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생각하는 아이들

아이들에게 '죽음'은 생각보다 가까이 있다.

by 송송


'자살률 1위' 는 더 이상 신문 기사만의 이야기거리가 아니다. 학교에서 매년 새로운 아이들을 만나며 아이들이 얼마나 '죽음'의 충동을 곁에 두고 있는지를 목격한다.

Y 는 처음에 학교에서 소화불량을 호소했다. 낌새가 이상해서 데려다 꼬치꼬치 물어보고 나서야, 아이가 전날 보관하고 있던 약들을 한입에 털어넣었음을 알게 되었다.


아이가 부모에게 알리는 것을 너무 두려워해서, 급한대로 일단 부랴부랴 학교 근처 병원으로 데리고 가서 진찰을 받았다. 다행이 복용한 약이 치사량은 아니어서, 몇 가지 다른 약들을 처방 받고 병원을 나서며 물었다. (학부모에게는 상황이 어느 정도 수습되고 난 후 사실을 알렸다.)


"네가 먹었던 약은 어디서 난 거야?"


놀랍게도, 그 약은 같은 학급 아이 N이 준 것이라고 했다. 학급에서 보면 자존감도 높고, 성실하게 생활하고 있어 별로 걱정을 해 본 적이 없던 아이다.


N을 따로 불러서 물어보았다.


"너 Y에게 약을 준 적이 있다면서? 네가 처방 받은 걸 다른 사람에게 함부로 주면 안돼."



그러나 N은 너무 대수롭지 않다는 듯 명랑한 목소리로 답을 한다.


"아, 그거요? 근데 그거 제가 Y에게 준 게 6알인데, 6알 먹고는 안 죽어요."

"어떻게 알아?"

"제가 중학교 때 먹어 봤거든요."


교직 생활을 처음 시작할 때만 하더라도 자살 위험군에 속하는 아이는 한 학년에 한 명정도가 있을까 말까한 정도여서 교직원 회의 때 선생님들이 아이의 상황을 공유하며 주의를 부탁하곤 했다. 그러나 이런 모습이 지금은 사라졌다. 자살 위험군의 아이들이 너무나 많이 증가했기 때문이다. 나 역시 자살을 시도해봤거나 심각한 자살 충동을 느끼고 있는 아이들을 일년에 한 두 명은 꼭 만나고 있다.


나는 죽음이 무섭다.


나이가 들면서, 부모님도 연세가 드시고,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갖게 되며 나와 얽혀 있는 관계들이 내 삶에 무겁게 자리한다. 가끔은 나도 나의 삶에서 도망가고 싶지만 그럴 때마다 이런 관계의 끈들이 나를 깊숙하게 자리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내가 사라지는 것보다, 관계의 끈이 끊어지면 홀로 서 있지 못할 것 같은 이들을 생각하면, 나는 죽음이 두렵다.



아이들에게 삶의 무게가 가벼운 것은, 그 나이만이 가질 수 있는 특권이다. 자신의 존재만을 세워낼 수 있으면 그걸로 족하다.


게다 아이들을 보면 관계의 무게들도 조금씩 덜어지는 느낌이다. 함께 깔깔거리거나, 함께 웃는 옆 자리의 친구보다 자그마한 휴대폰 속의 세상이 더 가치 있고 흥미롭고 재미있게 느껴진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는 수많은 변수가 존재하지만, 휴대폰 속의 세상은 내가 얼마든지 통제할 수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아이들은 진짜 삶의 무게를 버거워 한다. 그것을 어떻게 이겨내야 하는지, 누구와 짊어져야 하는지를 몰라 방황한다. 그 아이들의 찾아가는 최종의 답은, 휴대폰 전원의 Off버튼처럼 자신의 삶을 꺼버리는 것이다.


마스크를 쓴 채, 격주로, 거리를 두고 만나야 하는 시간동안, 아이들은 저마다의 삶을 어떻게 느끼는지 몹시 궁금하다.


하지만, 지금은 그것에 물어볼 기회조차 없다. 마스크 속으로 입도 마음도 꽁꽁 싸매버렸다. 아이들의 본모습조차 제대로 마주할 수 없는 지금 시기는, 아이들에게나 교사에게나 너무 가혹하다. 이 시기를 지낸 아이들은 어떤 어른이 되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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