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 장사

by 송송

수박 농사를 지어 본 사람들은 수박 값이 비싼 것에 금방 수긍할 수 있을 것이다.

나도 올 여름 작은 텃밭에 수박 모종을 심었다. 거름기 많은 질 좋은 토양에, 해까지 하루종일 잘 드니, 이제수박이 잘 클 일만 남은 줄 알았다. 일주일 간격으로 텃밭을 찾을 때마다 금세 수박 덩굴이 자라나 있고, 야구공만한 수박이 열리니 처음한 농사치고 성공적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 다음부터 수박이 도무지 크지를 않는 거다. 인터넷 사이트며 유튜브며 검색을 해보니, 나같이 해 서는 마트에서 봄직한 커다란 수박을 절대 만들어낼 수 없었다.


일단 모종을 심기 전 덩굴이 뻗어 나갈 충분한 공간을 만들어 줘야 한다는데, 그것도 모르고 앞뒤 촘촘하게 옥수수를 심어 놓고, 어미 줄기와 아들 줄기와 손자 줄기를 구분하여 잘 자라게 아들 줄기를 몇 개 남겨두고 순지르기라는 것을 해야 된다는데, 덩굴이 쑥쑥 자라나는 모습에 감탄이나 할 줄 알았던 내 눈에는 줄기와 잎만 구분이될 뿐, 뭐가 어미고 아들이고 손자인지 도무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줄기가 자라나는 방향을 유도해야 된다고 하는데, 말귀도 못알아 듣는 수박 덩굴에게 이리 가라, 저리 가라 지시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러다 장마가 왔고, 야구공 크기의 수박은, 축구공만큼 채 크지도 못한 채 그대로 밭에서 썩어버렸다.

아이를 가르치고, 길러내는 것이 이런 초보 농사꾼의 마음과 같지 않을까.



국어 수업은 하면 할수록 미궁에 빠질 때가 많다. 나는 이 시에 공감이 전혀 안되는데 이걸 애들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내가 설명을 하는 것은 맞는 건가? 그냥 아이들이 잘 감상하면 되는 거 아닌가? 그러면 수능은?


뫼비우스의 띠 안에 갖힌 것처럼 내면 속에서 같은 질문을 맴돌다 그저 그런 수업을 하고 마는 경우가 많다. 그것뿐이겠는가. 교육의 범위가 교과목에 한정되지 않고, 인성 지도, 생활 지도까지 나아가면, 국어 교사 티를 내며 표현하자면 교육 과정은 오리무중이요, 나는 암중모색을 할 수밖에 없다.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똑같은 마음이 들었다. 늘 나는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돌이켜 보면 오류와 실수 투성이다. 아이의 시간은 가고 있는데, 뭐라도 해야될 것 같은데 뭘 해야될지 모르겠고 하고 있는 것도 잘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교육과 육아에서의 정답은 결과가 나온 후에야만 알 수 있다. 그때 나의 교육 방식이, 육아 방식이 아이에게 좋았던 거였는지, 아닌지, 그때 어떻게 했어야 했는지.


'신타[神打] 기른 아버지의 11년 지옥훈련'

'피겨 요정 김연아를 키운 어머니의 몰입 교육법'


한동안 화제가 된 박세리의 아버지, 김연아의 어머니의 양육 방식은, '세계 챔피언'이라는 결과물이 없었더라면, 지금처럼 높이 평가받을 수 있었을까.


교육과 육아가 어려운 것이 바로 이 지점이다. 정답은 나중에야 알 수 있지만, 뒤늦게 답을 알아도 아이에게 지나간 시간은 다시 오지 않는다. 만회할 기회가 없는 셈이다. 그래서 아이들에겐 한번뿐인 성장의 시간에서 그들을 키워내고 가르치는 것은 불안한 마음이 늘 뒤따른다.


며칠 전 같은 국어과 선생님이 대치동 1타 강사의 이름을 알려줬다. 강의를 오픈하면 몇 분만에 마감이 되고, 몇 백 억대의 자산가라며. 궁금해서 강사의 이름을 검색해서 강의 영상을 찾아보았다.

아, 한 마디 한 마디가 너무 명쾌하다. 저러니까 돈을 버는 거구나.

답을 찾기 어려운 곳에서 이것이 답이라고 딱 꼬집어 알려주니 얼마나 마음이 편해지겠는가. 수업 시간에 교사가 하는 비속어는 신고의 대상이지만, 강사가 내뱉는 욕설은 그들의 말에 권위를 실어준다는 것도 알았다. 너무나 단정적인 설명에 다른 의견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 그들은 모두 쌍욕의 대상일 뿐.

아이가 어렸을 때 종종 눈에 띄던 블로거가 떠올랐다. '책 육아', '군대 육아' 어쩌고 하며 화제가 되었던 것 같다. 나 역시 혹하는 마음에 열심히 눈팅을 했던 적도 있다. 아이를 한 명 키우고 있고, 그 아이도 커가는 중이고, 도무지 정답을 말할 입장도 상황도 아닌 것 같은데 정답을 너무 자신있게 외치며, 정답임을 의심하는 이들에겐 '속시원하게' 욕을 퍼붓는다. 여전히 '~아빠', '~맘' 하며 아이 이름을 가져다 붙이고 자기만의 육아 방법을 공개한 블로그와 책들은 인기가 있다. 애초에 정답을 정할 수 없는 문제에 정답을 부여하고 불안한 사람들을 기대게 한다.


아이가 커가는 데는 수많은 변수들이 작용한다. 아이들이 성장하고 난 모습은 무수히 많은 요인들이 저마다의 조합으로 만들어진 결과이다. 그래서 아무도 결과가 나타나지 전까진 확신할 수 없다. 좋은 토양과 따가운 햇빛이 있었지만, 수박이 크기도 전에 썩어버린 것처럼, 김연아의 어머니가 퀸 연아를 만들어낸 필요충분조건도 아닐 것이다.


교사든, 부모든 시간이 지날 수록 그래서 그 역할이 더 무거워진다.

그리고 어디선가 교묘하게 그 불안함들을 이용하여 장사를 하고, 하는 수 없이 이용당하는 걸 알면서도 상술에 기꺼이 넘어가버린다. '교육', '육아'라 이름붙여진 것들이 사실은 비교육적이고, 아이들의 성장을 방해하는 경우도 태반이다.


정답이 없는 문제를 앞에 두면 누구나 불안하다.

그러나 그 누구도 나를 대신해 답을 찾아 줄 수는 없다. 내가 택한 길이 답이 아닐 가능성은 높지만, 정답을 찾아낼 수 있는 것도 나뿐이다. 그리고 그게 답인지, 아닌지는 꽤 오랜 후에 알게 되니 조급할 필요도 없다.내가 찾아낸 답이라면, 그것이 정답이 아닐지라도, 최소한 새로운 답을 찾아낼 수 있는 힘은 길러졌을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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