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고 보면 괜찮은 일
멀리 볼 수 있도록 가르치기
"나중에는 뭐가 화가 될지 뭐가 복이 될지 몰라야."
인생지사 새옹지마의 쉬운 풀이 버전이랄까. 고등학교 때 어떤 상황에서 저 말을 들었는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아버지의 저 말씀은 아직도 가슴 한켠에 단단히 자리하고 있고, 살아가며 더 절절하게 느끼고 있다.
교사가 되기 전 나는 작은 영화사에서 근무했다. 애초에 아무 생각없이 사범대로 '보내졌기에', 막연히 교사는 하기 싫다는 생각에 여기저기 기웃 거리다 우연히 얻게 된 기회였다.
마침 내가 속했던 팀에서 회사의 명운을 건 대작 영화를 맡게 된 덕에, 3년 남짓한 시간동안 별의 별 일을 경험했고, 별의별 사람들을 만났다.
비 내리는 장면을 촬영한 후 밤새 세트장에 고인 물을 퍼내기도 했고, 내 통장에 얼마 있는지도 모르고 살 정도로 경제 관념이 전혀 없던 내가 몇 천 만원, 몇 억원 수준의 지출을 관리했고, 여권도 없던 내가 일본과 중국에 장기 출장을 가기도 했다. 말 그대로 물 한 모금 넘길 새도 없이 격무에 시달린 적도 많았다. 그 과정에서 성별, 연령, 학력, 국적을 불문한 다양한 이들을 만났고, 세상의 모든 욕을 가져다 붙여도 아쉬움이 남을 천하의 나쁜 놈부터 천사의 강림인가 느껴질 정도의 선한 이들, 그리고 그 중간 어디쯤 위치할 수많은 사람을 알게 되었다.
영화는 모두의 기대와 바람과는 달리 그야말로 폭싹 망해서, 개봉 후에는 온갖 빚독촉 전화에 응대하는 것이 내 주 업무였다.
그리고 나는 학교를 도피처로 삼았다.
20개 넘게 사립 학교에 지원을 했지만, 번번이 떨어지고, 그 중에 겨우 한 군데를 붙어 교사 생활을 하면서 지난 시간에 대한 후회가 앞섰다. 내가 조금만 더 빨리 이 길을 택했더라면 지금 더 나은 교사가 되어 있을텐데 왜 그렇게 허송세월을 한 걸까.
2017년은 내게 정말 잊을 수 없는 해이다.
내가 담임을 맡은 학급에 역대급으로 '위기 학생'들이 많이 있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위기 관리 위원회가 열렸고, 아동 보호 기관에 전화를 걸면 "선생님, 여기서 되게 유명하세요."라고 답을 할 정도였다. 하루하루 아이들이 무사히 교실에 앉아 있는지만을 확인하다가 하루가 가기 일쑤였고, 나보다 교직 경력이 오래된 선생님들조차도 이런 반은 처음이라며 혀를 끌끌 차셨다.
"아니, 도대체 어떻게 버티세요?"
그맘때 동료 선생님들에게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이다. 날마다 신경 써야 되는 일에 집중하다 보니 정작 나는 내가 버티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 그때서야 생각을 해보니 그 시간을 그래도 무사히 지날 수 있게 해 준 원동력이 10여년 전, 영화사에서의 경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시절, 다양한 인간 군상을 만났고, 속된 말로 개고생도 해봤기에, 갖은 이유로 위기 상황을 겪고 있는 아이들을 이해할 수 있었고, 돌발 상황이 발생해도 큰 스트레스 없이 대처할 수 있는 내성이 생겼다.
그렇다. 살다 보면 뭐가 복이 되고 뭐가 화가 될지 아무도 알 수 없는 법.
그래서 나는 아이들이 실패가 허용되는 나이에 가능한 많은 경험을 해봤으면 한다. 그것이 설사 어렵고 성공 가능성이 낮다고 해도, 그 과정 자체에서 아이들은 성장하고 그 보답은 아이들의 긴 인생 중 어느 부분에 반드시 올거라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의 교육은 반대로 가고 있다. 12년 공교육이 결국에는 '대학 입시'로 수렴되고, 마치 입시가 교육의 전부인양 여겨지는 상황 속에서 아이들의 판단 기준은 오롯이 '이게 대학 입시에 유리할까, 불리할까. 도움이 될까, 별로 이득이 없을까.'가 되어 버린다.
우리 학교에서도 취미성 동아리는 신청자가 없어 죄다 사라졌고, '경제', '경영', '과학' 등 학생부에 적히면 그럴듯해 보이는 키워드가 포함된 동아리에는 늘 신청자들이 넘친다. 책을 읽을 때도, 봉사 활동을 할 때에도, 학급에서 협업을 할 때에도 아이들은 늘 '학생부'에 주목한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이 보는 삶의 모습은 바로 발 아래이다. 더 길고, 멀리 삶을 꿈꾸고 희망할 겨를이 없다. 학생의 선택권을 보장해 준다고 새로운 교육 과정이 등장했지만, 과목 선택시 중요한 기준은 '이 과목을 수강하였을 때 등급이 잘 나올 것인가'가 되어 버렸고, 시험 성적이 낮으면 '저 이번 생은 망했어요.'라고 쉽게 내뱉는다.
그저 지금, 이 순간이 중심이 되어 살아내는 방식을 익힌 채 사회에 나가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가끔 '90년대생' 어쩌고 하는 말들이 불편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사실 그들을 다르게 키워낸 것은 '우리'다. 함께 사는 곳보다 자신만을 바라볼 때, 순수하게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을 하는 것보다 당장의 이해 관계에 충실할 때 더 잘 살 수 있다고 온사회가 아이들에게 교육하고 세뇌시켜왔던 것은 아닐까.
지나고 보면 괜찮은 일이었지만, 그걸 지나고 볼 수 있게 기다려 주지도 않고 있으니 말이다.
뭐가 복이 되고 뭐가 화가 될지 아무도 알 수 없는 삶. 고3을 맡은 교사들이 으레 사 보는, 전국 대학의 입시 정보들이 빼곡한 책 바깥에 더 많은 삶이 존재한다는 것을, 나는 어떻게 가르쳐 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