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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송 Nov 03. 2020

어제보다 오늘, 넌 더 괜찮아지고 있어.  

지금 가장 필요한 말

 올해 우리반 아이들은 인터넷으로 먼저 만났다. 줌(Zoom)으로 며칠 째 조회를 이어가던 어느 날, 상담 선생님이 날 찾아왔다.

 "선생님, 선생님 반에 00이라고 있죠?"

 "이름은 있는 것 같은데, 애들을 온라인에서만 보니까 이름과 얼굴이 매치가 안 되네요."

  "선생님이 걔한테 실수하신 거 같아요."


 요는 이랬다.

아마도 아침 일찍 조회 시간에 맞춰서 겨우 눈을 떴을 아이들은 줌의 영상과 소리를 모두 꺼놓고 있었던 탓에 내가 혼잣말을 하는지, 대화 중인지 헷갈릴 때 00이는 고맙게도 얼굴을 비추고 있었고, 내 딴에는 침묵만이 가득한 온라인의 공간에서 애들 좀 웃겨보겠다고  00에게 장난처럼 몇 마디 건넸었다.

 "00이, 지금 일어났나보네?"라고 첫날 얘기했던 것 같고,

 둘째날도 "00이, 오늘도 지금 일어났나보네?"라고 말을 걸었더랬다.


 문제는 00이가 심각한 우울증을 앓고 있는 중이었다는 것. 나름대로 담임 선생님께 처음으로 보이는 모습이니 옷도 단정히 챙겨 입고 모니터 앞에 앉아 있는데, 담임이 자기 마음을 몰라주고, 둘째 날에는 심지어 더 일찍 일어나 화장까지 했다는데, 담임의 반응이 그러니 애가 충격과 자괴감에 휩싸였다는 얘기다.  

 서둘러 00이의 전화 번호를 찾아 전화를 했고, 00이에게 사과를 한 후 두 어 시간 긴 이야기를 나누었다.  00이의 상태는 생각보다 심각하게 느껴졌다. 실제 등교를 시작한 후에도 몇 번이나 위험한 상황들이 있었고, 내심 00이가 무사히 졸업을 할 수 있을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어제 00이가 나를 찾아왔다. 00이는 지금 대학 입시를 준비하고 있다. 신체화된 증상들이 나아지지 않은 상태에서 입시를 준비하려니, 스트레스와 불안감이 커져 잠도 잘 못 자고,  그래서 약을 먹으면 약기운 때문에 학교에 있는 내내 힘들어한다. 이러다 대학에 다 떨어지면 어떡하냐고, 자기 인생은 답이 없는 것 같다며 흐느끼는 00이와 마주앉아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래, 지금의 상황은 너무 당연한 거야. 너만큼 몸과 마음이 아프지 않은 친구들도 너무 걱정되고 불안해서 힘든데, 넌 아픈 몸과 마음으로 이 상황을 견뎌내려고 하니 오죽하겠니. 하루하루를 생각하면 답이 없고 힘들어 보이지. 근데, 너 3월달 너의 모습과 지금의 모습을 비교해 봐. 내가 너랑 처음 통화할 때 어디, 우리가 대학 입시 꿈이나 꿨었니? 나도 속으론 졸업이나 하면 다행이다 싶었어. 그런데 지금 보란듯, 남들처럼 입시를 준비하고 있잖아. 너도 못 느끼고 있는 사이에, 매일 힘들다고 지내왔던 사이에, 너도 모르게 조금씩 나아지고 있었던 거야. 입시를 앞둔 고3 시기에도 그렇게 괜찮아지고 있었다는 건 엄청난거야. 한 발짝 물러나서 네 인생을 길게 보면, 괜찮아지고 있는 게 분명해. 너무 잘 하고 있어."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며 내 얘기를 듣던 00이는 눈물을 닦고 교실로 돌아갔다.


그리고 몇 시간 뒤, 그저 밝고 당당한 웃음으로만 떠오르는 한 연예인의 사망 소식이 들려왔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그 어떤 모습에서도 전혀 '죽음'이란 단어를 연상조차 할 수 없는 이미지였기에,  너무 괜찮게 살아오고 있었던 사람이었던 것 같기에, 죽음 뒤 남는 씁쓸함이 크다.  

 

우리는 지금 별로 괜찮지 않은 세상에 살고 있다. 이름조차 생소했던 바이러스가 몇 개월만에 전세계를 뒤덮어 버렸고, 여기저기서 고단하게 살고 있는 이들이 벼랑 끝에 내몰리고, 종내 벼랑에서 떨어져버렸단 이야기가 계속된다. 부자들이 살아가는 동안 가난한 이들은 살아남아야 하는 세상은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아 보인다.

  그러나 괜찮아지고 있다. 시간이 지나고 보면, 멀리서 길게 놓고 보면 누구나 괜찮아지고 있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믿어야 한다. 서로에게 그렇게 이야기해주어야 한다. 괜찮아. 넌 괜찮아지고 있어.

 

 어제 내가 00이에게 했던 이야기는 어쩌면 내가 요즘 가장 듣고 싶었던 이야기였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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