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로서 학부모 대하는 법
교사가 해야 되는 일 중 가장 어려운 것은 뭘까? 성향마다 다르겠지만, 내게는 학부모 면담이다. 뭐 딱히 서로 신세를 지고 있는 사이도 아닌데 괜히 그렇다. '아직 젊고 애도 안 키워 본 네가 뭘 알겠어.' 하는 시선이 노골적으로 느껴지는 신임 시절에는 말 할 것도 없고, 이젠 경력도 조금 더 쌓이고 애도 둘이나 키우고 있지만 새학기마다 있는 학부모 총회 때 학부모 앞에 서면 늘 덜덜 떨려 우스개 소리로 나는 학부모포비아가 있다고 이야기할 때도 있다. 고등학교에서는 그나마 학부모를 직접 대할 일이 많지는 않다. 그런데, 나의 불편한 마음을 감수하고서라도 꼭 만나야만 하는 학부모들도 있다.
듣기만 해도 어마무시한, 학교 폭력과 같은 일에 피해자나 가해자로 휘말린다거나, 친구 관계에 심각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거나, 학교 생활에 적응을 잘 못한다거나, 자살이나 자해의 정황이 포착됐다거나, 주로 교사나 학부모의 입장에서는 되도록 피해 가고 싶은 일이지만, 매년 꼭 두 어 번 이상은 마주한다.
교사가 된 지 얼마되지 않았을 때는 모든 것이 다 학부모 탓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그러시며 안 됩니다.' 류의 발언을 주로 했다. 사실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정말 그러지 말아야 할 언행들을 하는 학부모로부터 문제가 늘 시작된다. 하지만, 그 때는 미처 몰랐다. 아이들의 어머니나 아버지 또한, 누군가의 도움을 애처롭게 기다리고 있음을.
J 는 교무실의 단골 손님이었다. 쉬는 시간만 되면 교무실로 쪼르르 달려와, 머리가 아파요, 배가 아파요 하며 조퇴를 하고 싶다며 졸랐다. 특히 J는 수업 시간에 자신이 선생님께 지목을 당하는 것을 너무 두려워했다. 수업 시간에 공개적으로 말을 시키면 귀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리는 느낌이 나고 자기도 모르게 계속 눈물이 난다고 했다. 발표를 하는 수행 평가는 그냥 지레 포기하고 0점을 받고야 말 정도였다. 상황이 이쯤되니, 학부모포비아를 앓고 있던 나도 별 수 있나, 아이의 어머니께 전화를 드렸다.
J의 어머니는 딱 보기에도 다른 어머니들에 비해 연세가 꽤 있어 보였다. 실제 J어머니의 연배도 내 어머니와 별 차이가 나지 않았다. J의 어머니는 조심스레 이야기를 꺼내셨다. 차마 글로 옮기기에는 민감한 내용들이기에 구구절절 쓰고 싶진 않지만 어머니는 J의 성장 환경과 어머니의 양육 과정을 말씀하신 후,
"다 제 잘못입니다. 제가 부족해서 우리 딸 아이의 인생을 망쳐놓은 것 같아서 너무 미안해요." 라며, 눈물을 쏟아내셨다.
교사들끼리는 흔히 '문제 학생의 뒤에는 반드시 문제 학부모가 있다.'라는 말을 종종 하는데, 그 문제가 해결해야 되는 'trouble'이 아니라, 치료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아픔임을 그 즈음 비로소 깨달았다.
어머니와의 갈등에 힘들어 하며 자해와 자살을 시도하곤 했던 T의 어머니와 만났을 때에도,
"어머니, 너무 힘드시죠?"라고 말을 꺼냈더니, T를 키우며 놓쳤던 부분들에 대해 말씀을 자연스럽게 이어가셨다. 자신도 T를 키우며 삶에 지쳐 소홀히 했던 부분이 너무 많았다고, T가 그 상처들을 지금까지 다 누르며 살아오고 있는 줄 몰랐다며, 당신이 부족했던 만큼 노력해 보겠다며 T가 수업이 끝나기를 기다려 손을 잡고 같이 집으로 가셨다.
J와 T 모두, 어머니들의 노력 끝에 훨씬 안정된 모습으로 학교를 졸업했다. 사람도 키우는 것은 정답이 없기에 누구라도 불안하고 힘들기 마련이다. 아이들에게 문제가 생기는 것에는 부모의 책임이 크지만, 부모가 그렇게까지 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들여다 보면 그것은 함께 살아가는 사회의 책임이 된다.
학교도 아픔을 겪는 아이들까지 같이 아우를 수 있을 때, 비로소 아이들을 보호하고 길러내는 울타리로서 더 잘 기능할 수 있지 않을까.
(다들 이렇게 진지한 얼굴로만 교사를 대하는 것은 아니다.
"남편이 출장 갔다가 나 입으라고 사 왔는데, 아니 이 사람이 내 사이즈도 모르고 이렇게 작은 걸 사왔잖아요. 내가 딱 보는 순간 선생님이 입으시면 맞겠다 싶어 가져 왔어요. "라며 티셔츠를 건네시던 Y의 어머니라든가,
"우리 딸이 이렇게 열심히 무용 연습을 하고 있어요. 즐감~^^"이라며 문자를 보내시던 K의 아버지라든가, 이런 유쾌한 분들 덕에 학부모 포비아가 조금씩은 나아지고 있는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