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는 아이들에게 'Happy Ending' 스토리를 써 줄 수 없다.
'해피엔딩'
'엔딩'이라는 말은 삶이 아닌 스토리를 전제로 하고 있는 거다. 삶에서의 '엔딩'은 '죽음'일 거고, 그 누구도 누군가의 죽음을 '해피'하다고 수식할 수는 없을 테니까.
다시 말하면, 해피 엔딩이라는 말 자체가 이미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상황일 것이다.
그러나 실제 학교의 삶에서 '해피엔딩'을 보는 경우들이 있다.
위기 학생을 관리하는 매뉴얼 속이다.
학생이 온갖 어려움을 겪고 있고, 교사가 위기에 처한 학생의 상황을 파악하고, 이를 신고하고, 전문가의 도움으로 이를 해결해 나간다는 동화 같은 스토리가 삽화와 함께 펼쳐진다.
처음에는 그저 그 매뉴얼대로만 움직이면 말 그대로 모두가 '해피' 할 줄로만 알았다.
아버지와 단 둘이 살고 있던 C는 아버지와의 큰 불화를 겪고 있었다. 아버지의 집착과 폭언으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어, 여러 차례 어려움을 호소하던 차였다. 내가 C의 아버지를 불신하게 된 것은 전화 통화 때문이었다. C가 학교에 늦게 도착해 아버지께 전화를 하니, 장장 두 시간이 넘게 자기의 딸이 얼마나 영악하고 인성이 못된 아이인지, 자기가 이런 딸을 키우느라 얼마나 고생했는지, 왜 자기가 아이에게 집착하고 화를 낼 수밖에 없는지에 대한 변명을 장황하게 풀어놓으며 중간중간 흐느끼기도 했다. 마지막 부분에 가서는 내가 그 아이에게 농락당하고 있는 거라고도까지 했다. 전화를 끊고, 아이의 이야기를 더 잘 들어줘야겠다 생각했다. 어느 날 C는 이제 도저히 집에서는 스트레스를 받아 아빠와 함께 없을 것 같다며 가출 계획을 선포했다. 가출을 말릴 수도 없고, 단 하나의 보호자인 아버지에게도 알릴 수도 없는 곤란한 상황인데다, 수중에 돈 한 푼 없는 여고생이 집을 뛰쳐 나왔을 때, 예상할 수 있는 온갖 위험한 상황이 머리 속을 스쳤다.
나는 학교 담당 선생님과 논의 끝에 C학생을 청소년 쉼터에서 머무르게 하는 게 낫겠다 판단을 하였다. 가장 안전하게 아이가 지낼 수 있을만한 곳에 연락을 하여 상황을 설명했다. 쉼터 쪽에서는 아이들이 쉼터에서 생활하기 전 보호자의 동의가 필요하니, 아이가 입소하면 학생의 아버지에게 직접 연락을 하기로 하였다. 쉼터에 간 C는 이후 밝은 모습으로 학교를 다녔다. 생활은 집에서보다 불편한 점이 있지만, 마음만은 너무 편해서 좋다고 했다. 같은 방을 쓰는 친구와도 마음이 맞아, 졸업할 때까지 그곳에 머무르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아버지도 쉼터에서 연락을 받고 좀 놀란 것 같긴 하지만, 이해해 주시는 것 같다고도 했다.
한숨 돌리고, 집에서 조용한 음악을 틀어놓고 평화롭게 요가를 하고 있던 어느 날 휴대전화가 울렸다. C의 아버지였다. C의 아버지는 내가 전화를 받자마자 냅다 고함부터 질렀다.
"내가 애 졸업만 하면 당장 널 고소할 거야. 너도 그러면서 교사냐? 왜 잘 살고 있는 애들 부추겨 집을 나가게 하는 거야?"
C는 쉼터에 얼마간 머무르다 집에 다시 돌아갔다. 아버지의 강권 때문인지, 아이의 의지인지. 그날 이후로는 아이가 내게 솔직한 마음을 털어놓지 않아 잘 모르겠다. 3학년이 되고, C의 담임 교사에게 C의 안부를 물어보면 학교에 잘 나오지 않아,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는 답이 돌아왔다.
졸업식날도 C는 학교에 나타나지 않았다.
H가 가정 내에서 성적(性的)으로 학대를 받고 있다는 것을 제일 처음 인지한 것은 학교의 상담 교사였다. 상담 교사는 정해진 절차대로 관련 기관에 내용을 신고했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다.
"저, 진짜 솔직하게 절 괴롭힌 사람이 처벌받으면 좋겠는데, 제가 이런 말을 했다는 걸 엄마가 알면 이제 집에 못 들어가요. 제가 착각했다고 할 테니 신고했던 걸 취소하면 안될까요?" 아이는 엄청난 불안감에 떨고 있었다.
우리는 아이를 가정에서 분리시킬 수 있는 방법들에 대해 논의했다. 그러나 직접적인 가해자가 어머니가 아니었기에, H의 어머니는 엄연한 학생의 보호자였고, 보호자의 동의 없이 아이를 가정 밖으로 이끌어 내는 것을 불가능했다. 이를 안타까워 한 학교 담당 경찰관까지 합세해 논의를 한 끝에, 한 가지 안을 제시했다. H는 한참 생각을 하더니 일단 집으로 돌아가보겠다고 했다. 엄마가 자기 편이 되어 줄 수도 있다는 일말의 기대와 믿음이 있었던 것 같다. 무슨 일이 있으면 당장 알려달라고 이야기 한 후 아이를 보냈다. 다음날 늦게서야 어두운 표정으로 H가 학교에 왔다.
"저 선생님한테 괜히 이 얘길 한 거 같아요. 집에서 엄마가 소리 지르고 난리도 아니었어요. 왜 그런 이야기를 떠벌리고 다녀서 일을 크게 만드냐고. 왜 넌 엄마 말을 안 듣고 얼마 보지도 않은 선생님들 말만 듣냐고."
H는 그 이후 학교 생활을 너무나 힘겨워 했다.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자기를 보호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아버린 것 같았다.
H는 또래보다 한 살이 많았다. 그래서 고3이 되던 시기에는 그나마 H의 안부를 수시로 챙기던 전문 기관에서도 H는 자신들이 관리할 수 있는 나이가 지나버려 이제 더 이상 적극적으로 케어를 해주기가 어렵다고 했다. 고3이 되자 H는 학교에 거의 나오지 않았다. 집에서 나와 생활비를 벌기 위해 볼링장에서 밤새 아르바이트를 했다고도 하고, 언젠가는 휴대전화 가게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며 학교에서 유니폼으로 갈아 입고 하교를 하기도 했다.
어느 날은 음식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데 술에 취한 손님이 자기 몸을 만져 욕을 하다 오히려 지배인한테 혼이 나고 잘렸다는 푸념을 늘어 놓기도 했다.
졸업을 하기 전 H가 사람들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고, 임시직이 아니라 무엇이라도 꾸준히 할 수 있는 일이나 능력을 찾아주고 싶었지만, 나는 교사로서, 한 명의 어른으로서 H를 돌보는 데 철저하게 실패했다.
학교 안에서의 해피엔딩은,
힘들던 아이들이 학교의 도움을 받아 어려움을 이겨내고 훌륭한 어른으로 성장한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그러나 많은 경우, 어른들이 손을 내밀어도 그 손이 아이들의 마음에 닿기에 혹은 아이들을 인생의 진흙밭에서 조금이라도 끄집어 내기에 역부족이다. 손을 잡아보려 발버둥치던 아이들이 그 손을 놓치는 순간, 더 깊은 구렁텅이 속으로 빠져버리고 만다.
내 나이에서도 상상조차 힘든 인생의 무게를 지고 있는 아이들이, 그래도 학교에 나와 재잘재잘 친구들과 떠들며 환히 웃는 모습을 보면 존경스럽기까지 할 때가 있다.
그래, 잠시 어깨에 짊어진 삶의 짐들을 잊고 이곳에서 잠깐이나마 마음 편히 쉬다가기라도 바랄 수밖에.
해피엔딩을 꿈꿀 수는 없지만, 학교에 머무르며 웃었던 순간의 추억들이 언제간 행복한 삶을 살게 해주는 작은 씨앗이라도 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