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선생이란?

세 가지 부류의 교사들

by 송송

내 멋대로 교사를 세 가지로 나누어보겠다.


1. 원칙주의 교사

2. 자유방임주의 교사

3. 분노조절장애 교사


원칙주의자는 아이들이 모든 규율과 교칙을 철저하게 지킬 수 있도록 지도한다. 단 1초의 지각도 허용하지 않는다. 복장 관련 교칙을 줄줄이 꿰고 있으며, 학생을 마주하면 무슨 항목의 어떤 조항을 어겼는지 바로 견적이 나온다. 조퇴, 결석은 어지간해선 허용되지 않는다. 학급에서 아이들은 꼼꼼하게 역할이 배분되며 역할을 수행할 때에는 '항상성'을 유지해야 한다. 이러한 교사의 수업 시간에 졸거나 자거나 다른 짓을 하는 것은 결코 용납되지 않는다.


자유방임주의 교사는 느슨하다. 화도 잘 내지 않고, 웬만큼 사유가 있으면 지각이든 조퇴든, 결석이든 가능하다. 복장 교칙들은 유야무야. 학기 초에 학생별 역할은 분담하긴 하지만 그것 또한 유야무야. 수업 시간에 졸아도, 자도, 다른 짓을 해도. 공부하려는 친구에게 직접적인 피해만 주지 않으면 OK.


분노조절장애 교사는 원칙주의와 자유방임주의를 왔다 갔다 한다. 자기의 기분에 따라서. 기분 나쁜 일이 있으면, 원칙주의자보다 더한 원칙주의자가 되어 교실을 불호령으로 휘어 잡다가도, 기분이 좋으면 아이들을 자유롭게 내버려둔다. 한 때는 물리적 폭력도 행사하였지만, 지금은 그랬다간 신고당하기 십상이므로 딱 그 전까지만 화를 낸다. 마찬가지로 좋을 땐 한 없이 좋다.


위 교사 중 아이들에게 제일 인기가 있는 교사는 누구일까?

일단, 말 할 것도 없이 3번, 분노조절장애 교사는 누구에게도 환영 받지 못한다. 그러한 교사를 만나면 아이들은 오로지 힘 있는 자의 눈치를 보는 일에만 골몰한다. 선생님의 컨디션이 어떤지, 기분이 좋아 보이는지, 별로인지. 오늘 선생님을 화나게 할 다른 일들은 있었는지. 이런 선생님들을 만나면 아이들은 교육을 받는다기보다 길들여진다. 동료 교사가 보기에도 이런 분들은 '나쁜 교사'다.


얼핏 생각하면 자유방임주의 교사를 아이들이 제일 선호할 것 같다. 사실이다. 이런 교사들이 제일 인기가 많다. 그러면 이들이 제일 좋은 교사인 걸까?

교직에 처음 발을 들여놓았을 때, 창피한 이야기지만, 대단한 사명감을 가지고 교사를 시작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 다니던 회사가 망했고, 단기간에 안정적인 수입원이 필요해서 시작한 거라 정말 아무런 개념이 없었다. 그냥 막연히 나름 모범적이었던 나의 학창 시절을 떠올리며 원칙주의자의 길을 택했더랬다. 그러나 이런 개념 없는 컨셉은 딱 2개월만에 무너졌다. 그때 처음 알았다. 내가 원칙과는 거리감이 있는 인간임을.

원칙주의 교사가 되는 길은 험난하다. 일단 본인이 철두철미하게 원칙을 지켜야 한다. 본인의 출퇴근 시간에 철저해야 하고, 애들에게 무엇을 제출하라고 하면 어김없이 그 날짜에 회수해야 한다. 청소 구역을 나누어 아이들에게 맡겼으면, 매일 청소 시간에 학급에 들어가서 지도를 해야 하고, 아이들이 지각, 조퇴, 결석을 원할 때마다 학부모와 상담을 한다. 남들이 보기에 뭐 저렇게까지 하나 싶은 사람들이 바로 원칙주의자들 아닌가.

그런데 나는 일단 건망증도 심하고, 수업 간에 조는 애들이 있어도 졸린 눈 비비며 꾸역꾸역 지루한 수업 듣는 것보다 잠이라도 편히 자는 게 낫지 않을까 싶고, 일단 교칙은 도대체 아무리 봐도 머릿속에 남아 있지 않는다. 결정적으로 원칙주의자가 되려면 아이들 앞에서 강한 '포스'를 풍겨야 하는데, 난 그것이 결여되어 있다. 심지어 어느 수업 시간에 애들이 너무 떠들어서 "조용히 좀 해!"라고 나름 복식 호흡을 섞어가며 호통을 쳤건만, 아이들이 그 소리를 듣더니 "선생님, 노래하시는 것 같아요."라며 내 목소리를 흉내내고 있는 게 아닌가. 그 순간 원칙주의자 컨셉을 깔끔하게 포기했다.

그래서 교직 시작한 첫 해 아이들이 보낸 편지에 보면 하나같이 '선생님, 3월에 보던 모습하고 지금 모습하고 너무 달라요.', '선생님, 이런 분인 줄 몰랐어요.'라는 내용이 꼭 들어가 있다.

아이들도 내가 느슨하게 대하는 순간, 나를 더 좋아하는 것이 느껴져서 나는 잠시 '어, 이러니까 나도 더 편하고 애들도 좋아해주고 짱이네.' 라고 생각하며 자유방임주의 컨셉을 고수해나갔다.

그리고 몇 년 후,

그 해엔 유독 우리 학급에 마음이 아픈 아이들이 많았다. 너도 나도 우울증을 호소하며 힘들다고 하소연 하고, 학교도 잘 안나오려는 아이들 때문에 애를 먹었다. 같은 학년을 맡은 다른 학급 교사 중에서는 나와 동갑내기지만 성향이 완전 반대인, 단신인 나와 달리 어마어마한 장신인데다, 머리 끝부터 발끝까지 오로지 '원칙'을 중시하는 선생님이 있었다. 우리반 애들이 그 교사를 너무 무서워한 나머지, 그 선생님의 수업 시간엔 우리반 애들끼리 보건실 베드 쟁탈전이 벌어질 정도였다. 아이들이 그 선생님을 무서워하고, 나는 편하게 생각했으므로 아마도 그때의 나는 속으로 은근 '내가 더 인기 교사라고.' 하는 묘한 우월감을 느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원칙주의 선생님이 담임을 맡은 학급의 학생이 복도에서 나를 보더니 뛰어와서 이렇게 말을 건네고 가는 것이 아닌가.


"저 지금 저희 담임 선생님이 무서워서 이렇게 학교 잘 나오는데요, 만약에 선생님이 저희 담임 선생님이셨으면 저 우울증 땜에 학교 거의 못 나왔을 걸요?"


뒤통수를 얻어 맞는 느낌이었다.

당시 우리 학급은 출결이 엉망이어서 합창 대회를 준비하던 음악 선생님 혼 애가 타서 우리반 애들이 다 나오는 날 아이스크림을 사겠노라 공약을 걸 정도였다. 아이들이 들쑥날쑥 나오니 교실에 가도 어수선한 느낌이 들었고, 그나마 공부를 좀 해보려는 아이들마저도 분위기에 영향을 받고 있는 느낌이었다. 당연히 수업 태도도 안 좋았고, 그 해 기말 고사에서 어떤 과목은 1등 학급과 무려 평균 30점 차이로 꼴등을 차지할 정도였다. 아이들의 자율 의지로 존중하겠다고 학급 내 규율을 정하는 것까지도 아이들 손에 맡겼더니 시간이 지나자 학급은 엉망진창이 되었다.

반면, 원칙주의 선생님 학급에 들어가면 늘 학급이 정돈된 느낌이었다. 아이들은 학기 초부터 학년을 마무리 할 때까지 늘 안정된 모습이었다. 수업에 들어가는 교사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 그 학급 아이들을 칭찬했다. 처음엔 학급 구성이 될 때 차이가 있었다고만 믿었었는데, 그게 아니었던 거다.

누가 좋은 교사일까? 심각하게 헷갈리기 시작했다.


사실 아이들은 다 안다.

특히나 고등학생쯤 되면, 이미 아이들도 학교 경력이 10년차가 넘어가는 거다. 이 선생님은 깐깐하지만 나름의 원칙이 있고, 우리를 위해서 이러는 거구나, 힘드시겠지만 이런 것까지 꼼꼼하게 챙기시는구나. 이 선생님은 우리를 자유롭게 대하지만 우리를 존중해서가 아니라 자기 편하려고 그러는거구나 금세 안다. 하다못해 강아지들도 자기를 예뻐하는 사람과 아닌 사람을 안다는데 오죽하랴.

퇴직을 하시기 1,2년 남은 선생님이 계셨다. 목소리는 걸걸한데 원체 발음이 웅얼거리시는 스타일이었고, 게다 애들이 제일 싫어하는 고전문학을 담당하셔서 학기 초반에 아이들이 그 선생님에 대한 불만을 잔뜩 얘기하곤 했다. 같은 교과목을 담당한지라 나도 내심 걱정이 되었는데, 웬걸. 시간이 지날 수록 아이들이 그 선생님을 너무 좋아하는 거다. 선생님이 수업 시간에 알려주셨다며 그 나이에 알 리가 없을 것 같은 민요를 청소 시간에 흥얼거리기도 하고, 쉬는 시간에도 수시로 선생님을 찾아 와 재잘거리고, 선생님이 퇴근 하실 때는 차 뒤꽁무니를 쫓아 가며 "선생님, 안녕히 가세요~!"라며 큰소리로 인사를 하기도 했다. 어떤 아이는 "선생님, 저 이제 귀가 트인 거 같아요. 00선생님이 뭐라고 하시는지 이제 알아 듣겠어요."라며 좋아하기도 했다.

아이들은 선생님의 진심을 알아본다. 학교를 떠난 뒤에도 아이들 마음 속에 남는 건 수업 시간에 전달한 교과 지식이나 그 과목의 성적이 아니라 교사의 진심이다. 진심을 알게 되면 교사가 엄격하게 굴어도, 자기들 세대와 안 맞는 이야기를 해대도, 혹은 자유롭게 놓아주어도 교사를 믿고 의지한다. 반대의 경우에 아이들은 차갑게 벽을 쌓는다.

좋은 교사가 되고 싶다는 욕심을 버린 것도 그 때문이다. 그저 아이들이 좋아해주는 교사가 되고 싶다는 내 욕심만을 좇다 보면 아이들을 위한 것이 무엇일까 생각하는 진심을 놓쳐 버린다. 이젠, 아이들끼리 모여 구사하는 은어 중 절반 이상은 못 알아먹겠고, 그 비율도 점점 커질 테지만, 항상 마음을 다하는 교사가 되어야겠다. 오늘도 출근길에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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