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김영란 법을 어겼습니다.
삶에 법이 개입했을 때의 함정들
김영란 법이 제정되고, 한동안 세상이 떠들썩했다. 학교에서도 이에 관해 수시로 연수를 했다. 당시 받은 팸플릿의 삽화엔 김영란법 학생이 교사에게 무려 '비타 500 한 병'을 건네는 장면이 있었고, 이를 본 교사들은 분개했다.
"우리를 거지 취급하는 거야? 이런 거 한 병 받고 특혜라도 주는 사람처럼."
김영란 법은 지키는 것도 위반임을 가려내는 것도 참 쉽다. 그냥 학생과 관계된 누구에게라도 아무 것도 안받으면 그만이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 단순한 법조차 몇 차례 위반했음을 고백한다.
N은 어머니와 아버지가 이혼을 하시고, 어머니가 해외로 가시게 되어 따로 떨어져 생활을 하고 있는 아이였다. 어느 날 나한테 N의 어머니가 자기가 아이를 못 챙겨서 아이의 이모가 오랫만에 아이에게 점심을 사 준다며 학교에 갈 거라며 잠깐 아이에게 외출을 허락해 달라고 연락을 해 오셨다. 이모와 점심을 먹고 온 N은 이모가 학급 친구들과 나누어 먹으라고 했다며 양손 가득 아이스크림을 가득 들고 학교에 돌아왔다. 다른 때 같으면 받을 수 없다고 돌려보내야 마땅하지만, 늘 주눅들어 있던 N이 신이 나서 들어오는데, 차마 거부할 수가 없었다. 교무실에 가서 N의 상황을 장황하게 설명하고 읍소하고 나서야, 허락이 아닌 허락을 겨우 받고N에게 친구들과 맛있게 나누어 먹으라고 했다. 그런데 N이 봉지에서 아이스크림을 대뜸 하나 꺼내 나에게 내미는 거다. "선생님도, 꼭 드세요."
"아하하하, 너무 고마운데 나는 이런 거 먹으면 안되어서. 먹은 걸로 칠게."
"아이, 선생님, 모르는 척 할게 받아가세요."
"아니야, 괜찮아."
학급 아이들에게 나누어 주는 것도 비공식적으로 허락을 받은 상태에서 나까지 아이스크림을 쪽쪽 빨고 있으면 안될 것 같아서 극구 거절을 했더니,
아이는 아이스크림을 잠시 바닥에 내려놓는 척 하다가 나에게 건넨다.
"선생님, 이거 제가 드리는 게 아니라 떨어져 있는 거 주운 거에요. 이젠 맘 놓고 드세요."
지금까지 내가 가장 크게 혼을 냈던 아이는 K이다. 학급에서 여러모로 제일 약자였던 S와의 관계에 문제가 있었고, K가 가해자 비슷한 꼴이 되어, 나도 화를 참지 못하고 K에게 격노를 표했었다. 나도 사실 '교육'의 차원에서보다 분노 조절에 실패했다고 보는 편이 맞았을 것이다. K는 그러나, 부족한 담임과는 달리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고 이후 너무나 학교 생활을 성실하고 착하게 잘 해나갔다. 학기가 끝날 무렵 K는 쿠키 한 봉지를 들고 교무실을 찾아 왔다.
"선생님, 이거 저희 동네에서 제일 맛있는 쿠키에요. 제가 일부러 선생님 드시라고 사 왔어요."
"아하하, 그래. 마음은 너무 고마운데 나 이런 거 받으면 안 돼.아하하."
"선생님, 김영란 법 때문에 이거 제가 용돈 모아서 산 거에요. 엄마 돈 아니에요. 제 돈으로 샀으니 괜찮아요."
나는 아이스크림도, 쿠키도 즐겨 먹지 않지만,
저 두 상황에선, 내가 준법자가 되기 위해 아이들의 마음에 상처를 내는 것보다, 내가 범법자가 되는 게 낫겠다 싶어 그냥 받아서 먹었다. 아주 맛있게.
김영란 법은 우리 사회의 큰 부패들을 없애주었다. 나또한 교사의 입장에서도, 학부모의 입장에서도 이 법의 긍정적인 부분을 많이 느끼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삶 구석구석이 이렇게 법으로 재단되는 순간, 함께 살아가는 맛을 잃어버릴 때가 있다.
김영란 법이 시행되며, 학교의 풍경도 꽤 많이 바뀌었다.
이제 더 이상 스승의 날 행사 같은 건 기념하지 않는다. 스승의 날에 선생님께 카드를 쓸래도, 그게 돈 주고 산 카드면 안 되고, 만든 카드면 된단다. 카네이션도 학생회에서 일괄적으로 구입하는 것은 괜찮지만, 개별로 교사에게 주는 것은 불가하다. 혹시나 학급 아이들이 케이크를 준비해 주어도 한입도 먹으면 안된다는 경고 문구를 접하면 마음 한쪽이 서늘해 온다.(정말 딱 한 입 먹었다가 신고당한 선생님도 계신다.) 애초에 학기가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데 스승의 은혜 어쩌고 하는 게 낯간지러워 반갑지도 않았지만, 이 즈음이 되면 청렴 어쩌고 하며 주의 사항만 잔뜩 전달 받으며 범죄자 취급 당하느니 차라리 기념일을 없애고 말라는 불만만 현장엔 가득하다.
교사와 학생 간의 관계는 물물 교환 식의 1:1의 이해관계가 성립하는 사이가 아니다. 학교에서, 교실에서는 아이들과 인간대 인간의 만남이 수시로 이루어진다. 상대방에 대한 내 마음을 표현하는 것은 인간 관계의 기본이다. 그러나 '나는 너에게 받은 혜택 만큼 너에게 되돌려주겠다'는 김영란 법에 숨겨진 전제는 가장 따뜻해야 할 학교의 공기마저 차갑게 식혀 버린다. 법은 '비타 500'에 깔린 온정까지 단죄하려 눈을 부라릴 것이 아니라 더 크고 깊게 곪아 있는 부분으로 칼날을 겨누고 그것들을 깔끔하게 제거해야 하는 데 힘을 쏟아야 할 것이다.
(이 글을 쓰며 나는 또 비타 500 한 병 못 얻어 먹어 환장한 교사처럼 비칠까봐 얼마나 조심스러운가. 정말 치사해서 못 해먹겠다! 오해를 방지하기 위해, 아니 그냥 나 혼자 지레 찔려서 굳이 밝혀두자면, 아이들이 '감사합니다'라는 다섯 글자만 보내와도 너무 뿌듯해서 메시지를 보고 또 볼 때가 있다. 다시 말하면, 법의 눈이 교사와 학생의 사이에 깊게 파고 든 지금은, 그런 기본적인 인사조차 당연하게 생략하는 아이들이 많아졌다는 뜻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