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의 역할

나는 아이들의 인생에 어떤 존재일까?

by 송송

2017년 3월,

L을 처음 만났다. 쌀쌀한 기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L은 여느 여고생과는 확연히 다른, '빡빡이'상태로 학교에 나타났다. 우리반에서 수업을 하는 선생님마다 내게 물어왔다.

"걘 머리가 왜 그래요?"

사실은, 솔직한 심정으로는, 나도 궁금하긴 했지만 묻지 않았다. 아직 낯이 채 익지도 않았는데 대뜸 외모에 대해 질문을 하면 아이가 바로 벽을 쌓을 것만 같다는 느낌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의식적으로 질문을 피하는 느낌을 주면 더 어색해질까봐 겨우 질문 하나를 생각해 냈던 것 같다.

"그런 스타일로 머리를 자르고 싶으면 미용실 가서 뭐라고 얘기해야 되니?"


새학기를 맞으며 담임 교사들은 아이들에게 '면담 카드'를 받는다. 개인 정보가 너무나 중요해진 시대라 아이들의 주변 환경에 대한 어떤 정보도 파악할 수가 없으나, 적어도 지금의 교육 현실에서는 아이들의 배경을 모른 채 아이들을 지도한다는 것도 문제점이 많기에 교사로서 아이들의 상황을 이해하기 위한 최소한의 정보를 받는 것이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담임 교사에게 잘보이고 싶은 마음이 크기 때문에 A4 크기의 빈 공간마다 새학기의 의욕을 잔뜩 적어 놓는다.

그러나 L의 면담 카드에는 단 한 줄이 적혀 있었다.

'자퇴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L의 자퇴에 대한 고민은 주기적으로 찾아왔다. L의 어머니에게 전화를 해 보니 L의 어머니는 딸이 고등학교를 무사히 졸업하기만을 간절히 바라고 있었지만, 동시에, L의 고집을 자신이 꺾을 수 없으리란 사실도 인정하고 있었다.

이런 때가 교사로서는 제일 난감한 순간이다. 차라리 학부모가 '자퇴는 절대불가' 방침을 확고히 전달한다면 한 편을 먹고 아이를 어떻게든 구슬려 보겠는데, 이런 상황에서는 내가 어떤 태도를 취해야 아이에게 도움이 되는 건지 너무 혼란스러웠다.

더군다나 L은 학교라는 구조의 불합리함을 정확히 파악하고 그것을 자퇴의 이유로 지목하고 있었고, 자퇴 이후 무엇을 해야 할지에 대한 대안도 있었다. 내가 자퇴를 반대한대도 명분은 어떤 가치가 있는지 나도모르는 '졸업장' 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 순간 L의 자퇴를 말리고 싶었던 이유는, L의 건강 때문이었다. 우울증과 불면증에 시달리며 밥도 잘 먹지 않는 L에게 어떻게든 학교에서 제대로 된 한 끼를 먹여야겠다는 생각이 앞섰다.


"자퇴하고 싶어요."

"일단 한 달만 더 생각해 보자."


"자퇴하고 싶어요."

"다음주쯤 다시 얘기해 보자. "


"자퇴하고 싶어요."

"2학년이 거의 다 끝났는데, 지금 하긴 아깝잖니. 곧 방학인데 조금만 참아보자."


이렇게 꾸역구역 1년이 지나고 나도 L도 고3으로 올라갔다. L은 또 우리반이 되었다.


3학년이 된 L은 자퇴 얘길 꺼낼 새도 없게, 학교를 거의 나오지 않았다.


수면 리듬이 깨져, 학교 일과가 끝날 때쯤 잠에서 깨고, 학교 일과를 시작할 때쯤 잠이 드는 것 같았다.


출결 시스템상 어떻게든 학교에 와서 얼굴이라도 들이밀면 졸업은 할 수 있기에, 가능하면 조금만 더 '일찍' 일어나 종례 전에 학교에 다녀가 달라고 이야기했다.

"고3은 사실 1년도 아니야. 수능 전까지만 버티면 되잖아."


그렇게 또 고3의 시간들이 지나갔다.

L은 그래도 용케 수능도 봤고,

수업 한 번 제대로 들은 적도, 모의 고사를 치른 적도 없는 것 치곤 괜찮은 점수를 받았다.


"원서는 내보고 싶어요."

진학 상담을 거부할 줄 알았던 L은 진학을 원했고, 성적표를 앞에 두고 함께 고민을 시작했다.

그러던 중 '장례지도학과'가 눈에 들어왔다.

90을 넘기신 양가의 할아버지 할머니가 연달아 돌아가신 탓에 의도치 않게 매년 장례를 치르며, 슬픈 순간에 장례 지도사의 존재가 심리적으로 얼마나 의지가 되고 위안이 됐는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마침, L도 진학 상담을 하기 며칠 전 할아버지를 여읜 터였다.


"좋아요."


아직은 사회적 편견에서 자유롭지 않은 직종이기에, 큰 기대없이 권해보았는데 의외로 너무 순순하게 대답을 했다. 그렇게 L은 대학생이 되었다.


L을 알던 선생님들은 그렇지 않아도 어두운 느낌의 L이 '죽음'과 관련된 일을 하면 더 힘들지 않겠냐며 걱정을 하시기도 했다.


L은 내 마음을 알기라도 하듯 학기가 시작되고, 마무리가 될 때면 어김없이 연락을 해 학교를 잘 다니고 있다고 소식을 알려왔다.


그리고 얼마 전 만난 L은 엄연한 직장인의 모습이었다. 실습 나갔던 곳에서 인정을 받아 학교를 졸업하기도 전 취업을 했다고. 큰 대학 병원의 장례식장에서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일도, 그곳의 사람들도 너무 좋다며 환하게 환하게 웃으며 '이게 다 선생님 덕이에요.'라고 고마움을 표하는 L앞에서 손사래를 쳤다.


교직에 처음 들어섰을 때, 나는 어느 다큐멘터리나, 소설이나, 유명인들의 경험담 속에 등장하는 선생님이 되고 싶었다. 어려움을 겪는 학생에게 손을 내밀고, 그 학생이 교사 덕에 위기를 넘기고, 혹은 정신을 차리고 훌륭하게 성장했다는 미담 속의 주인공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그 미담 속의 주인공은 교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관심을 쏟아 부어도, 아이들 내면에서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면 교사의 노력은 허공 속의 메아리가 될 뿐이다. 그 메아리를 가슴에 담고 싹을 틔워 열매를 맺어내는 것은, 아이들의 몫이다. 교사들은 그저, 아이들의 모습을 믿고 지켜 보며, 단단하게 흙을 다져주며 큰 태풍이 와도 아이들이 버텨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역할의 최대치인 것만 같다.


2017년 5월,

몇 개월이 흘러서야 중학교 때 L을 알았던 선생님이, L은 중학교 때 머리를 엉덩이까지 길렀다는 것, 누군가 긴 머리에 대한 지적을 하자 반항심에 바로 머리를 '자른' 정도가 아니라 '밀어'버린 거라고 귀띔해 주었다. L에게 믿음이 갔던 건 그때부터다.


나에게 믿음을 주는 존재가 되어 주어서, 참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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