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세상을 사는 아이들
'스마트폰 세대' 바라보기
A는 선뜻 다가가 말을 걸기 힘든 학생이었다. 늘 시선은 바닥을 향해있고, 무표정했으며, 가끔 질문을 하면 '예, 아니오'식의 단답형의 답변을 퉁명스레 내뱉으며 눈을 치켜 떠서 나를 보곤 했다. 내가 말을 거는 게 싫은가 싶어 한동안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말을 건네지 않았다.
내가 A와 긴 이야기를 나누게 된 계기는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A가 먼저 상담을 요청했는지, 내가 그래도 A와 너무 이야기를 안 하는 것이 괜히 찔려서 이야기 좀 하자고 불러낸 건지.
처음엔 나를 경계하며 짧은 대답만 겨우 하던 A가 이것 저것 질문을 하자 갑자기 폭풍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애들이 저를 싫어해서 학교 다니기가 너무 힘들어요. 어제는 신발을 갈아 신고 있는데 저 들으라고 욕을 하고 지나가더라고요. 늘 그런 식이었어요. 중학교 때부터. 그래도 중학교 때 남자 애들은 너무 심하게 절 괴롭혔는데, 여학교에 오니 그 정도는 아니어서 그나마 좀 참을만 해요."
" 얼마 전에 엄마랑 심하게 싸웠는데, 엄마가 저한테 막말을 해요. 엄마는 너무 엄마 하고 싶은대로 저한테 강요하는 거 같아요."
A와 두어 시간 남짓 이야기를 한 후, 아니 거의 일방적으로 A의 이야기를 들어주다피 하고 며칠 후, 퇴근을 하고 한참 지난 시간인데 상담 선생님께 전화가 왔다.
"선생님, A가 지금 좀 위급한 상황인 거 같아요. 엄마랑 싸우고 죽겠다고 하면서 옥상에 올라가 있는 것 같아요. 제가 일단 A를 좀 달래놓긴 했는데, 선생님도 전화 좀 해 보셔야 할 것 같아요."
전화를 끊고 A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또 이어진 폭풍 수다. 세 시간 가량을 저녁 밥도 못 먹은 채 A의 하소연을 들어주었다.
그때서야 A의 상황이 조금씩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A는 게임 중독자였고, A와 어머니의 갈등은 늘 거기서 출발했다.
A는 게임머들 사이에서 꽤 유명하다고 했다. 실력이 있다 보니 그곳에서는 누구나 A에게 친절하게 말을 붙이고, A를 칭송하며 부러워했다. 하지만 학교에서는 먼저 A에게 다가가는 이가 아무도 없었다. A는 학교에서는 무시당하다가 게임을 하기 시작하면 사람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고, 사람들이 자신을 알아 봐 주고, 그래서 게임을 끊을 수가 없다고 했다. 게임 세계에서 능력자던 A는 현실에선 관계를 만들어 가는데 너무 서툴렀다. 사람들에게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하는지 어떤 억양과 단어를 써서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를 건네야 하는지 알지 못했다. 가끔 나의 실없는 농담에 씨익 웃을 땐 그 나이때의 풋풋함과 순수함이 묻어났지만 본인이 웃을 수 있다는 것조차 모르고 지내는 것 같았다. A는 현실 속 자신의 삶에 적응을 못하고 있는 것이었다.
학급에서 조금 어른스럽게 다른 친구들을 잘 챙기던 아이를 불러, A가 학급 애들과 친해지고 싶은데, 말 걸기를 조심스러워 하니 아침마다 인사말을 건네주면 어떻겠냐고 제안했더니, 흔쾌히 내 부탁에 응해주었다. 등교하자마자 친구의 인사를 마주한 아이는 또 씨익. 그 웃음을 조금씩 더 자주 보여주었다.
가끔 SNS에서 '알 수도 있는 사람' 목록에 뜨는 학생들의 사진을 보면, 아는 이름인데 모르는 얼굴인 경우가 태반이다. 마치 이곳에서 보는 아이들은 내가 알고 있던 것과 또 다른 세계를 살아가는 이들처럼 느껴진다.
컴퓨터의 세계, 스마트 폰에서의 세계는 현실과 같지만 다르다. 현실에 존재하던 사람들이 그곳에도 고스란히 흔적을 남기지만, 나의 의도에 따라 통제와 조작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사랑스러운 가족, 호화로운 식사는 물론이고, 몇 번의 터치로 내 모습을 가장 마음에 드는 나로 만들어 낼 수 있다.
내가 재미있어 하거나 관심 있는 분야는 한번 검색을 시작하면 더 재미있고 더 흥미로운 정보들이 줄줄이 소시지처럼 엮여 나오며, 나는 SNS에서 가치관이나 정치적 성향이 비슷한 이들로 저절로 둘러싸여, 마치 이 세상은 내 생각처럼 돌아가고 있구나 싶을 때도 있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웃음 소리보다 짜증 섞인 고함이 집안을 가득 채울 때도 많고, 대충 반찬 그릇 채 꺼내 얼렁뚱땅 식사를 마치는 경우가 더 많다. 내 모습은, 예뻐지겠다는 강한 의지와 결심으로 운동을 하거나, 고통을 이겨내며 성형 수술을 거쳐야지만, 지금보다 조금 더 나아질 수 있을 것이다.
선거 결과를 보면, 세상엔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늘 절반 이상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내가 진짜의 삶을 살아내야 하는 곳은 이런 곳이다.
수많은 다양함과 변수가 존재하고, 그 안에서 나의 의지와 상관없는 사건들을 맞닥뜨리고, 그러면서 사람들 속의 나, 세상 속의 나에 대해 알아가는 것. 그것이 진짜의 삶이다. 그러나 컴퓨터나 스마트 폰은 늘 우리를 유혹한다. 여기 너희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세계가 있으니 어서 오라고. 이곳을 주된 삶의 공간으로 삼으라고.
이는 주로, 현실에서 어려움을 겪을 때 가상의 세계로 도피하며 시작된다. 스마트폰이 있기 전, 아이들은 현실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현실에서 풀어냈다. 시험을 망친 후 한강을 하염없이 걷다 오기도 하고, 자습을 하기 싫을 땐 몰래 버스를 타고 근처 대학교 앞에 가서 맛있는 것들을 먹고, 다시 태연히 자습실에 앉아 있기도 했다.
지금의 아이들이 스트레스를 받을 때 찾는 곳은 자기 방이다. 이불을 둘러쓰고 스마트폰 세계를 떠돌며, 자기가 원하는 것들만 보고, 듣고, 느낀다. 그래서 현실의 삶을 더 불안하게 느끼고, 예상치 못한 상황을 만나면 더 쉽게 좌절하고, 다시 스마트폰 세계로 하는 악순환이 펼쳐진다. 아이들은 현실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점점 배우지 못한 채 커 나간다.
학교에서만큼은 아이들이 '진짜'를 경험하게 해야 한다.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는 것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것도 있음을, 그 안에서 '나'로서 다른 이들과 함께 진짜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좌절의 순간은 내가 굴복해야 하는 때가 아니라, 새롭게 일어서는 기회임을.
아이들을 가르치는 나부터 명심하고 또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