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복 그까이꺼

학생들과 갈등의 원천 - 교복

by 송송

내가 근무하는 학교에서는 '무릎을 덮는 길이'로 교복 치마 길이의 제한을 뒀다. 작년까지도 교사들이 아침 일찍부터 교문 앞을 지키며 아이들 치마 길이를 단속하곤 했다. 지금은 발열 체크를 하느라 다행이 그 따위에 관심을 둘 여유는 사라졌지만.

몇 년 전 내가 속한 학년에서 불시에 아이들 치마 길이를 점검하자는 의견이 나왔고, 여교사들끼리 조를 짜서 그야말로 아이들을 습격했다. 아이들을 교실 가장자리로 빙 둘러 세우고, 치마가 무릎을 덮는지 아닌지를 보는데, 정육점에서 소고기를 살 때마냥 나도 모르게 아이들의 눈빛이나 표정이 아니라 오로지 무릎만을 집중해서 살피다 보니 너무 불쾌한 기분이 들었다. 하는 나도 그러는데, 당하는 애들은 오죽하랴.

그런데, 불쾌한 건 불쾌한 거고, 보면 볼 수록 도무지 기준을 모르겠는 거다. 무릎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인가. 무릎뼈가 시작되어 끝이 나는 지점인가. '무릎을 굽히다'라는 표현을 썼을 때 굽혀지는 부분인가. 갑자기 수업 시간에 설명했던 국어 지식까지 머릿 속에 떠오른다. 언어는 연속된 대상을 분절하는 건데, 우리가 무릎이라고 일컫긴 하지만 이어진 다리 부위에서 무릎의 정확한 위치를 이야기할 수 있을까.

하는 수 없이 다음 학급에 들어가서는 치마가 짧다고 생각하는 애들은 자진해서 나오라고 하고, 나머지 애들만 대충 훑어보고 자리에 들여보냈다. 그렇게 두 학급에서 '추려낸' 아이들이 5,6명정도. 그런데 복도에 나와 보니 나와는 달리 매의 눈을 가진 교사가 들어간 학급에서는 절반이 넘는 아이들이 뾰루퉁한 입을 하고 불만을 쏟아내고 있었다. "아, 저는 배가 나와서 치마가 올라갔단 말이에요. 치마 진짜 안 줄였다고요.", "무릎을 아슬아슬하게 가리는데 이러면 안된대요." "살 때부터 이랬단 말이에요. 근데 또 사라고요?"


어느 불만에도 명확한 대답을 해주지 못한 채 교무실에 들어와 자리에 앉았다.

교복은 왜 규정에 맞게 입어야 하는 걸까?

아니, 그보다 앞서 교복은 왜 입어야 할까?


교사의 입장에서 학생이 교복을 입어야 하는 이유는 몇 가지 댈 수 있다.


1. '학생'과 '학생이 아닌 이'를 쉽게 구분할 수 있다.

고등학생 정도 되면 이미 성장이 끝나가는 상태라, 교복을 입지 않으면 대충의 모습만 보고 재학생인지, 졸업생이 학교에 놀러 왔는지, 신임 여교사인지 쉽게 구분이 되지 않는다. 외부인들이 들어온대도 잘 파악할 수가 없다. 지금처럼 마스크로 얼굴의 절반을 가리고 다니는 경우는 더 그렇다. 교복은 재학생이냐 아니냐를 단박에 알 수 있게 해주는 좋은 기준이 된다.


2. 예쁘다.

어디까지나 내 기준이다. 꼰대 소리를 듣는 것은 절대 피하고 싶지만, 취향이 꼰대인 것은 어쩔 수 없다. 사복을 입고 얼굴에 분칠을 한 모습보다, 혹은 허리는 타이트하게, 치마는 짧게 멋을 낸 교복을 입은 아이들보다, 어정쩡한 핏의 교복을 입고 머리를 단정하게 하나로 묶은 아이들이 내 눈엔 젤로 예쁘다.


3. 아이들의 경제적 상황에 대한 편견이 덜 생긴다.

다 같은 옷을 입고 있으니, 누가 부유한 집의 아이인지, 누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옷차림으로는 파악할 수가 없고 편견도 안 생긴다.


자, 그럼 학생의 입장에서 교복이 필요한 이유는?


1. 아침에 옷 고르는 시간을 아껴준다.

음...

더 이상 없다.


몇 번을 생각해봐도 결국 교복은 교사와 학교의 필요에 의한 것이 아닐까 싶다. 그러나 이걸 인정해 버리면 교복을 강제할 명분도 사라지기에 억지로 이유를 하나 만들어 냈다.


'교복도 하나의 규칙이고 약속입니다. 교복을 갖춰입음으로써 준법 정신을 기를 수 있습니다.'

너무나 궤변 같지만, 온갖 훈화와 교육을 통해 실제로 아이들에게 전달되는 내용이다.


이 말은 타당한가?

적어도 내 경험으로 보면 타당하지 않다. 내가 알고 있는 졸업생들 가운데, 교복을 잘 입지 않아서 범법자가 됐다거나, 교복을 잘 입고 다녀서 준법 정신이 투철한 시민으로 살고 있다거나. 하는 인과 관계로 설명할 수 있는 아이들은 없다.


그렇다면 교복은 필요가 없을까?

사실 나는 교복 찬성론자이다. 왜냐. 교복을 입는 게 교사 입장에서는 이점이 크니까.

무엇보다, 한창 유행이나 남의 시선을 의식할 나이의 아이들이, 학교라는 공동체 안에서 누군가는 원하는 대로 잔뜩 멋을 낼 수 있고, 누군가는 부모 속을 박박 긁고 나서야 겨우 무리 속에 속하게 되고, 또 누군가는 그마저도못하게 될 수도 있다. 실제로, 무슨 일을 하고 살건 평생 돈 걱정은 없이 살겠다 싶은 애들부터 집에 쌀 살 돈이 없다며 호소하는 아이들까지 같은 학급에 앉아 있었던 적도 있으니까. 누군가는 깊은 내상을 입을 게 뻔한 상황을 나는 정말 원치 않는다. 외국의 명문 사립 학교들의 교복이 자신의 정체성을 뽐내는 것이라면, 우리나라의 교복은 학생들의 배경을 얼만큼은 가려주는 블라인드 효과가 있다. 아이들도 언젠가는 자본 주의 사회에서 자본의 살벌함을 경험하게 되겠지만, 학교에서만큼은 그러지 않았으면 한다.


그러나 교복은 '표현의 자유'와 상극인 것도 사실.

나 정도 나이가 되니 디자인이고 뭐고, 편한 옷이 짱이지만, 멋내다가 진짜 얼어죽을 수도 있는 게 10대들 아닌가. 한창 자신의 개성을 만들어가고 표현하고 싶을 나이에, 그것을 교복 안으로 가두어 두는 행위는 정당한가?


그래서 제안한다. '교복 프로젝트'

학교에서는 가장 기본적인 형태 (블라우스나 티셔츠에 바지 혹은 스커트 정도?)만을 규정한다. 그리고 교복의 변형에 제한을 두지 않는다. 기술 가정 시간에 의복의 기능과 함께 교복 리폼에 필요한 기술들을 익히고, 교복은 학교에서 매일 착용한다는 전제 하에 미술 시간에 도안을 그려 본다. 국어 시간에는 자신이 어떤 컨셉으로, 혹은 어떤 이유로 교복을 리폼을 할 건지를 설명하게 한다. 그리고 통합 교과 시간에 실제 리폼을 진행한다. 분명한 이유가 있다면 교복을 변형하지 않고, 그대로 입고 다녀도 좋다. 마찬가지로 분명한 이유가 있다면 교복을 누더기로 만들어 놓아도 좋다. 입다가 싫증이 난 교복은 교복 장터를 열어 팔거나 마음에 맞는 친구끼리 바꿔 입는다.

이제 교복은 '신성 불가침'의 영역이 아니라 아이들이 개성을 발산하는 하나의 소재가 된다. 어떻게 입고 다녀도 저마다의 이유와 컨셉이 있는 것. 이 과정에서 아이들은 '다양성의 가치'도 이해하고 수용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는 아이들이 태어나기도 전 이야기가 된 '2002 월드컵'.

고리타분하게만 느껴졌던 태극기는 청춘들의 손에 의해 티셔츠로도, 망또로도, 두건으로도 변신하며 힙한 아이템이 되었다. 국기를 훼손한다는 당시 꼰대들의 눈초리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국기도 그러한데, 교복이 못할 소냐.

교복 그까이꺼. 그게 다 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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