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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송 Nov 02. 2020

관계 맺기

 파도가 밀려올 때마다 쓸려내려갔다 다시 모이기를 반복하는 모래알들. 

학교에서의 인간 관계는 해변가의 모래와 비슷하다. 1년을 함께 지낸 아이들이 흩어져서 새학년에는, 새로운 조합으로 다시 모인다. 같은 반이었던 아이들 몇몇 외에도, 얼굴도 한 번 모르는 친구를 새롭게 알기도 하고, 알고 지냈던 친구를 오랜만에 만나기도 한다. 

  친했던 친구들이 멀어지기도 하고, 내 마음을 아는 이들을 사귀기도 한다. 

조금 더 길게 보면, 살아가는 과정에서 이러한 관계 맺기는 계속해서 반복되는 것 같다. 모래알들이 파도에 속절없이 움직이는 것처럼, 관계도 그렇다. 내 의지보다는 나의 상황이 좌우하는 경우가 많다. 사람들이 모이고, 모였다가도 헤어진다. 학창 시절, 회사를 다니던 시절, 교사인 지금, 미혼인 시절, 결혼한 후, 출산 후 등등 내 인생에서 내 삶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치는 사건들은 곧 파도가 되어 나의 주변 사람들을 결정 짓는다. 

 한동안 일주일에 수십 명의 사람을 만났던 적도 있고, 지금처럼 가족이나 직장에서 보는 사람들 외엔 딱히 연락조차 하지 않을 때도 있다. 마음의 끈을 늦추고 자연스레 인생이 물결에 몸을 맡긴 채, 주변인들을 맞이했다 떠내보낼 줄을 알면, 인간 관계도 한결 가뿐해진다. 


 이제 더 이상 아이들에게는 '우리반'이라는 개념을 찾기가 점점 더 힘들어졌다. 아이들은 자신들을 둘러싼 관계의 끈을 느슨하게 엮었다가 조였다가를 반복하는 방법을 알지도 못하고 언젠가부터는 굳이 필요도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30명의 아이들이 20평이 조금 넘는 공간에서 생활하는 교실은 그 어느 공간보다 밀집도가 높은 곳이다. 그러나 공간을 빼곡하게 채워가며 1년을 지내는 동안 서로 말 한 마디 안 하고 지낸 아이들이 많다. 이제는 누군가 학교에 오지 않아도 "선생님, 00이 오늘 왜 학교에 안 나왔어요?"라는 관심어린 질문을 듣기가 힘들다. 대신, 한번 또래 관계가 만들어지면 결속력은 꽤 강해서, 다른 친구들을 선뜻 집단 안으로 받아들이는 것도, 다른 집단에 다가서는 것도 잘 하지 못한다. 어쩌다 자신이 속할 무리를 찾지 못하거나, 무리에서 벗어나버리면 아이의 학교 생활은 불행해진다. 물결에 따라 이리저리 흩어지고 모이는 관계 속에서 누군가 모래 한줌을 꼭 움켜쥐길 기다리며 손바닥안에 있으면 안정감을 느끼지만,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버리면 극도로 불안해 한다. 부모도, 교사도 도와주고 싶지만 "다른 사람에게 너무 신경쓰지마.", "지나고 보면 별 거 아니야." 따위의 자기 계발서에서 흘려보내던 피상적인 이야기들만 되풀이해 줄 뿐이다. 


 올해는 졸업생들이 유난히 많이 찾아 온다. 대학교에 들어가면서 고등학생 때 그토록 갈망했던 자유를 쟁취했지만, 그 자유로움에 적응하지 못한다. 더 이상 자기를 신경 써주는 선생님도, 함께 다니던 친구들도 사라져서 외롭다며 투정을 부리다 간다. 감염병이 기승을 부리던 올 해, 아이들은 더 혼자여야 했고, 파도조차 치지 않는 해변에서 어디에 있어야 할지, 어디로 가야 할지를 모르고 제자리에서 반짝거리다 마는 모래알들이 되었다. 


  관계는 삶의 핵심이다. 삶에서 자신의 관계를 다루는 법을 모르는 아이들이 늘어나고 있지만,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라는 명제가 변하지 않는 이상, 관계는 여전히 그들의 삶에서 중요하다. 다른 이들과의 관계 속에서 내가 존재한다. 흩어졌다, 모이며 다양한 층위의 관계들을 맺고 그 안에서 나는 사회적 자아로서의 인식을 만들어 간다. 코로나로 관습처럼 존재하던 영역의 가치들이 재정의되고 있는 시점에, 학교도 지식 전달 기관으로서의 가치는 빠르게 잃어버렸다. 학교의 본질적 가치는 '관계 맺음'에 있지 않을까. 아이들끼리 조금 더 만날 수 있도록, 조금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공간과 기회를 만들어주어야 한다. 고립된 방에서 나를 찾지 않고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나를 발견하고 타인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학교와 교사는 아이들에게 조금 더 적극적인 '파도'가 되어 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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