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는 계획에서 나온다.

올해의 가장 큰 실패

by 송송

교사 경력이 몇 년 쌓이다 보니 면담을 할 때 말발도 늘었다.

"너, 공부를 하겠다는 욕심은 있는데, 막상 하려고 하면 해야 될 게 많아 집중도 안되고, 열심히 해보겠다고 계획 세웠는데 잘 안 지켜지니까 포기하게 되고, 그래서 스트레스 받아서 더 안 하게 되고 그렇지?"


"어머, 딱 맞아요. 선생님 절 어떻게 그렇게 잘 아세요?"


오늘의 운세에 나오는 두루뭉술한 말이 누구에게나 들어맞는 것처럼, 마음은 있는데 하지 못하고, 계획은 세웠는데 지키지 못하는 일은 사실 누구에게나 공통적인 고민일 것이다. 2020년도 어느덧 두달 여 남았다. 모두가 그렇겠지만 학교 또한 2020년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붕 뜬 상태로 시간을 흘려보냈다. 그 사이 너무 많은 일이 있어 2020년의 결심을 다지던 연초가 너무 아련한 옛날 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계획을 세우고 지키지 못한 일 중에는, 코로나가 원인이 되었던 일도, 코로나가 핑계가 된 일도 있다. 연초가 다 지나서 중반을 치달아갈 때쯤 툭 튀어나온 계획은, 변화하는 시대에 맞는 교사가 되어야겠다였다. 네이버는 한국 검색창, 구글은 미국 검색창인 줄로만 알아오다 플랫폼이 제공하는 여러 가지 기능들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대로 있었다가 나는 몸보다 정신의 노화가 더 빨리왔겠구나 싶어서 밤새 노트북 앞에서 눈이 시뻘게진 채 뒤적이며, 왜 이걸 이제 알았을까. 이젠 안 그래야겠다. 결심과 다짐을 수도 없이 했다.

그리고 두 달 뒤, 처참히 무너졌다.


아이들이 학교에 오지 않던 시절에는 ' 당장 내가 기술을 익혀 아이들이 등교하면 휘황찬란한 기술을 선보이며 21세기를 선도하는 미래형 교사가 되고 말테다.'하며 꿈을 꾸었는데, 막상 아이들이 학교에 나타나니 그게 아닌 거다.


마스크로 얼굴의 반 이상을 가리고 있는 아이들과의 소통은 너무나 힘이 들었다. 마스크를 쓴 아이들은 수업 시간에 새하얀 교실 벽과 같았다. 무슨 이야기를 해도 무표정했고, 그 어떤 반응도 없었다. 이 지점에서는 웃어야만 할 것 같은 이야기에서도 무반응이었고, 보통 한여름 아이들이 지쳐있을 때 써먹는, 숙면을 취하던 아이도 깨어나서 듣게 만드는, 반응률 100% '출산 스토리'를 꺼냈는데도 아이들은 마스크 위로 눈만 껌뻑거렸다.

마스크로 얼굴의 표정이 가려진다는 것은 소통에 큰 걸림돌이 된다. 마스크로 덮인 이면에 아이들이 어떤 얼굴을 하며 다니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학생 수가 많이 줄어 한 학급에 20명이 넘을까 말까하는데도 수업에 들어가면 낯익어 보이는 얼굴이 없다. 미래형 교사고 나발이고 나는 현재형으로서의 교사도 아니었다.

보기 좋은 기술을 익혀 아무리 생난리를 쳐봐야, 소통이 없는 교실에서는 나의 말이 마스크를 뚫고 아이들의 마음에 전달되지가 않았던 것이다.


나는 해야될 일을 하지 않았고, 하고 싶은 일만을 따랐다. 가장 기본을 무시하고 화려함만을 꿈꿨다. 그 어느때보다 불안감과 걱정에 휩싸인 아이들에게 따뜻한 손길보다, 어떻게 하면 이 메시지를 더 보기 좋게 전달해 볼까 하는 기술에만 골몰했다. 아이들은 대학 관련 성적이 마무리 되는 1학기 기말 고사를 마치자마자 하나 둘씩 학교에 나타나지 않았다. 올해 나에겐 텅 빈 교실이 남았다.


계획을 세우고 실천하는 일, 누구나 해보지만 아무나 못해내는 일이다.


수많은 성공담의 뒤편에는, 하루하루 자신이 해야 될 일에 충실했던 이들의 삶이 다져져 있지, 그저 1년 계획, 5년 계획을 실천했대서 성취를 일군 것은 아니다. 계획한 바를 이루어내려면, 계획조차 필요없는, 그러나 마땅히 해야 될 일들을 돌아보고 그것에 집중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계획을 세우기 전에 네가 해오던 일, 해야하는 일을 얼마나 잘 해오고 있는지 살펴보렴. 잘 안되는 부분이 있다면 그것부터 보충해 나가는 게 진짜 실천이 가능한 계획을 세우는 방법이란다."


2021년 내가 만나게 될 아이들 모두에게, 그리고 나에게 해야 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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