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경험한 아이들에게
교사가 전하는 낯선 위로
참으로 피곤한 하루였다. 중학교 3학년 때 봄소풍을 다녀왔고, 엄마가 사 주신 검은색 점퍼가 멋져 보여 벗지 않고 있었던 탓에 점퍼가 봄 햇살을 등짝으로 그대로 흡수해 하루종일 무덥다고 느낀 날이었다. 소풍 때마다 되풀이 되는 장기자랑이 진력이 나서 땡볕에 앉아 있으면서 집에 갈 시간만을 기다렸다. 돌아오는 길, 버스에서도 앉아 있을 자리가 없어 내내 서 있다, 마침 자리를 발견하여 냅다 엉덩이부터 들이밀었고 간발의 차로 자리를 놓친 아주머니가 나를 원망섞인 눈빛으로 노려보았던 기억도 난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양말을 벗고 거실 바닥에 드러누웠고, 곧 학원에 갈 시간임을 떠올리며 잠에 들지 않으려고 노곤했던 신경을 곤두세우는 한편, 어떻게 하면 학원에 빠질 수 있까를 궁리하던 차였다.
따르르릉. 전화 벨이 울리고, 아빠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늘은 학원 가지 말고 집에 있어라."
기뻐할 새도 없이 연달아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라는 말이 들려왔다.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나. 몇 초 멍하게 있다 엉엉 소리를 내어 울고 있으니, 이미 눈물 콧물 범벅이 된 엄마가 집에 오셔서 나를 데리고 택시를 타셨다. 할머니는 며칠 전 시골에 있는 이모 할머니 댁에 가셔서 집은 텅 비어 있었다. 엄마는 나를 거기에 두고 나가셨고, 나는 할아버지 냄새가 가득한 집에 혼자 남았다. 친척 어른 누군가가 오셔서 저녁 밥을 챙겨주셨다.
"할아버지가 끓여 놓으셨던 건가보다."
그 날 먹었던 닭국의 느낌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할아버지란 말에 눈물이 터져 꾸역꾸역 밥을 밀어넣었다. 며칠 전 시험 성적이 올랐다고 전화를 드렸을 때 "아이고, 잘했다." 라고 기뻐하셨던 할아버지는, 다음날 간 장례식장에서 사진의 모습으로 남아 계셨다.
그 후 두어 달은 할아버지 생각만 하면 눈물이 너무 나서 어쩔 줄 몰랐던 것 같다. 할머니를 만나러 가면 할아버지 냄새가 남아 있어서 울었고, 자전거를 타고 가는 사람을 보면 버스비를 아끼신다고 180센티미터의 장신에 어린이용 자전거를 타고 가시던 모습이 떠올라 울었고, 상장을 받아도 더 이상 큰소리로 기뻐해주는 목소리가 없어서 울었다. 그때 처음으로 '죽음'이라는 것은 이렇게 어느 날, 급작스레 찾아 올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내가 경험한 첫 죽음은 이렇게 나의 사소한 느낌들과 함께 여전히 생생히 기억된다.
한참이 지나 연달아 죽음을 맞이했다. 내가 어릴 적 나 좋아한다고 한 시간씩을 기다려 닭을 튀겨오셨던 할머니가 돌아가셨고, 박식하고 점잖은 선비 같던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고, 돌아가시는 순간까지 자식들의 끼니 걱정을 하며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
나이가 들고, 누군가의 죽음을 여러 번 경험하였지만 여전히 그 순간은 버겁고 힘들다.
지금도 그날처럼 하루종일 피곤에 시달릴 때면 어디선가 내게 누군가의 죽음이 불쑥 찾아들 것만 같아 너무 불안해지곤 한다.
그 때의 할아버지는 나이가 꽤 드셨다는 느낌이었는데, 이제 내가 할아버지를 떠나보내실 때의 아빠 나이가, 아빠가 돌아가실 적 할아버지의 나이가 되었다.
'노환'이라며 전해지는 유명인들의 부고를 접할 때 부모님 연세와 차이가 점점 줄어들고, 지인들의 부친상과 모친상 소식이 종종 들려온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냉장고에 남은 어머니의 마지막 김치를 차마 다 못 먹겠더라는 어느 여배우의 이야기, 아버지에 이어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이제 나는 이런 고통을 다신 겪을 일이 없구나 싶어 한편으로 마음이 놓이더라는 어느 유튜버의 이야기가 마음에 꽉 들어와 박혀 있다.
찾아올 수밖에 없고 경험을 할 수밖에 없는 일이지만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무섭고 슬픈 일.
그런데 내가 살아온 날의 절반도 채 살아내지 않은 아이들 중에 그 아픔을 이미 겪은 아이들이 꽤 있다. 아버지가 출근길에 쓰러진 채 돌아가셔서 학교에서 그 소식을 듣고 충격을 받은 채 귀가해야했던 아이도 있었고, 어머니의 마지막 순간에 아버지가 심폐 소생술 중단을 요청하셔서, 그것이 어린 눈에는 마치 아빠가 엄마를 죽인 것처럼 느껴져 아버지와의 관계가 완전히 어긋나 버린 아이도 있고, 초등학교 때부터 어머니의 암투병 과정을 곁에서 죽 지켜보다 어머니를 떠나 보내야만 했던 아이도 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지 얼마 안되었는데, 하필 그 시기에 죽음을 소재로 한 문학 작품들이 연달아 나와 그 아이의 표정을 힐끗힐끗 살피며 조심스럽게 수업을 하는데, 죽음이란 단어가 내 입에서 나올 때마다 고개를 푹 수그리던 모습도 잊히지 않는다.
지금 내 나이에도 너무 큰 아픔이고 고통인 일을 빨리 겪어버린 아이들을 보면 어떤 위로의 말도 쉽게 나오지 않는다. 부모의 보살핌이 절실한 나이에 연세가 들어 오히려 보살핌이 필요하셨던 할아버지 할머니를 떠나보낸 경험을 이야기하며 공감을 표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힘내라는 상투적인 말은 더 위로가 안 될 것이다. 어설픈 위로가 더 큰 상처로 남을까봐 조심스럽다가도, 아무 말도 안 하는 것도 죄스러워 어쩔 줄 모를 때가 많다. 나는 아이들에게 어떤 위로가 될 수 있을지.
가끔 나에게 전화를 하는, 이미 대학교 졸업도 하고 어엿한 사회인이 된 아이가 있다.
"무슨 일 있니?"하고 물으면 "그냥 선생님 목소리 듣고 싶어서요."하고 싱겁게 전화를 끊곤 한다. 엄마가 그리운 때인가보구나. 잔소리를 듣는 것도, 하는 것도 너무너무 싫어하지만, 이 아이에겐 엄마의 목소리를 들려주고 싶어 전화가 올 때마다 내 성격에 맞지 않게 오지랖을 부려본다.
며칠 전 또 "선생님, 목소리 듣고 싶어서 전화했어요."라며 전화가 왔다.
"독감 주사 맞았니?" "으이구, 그러다 아프면 어떡하려고 해?" "오늘 빨리 남자 친구 손잡고 병원 가서 둘 다 맞고 와. 맞고 인증샷 보내라. 꼭." "밥은 잘 챙겨 먹니?" "대충 먹지 말고 사다 먹지 말고 좀 잘 챙겨먹어."다다다다 이어진 잔소리와 안어울리게 "네~!감사해요~"하며 여느 때보다 밝은 대답이 돌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