냅다 고함부터 지르는 나를 누군가가 동시에 보고 있다면 그에게 나는 그야말로 천하의 가식덩어리, 위선자일 것이다.

실제 대화 상에서 나는 비속어를 잘 쓰지 않고, 쓰려고 해도 자연스럽지 않은 느낌이 드는데, 가까운 사람들과 나누는 대화창에서는 속되도 이렇게 속될 수가 없다. 내 대화 속에서는 온갖 방언과 속어가 남발한다. 한번은 친한 친구들이 있는 채팅창에서 내가 혹시 비명횡사하거든 제일 먼저 이 채팅창을 '폭파'해 달라 부탁한 적도 있다.

그리고

이 모든 모습이 '나'이다.


교사도, 부모도

아이들 역시 여러 개의 얼굴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아이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

그러나 한평생 달의 한쪽 면만을 보고 사는 지구인들이 그것이 달의 전부인양 착각하듯, '나는 아이에 대해 다 알고 있다'는 함정에 빠져 아이를 자신이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걸 느끼는 순간, 아이는 진심이 섞인 소통을 거부한다.

한번은 대학 입시에서 낙방한 아이가 종례 후에도 교실에 우두커니 남아 있다가

"저는 대학에 떨어진 게 괜찮은데, 집에 가면 엄마가 속상하시면서도 저 때문에 억지로 웃고 있는 모습이 보여서 집에 가서 마음 놓고 웃자니 눈치가 보이고, 울어버리면 엄마가 더 속상해 하실까봐 울지도 못하겠고, 집에서 제가 어떤 얼굴을 하고 있어야 하는지 모르겠어요."라며 펑펑 울었던 적이 있다.

부모들이 보지 못하는 아이들의 여러 얼굴 속에는, 이렇게 생각보다 쑥 자란 어른의 모습이 있기도 하다. '집에서 새는 바가지~ 어쩌고'하는 속담도 있지만, 집에서는 엉망인 것 같은 바가지도, 그 어딘가에선 다른 모습으로 잘 쓰일 수 있다. 굳이 새는 부분을 억지로 틀어막으려고 하는 것보다 아이들이 저마다의 얼굴로 성장해 가고 있음을 믿고 기다리고 응원해주는 교사가 되고 싶다.

(*매일같이 '숙제 했니?'로 시작하는 나의 불호령을 듣는 내 딸들이 이 마지막 줄을 나중에 읽고 나서 어떤 생각을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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