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송송 Dec 04. 2020

올해도 무사히 끝났습니다.

수능 감독기(監督記)

 수능날의 주인공(?)은 당연 수험생들일테지만, 그래서 기사에서는 늘 수험생의 이야기들을 앞다퉈 다루지만, 아무도 알아주지는 않는, 조연급의 역할 정도를 무사히 마친 감독관의 이야기를 써보려 한다.

 

 2학기에 수능은 크고 중요한 이벤트이다. 2학기 중반쯤 감독관 교사 명단을 올려야 하니 감독관으로 나갈 수 없는 사유가 있는 경우 알려달라는 교무부의 메시지를 받는다. 올해는 코로나로 고사실이 늘어난 바람에 감독관 수가 모자라 감독관으로 빠질 수 있는 요건이 더 '강화'되었다. 종합 병원의 진단서를 제출하라는 것.

20대일 때는 그냥 운명이려니 체념하겠지만, 40대가 되어 종합검진을 받으면 분야별로 다양하게 '재검'이 뜨는 나는 사실, 마음만 먹으면 감독관 면제 사유가 될 진단서쯤이야 얼마든지 발급받을 수 있지만, 평상시 멀쩡하게 잘 살다가 환자 노릇을 하기에도 민망하기도 하고, 시간을 쪼개 큰 병원까지 가야하는 게 귀찮기도 해서 그냥 응답을 하지 않기로 한다.

 수능 2주 전쯤에는 감독관이 어느 고사장으로 배치가 되는지 통보가 온다. 집과 얼마나 가까운지, 나와 친한 사람 혹은 내가 싫어하는 사람과 같이 가게 생겼는지, 여학교인지 남학교인지, 5교시까지 시험을 보는 곳인지 네 가지 정도가 관건이 된다. 작년까지는 머리털 나고 처음 가 보는, 우리집에서 대각선으로 대칭되는 즈음에 있는, 먼 곳들로 배치가 되더니만 올해는 웬일로 네비게이션 도움 없이도 내가 찾아 갈 수 있는 곳으로 배정을 받았다. 대학교 때 그 학교 바로 옆에서 살았던 적도 있고, 회사를 그만두고 여기저기 사립 학교를 지원하고 다닐 때 최종 면접에서 예상치도 못하게 목사님이 등장해 '구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라는 질문을 던져 횡설수설하고 나왔던 나의 흑역사를 썼던 곳. 평소 고만고만하게 친하게 지내던 여선생님들과 같이 가게 되어 마음도 한결 편하다. 내가 가야 할 곳은 여학교. 여학생이 남학생들에 비해 시험에서 훨씬 민감도가 높다고 하는데, 나는 사실 단 한번을 제외하고는 죄다 여학생 고사장만 감독을 해서 얼마만큼의 차이가 나는지는 잘 모르겠다. 작년에 처음으로 남학교에 갔을 때 컴퓨터용 사인펜과 수능용 샤프를 나눠주고 있는데 덩치가 나를 세 배로 불려 놓은 듯한 아이가 마치 거안제미라도 하는 것 마냥 두 손을 눈썹 위에 가지런히 모으고 있다가 물품을 받아들고 '감사합니다'라고 머리를 조아리는 모습이 귀여웠던 기억과, 내 나이 또래의 아재가 뭔가 무서운 포스를 풍기며 앉아 있었는데 시험 요령을 하나도 몰라서 옆에서 벌벌 떨며 가르쳐 주었던 기억이 스쳐지나간다. 5교시에 제 2외국어 과목까지 치러지는 곳이라면 다른 사람들보다 늦게 끝날 각오도 좀 해야 한다.

 감독관들은 수능 전날 2시에 감독관 회의를 한다. 감독관 회의가 열리는 곳 앞에서 수능 때 쓸 인장을 등록하고 출근부에 도장을 찍고 감독관 업무를 잘 하겠노라 서약서를 쓰는데, 감독 몇 번 나간 사람들은 도장을 찍기 전 자기 이름 옆에 써 있는 수령액을 슬쩍 보고 자기가 몇 시간 감독을 하는지 눈치를 챈다. 14만원이면 3교시, 15만원 이면 4교시 감독. 만 원 더 받는다고 4교시 감독을 기뻐하는 사람은 없다. 다만, 운이 좋다면 제2외국어 선택한 수험생들이 죄다 포기하고 돌아가는 고사장을 맡아 감독은 안 하고 만 원은 더 챙기는 경우도 간혹 있다. 학교는 아직도 장유유서의 관념이 자리하는 곳이기에, 4교시 감독은 주로 젊은 교사들에게 배정이 되고 나는 3교시 감독일까 4교시 감독일까를 고민하는 나이에서 어느 샌가 벗어나 있어 굳이 확인은 하지 않는다. 이곳에서 학교의 첫인상을 결정하는 것은 교무부장이다.  덜 지루하게, 얼마나 빨리 끝내주는지로.  자신의 학교에서 고사 중 사고가 나면 큰일이기 때문에 교무부장이 마이크를 잡고 우리를 학생으로 아는 건가 싶은 만큼 열변을 토하는 게 보통인데, 이곳 교무부장 선생님은 뭔가 매가리가 없어 특이하다. 뭐라고 웅얼웅얼 하는데 소리도 잘 들리지도 않고, 특별히 어떤 부분을 강조하려는 의도도 없어보인다. 듣고 있자니, 저 선생님 학교에서 여러 명 재우겠군. 하는 생각이 든다. 시간도 점심 이후라 여기저기 이미 조는 선생님들도 보인다. 교육열이 높은 어느 동네 학교로 감독을 나갔을 때는 그곳 교감 선생님이 이미 자기 학교에서 학부모가 소송을 걸어 진행중인 게 세 건이라면서 동네 학부모들이 매우 예민하니 더 이상 소송에 휘말리는 일은 없게 해달라고 절실하게 읍소했던 것과 너무 대비가 되어 웃음이 나온다.

 수험생의 민원이 추가 되면 다음해 감독관 회의의 내용도 덩달아 추가 된다.

 감독관의 패딩 외투가 사그락거려 거슬린다, 감독관의 발소리가 너무 크다, 감독관의 화장품 냄새 때문에 집중이 안된다, 감독관이 너무 한 자리에 서 있어서 신경이 쓰인다, 감독관이 너무 돌아다녀서 산만하다... 민원인들에게 감독관은 수능을 망친 원흉이요, 화풀이 대상이다.  

 다음 날 가져갈 것들은 잊어버릴까봐 차에 빼 놓고 집에 왔다. 나는 호흡기 계통의 기저 질환자이다. 그리고 남편의 몹쓸 유전자를 받아 아이들은 천식이 있다. 집에는 아이들을 돌봐주시느라 연로한 어머니도 계신다. 코로나가 계속 확산되는 느낌이라 올해는 좀 더 오버를 해보기로 했다. 지난 번 의사들이 항의 집회를 열 때 마스크에 페이스 쉴드를 착용했던 모습이 떠올랐다. 의사가 그렇게 했으니 예방 효과가 있겠지. 수험생 인원을 줄였다지만 24명을 한 교실에 두려면 도저히 거리 유지가 안되는데다 수험생 본인 확인을 할 때는 마스크를 내리고 하란다. 감독 나간 학교가 얼마 전 코로나가 확진자가 다수 발생한 노량진 근처이기도 해서 내 몸은 내가 지킬 수밖에 없다는 마음으로 며칠 전 인터넷 사이트에서 페이스 쉴드를 주문했다. 혼자 하면 유난스러워 보일까봐 같이 감독 나가는 선생님 중 어린 아이를 키우고 있는 분을 꼬드겨서 한 장 줄테니 같이 쓰자고 했다. 그런데 2일에 도착하기로 한 물건이 오지 않아 사이트를 찾아 보니 '배송지연'이라고 뜨는 거다. 두둥. 구매를 취소하고 나의 마지막 희망. 중고 거래 어플을 열어서 검색창에 '페이스 쉴드'를 쳐 넣어 보았다. 근처 동네에서 5장을 5천원에 판다는 글이 눈에 확 들어온다. 물건을 사겠노라 연락을 하고 저녁 8시에 차를 몰고 나가서 받아 왔다. 손목 시계도 약이 다 떨어져 배터리를 바꿀까 하다 배터리 교체 비용이나 싸구려 시계 하나 사는 비용이나 같아서 그냥 하나를 구입했다.

 나는 장트러블이 잦은 편이라 일본 여행 때 호기심에 구매해 본 일명 급똥약도 챙겨 넣었다.


 같은 학년을 맡은 교사들끼리 긴장된다, 잘 하고 오자 등의 인사 메시지를 주고 받다가 새벽 5시에 알람을 맞춰두고 잠이 들었다. 화들짝 눈이 떠지자마자 휴대폰의 시간을 확인한다. 4시 40분. 행여나 늦잠을 잘까봐 더 자보려 해도 잠이 오지 않아 자리에서 일어난다. 시험보는 애들이야 늦잠 자서 경찰차를 타고 가도 그냥 웃어넘길 에피소드가 되지만 감독 교사가 늦잠 자서 늦으면 망신도 그런 개망신이 없다. 우리 학교 어떤 선생님은 첫 감독 때 너무 긴장한 나머지 잠이 안 와서 늦게 잤다가 늦게 일어나 엉엉 울면서 경찰 오토바이의 호위를 받으며 가까스로 고사장에 도착한 적이 있었고 10년이 넘게 회자되고 있다.

 어머니는 내가 수험생인 양 나보다 더 일찍 일어나 뜨끈하게 떡국을 끓여 주셨다. 일찍 일어난데다가 긴장감에 아침을 먹고 싶단 생각이 들지 않지만 어머니의 정성을 생각해서 꾸역꾸역 다 먹었다. 겨울철 이른 출근길은 늘 어설픈 외로움이 함께 한다. 그때 차 안의 라디오를 켜면 아, 나만 일하러 가는 게 아니구나 싶어 위안이 될 때가 있다. 새벽 라디오 방송을 벗삼아 고사장으로 향했다.

 고사장 앞은 썰렁하다. 선배들 응원한답시고 여기저기 자리를 잡고 왁자지껄 떠들어 대는 모습은 올해는 찾아 볼 수 없다. 코로나가 바꾸어 놓은 풍경이다. 학교 앞 구석에 차를 세우고 자녀들과 조용히 작별 인사를 건네는 부모들의 모습이 애틋하다.


  어제와는 달리 회의실은 긴장감이 역력하다. 감독관의 휴대폰과 차 키를 제출하라는 안내 멘트가 나온다. 예전에 한 감독관이 고사실에 휴대폰을 가지고 들어갔다가 시험 중 진동 소리가 나는 바람에 혼란이 빚어져 한 수험생이 그 감독관을 상대로 민사 소송까지 걸어 그 교사가 재수 비용 몇 천 만원을 물어줘야 했다는 이야기는 이미 유명하다. 차 키도 어느 해에 시험 중 감독관이 차에서 뭘 꺼내려다가 경보음이 울려 소음이 발생한 이후 계속 수거해 가는 품목이다. 평가원에서 만든 감독관 유의 사항 영상을 시청한다. 확실히 교사도 애들도 해를 거듭할 수록 연기가 자연스러워지는구나. 감상도 해 본다. 회의가 끝나고 학교별로 준비된 대기실로 자리를 옮겨 감독 시간표를 확인한다.

 감독관이 감독을 꺼리는 시간은 1교시, 2교시, 3교시, 4교시, 5교시이다. 다 하기 싫다. 그 중에서도 1교시는 감독관도 긴장, 애들도 긴장한 상태인데다 고사장 반입 금지 물품도 걷어야 하고 유의사항도 안내해야 하고, 본인 확인도 해야 해서 무지 바쁘다. 다행히 나는 1교시 감독이 빠져 있었다. 마냥 좋아할 건 아니다. 1교시가 없다는 것은 1교시보다 20분이 긴 2교시 감독을 해야 한다는 뜻이므로.

 2교시는 수학 시험 시간이고 100분이다. 다른 과목은 정말 심심하면 어떤 문제가 나왔나 슬쩍 시험지를 들춰 보기라도 하는데 수학은 봐도 모르겠고, 서 있다가 너무 지루해서 칠판에 붙어 있는 안내 사항을 모조리 읽고, 고사장에 들고 들어간 유의사항도 숙독하고 여기저기 손과 등의 지압점을 찾아서 지압도 해보고 천장도 봤다 창문도 봤다가 몸부림을 쳐도 겨우 20분이 지나 있다.

 올해부터 교육부 장관님은 야심차게 감독관에게 의자를 지급한다고 했는데, 고사실 뒤에만 두 개를 배치하고 정감독 부감독 중 한 명만 앉을 수 있다하니 졸지에 감독관끼리의 눈치게임처럼 되어 버렸다. 그런데 그마저도 수험생 바로 옆에 의자가 있는 터라 앉는 걸 포기했다. 옆에 계속 앉아 있어 시험 못 봤다고 또 민원을 넣을 것만 같았다.

 그래도 시간은 어떻게든 간다. 시험 시간을 통틀어 제일 시간이 늦게 가는 것은 마지막 10분. 10분 전 종료 예비령이 울리면 아, 이제 10분만 버티면 되겠구나 싶은데 그 10분이 징그럽게 안 간다. 5분쯤 지났으려나 하고 시계를 보면 1분쯤 지나 있다. 그렇게라도 1분씩이 흘러 10분이 지나가고 종료종이 울린다. 답지와 시험지를 걷고 다시 한번 확인한 후 시험 본부에 가서 제출하고 확인을 받고 돌아온다.

 점심 시간이다. 코로나 때문에 식단에 변화가 있겠지 싶었건만, 변함없이 보쌈이란다. 수능 고사장들은 왜 하나같이 그렇게 보쌈에 각종 전과 잡채를 좋아하는지. 여러 학교에서 온 선생님들이 한 공간에서 식사해야 되는 게 신경이 쓰여 대기실에서 아침에 나눠 준 김밥으로 점심을 때웠다.

 3교시 영어 시간. 시간은 짧으나 듣기 방송 시간에 수험생들이 초초예민해지기 때문에 긴장되는 시간이다. 예전에는 듣기 방송 중 침 사레가 들렸는데, 기침을 안 하려고 안간힘을 쓰다 눈물 콧물 쏙빠졌던 적도 있다. 행여나 소음이 발생할까 군인들마냥 차렷 자세로 서 있었다. 마스크를 쓴 덕에 입 모양이 보이지 않으니 듣기 방송이 나올 때마다 영어 공부를 한다 생각하면서 입모양으로 따라도 해 봤다. 이것이 섀도잉이란 것인가.

 4교시는 한국사와 탐구 과목. 이제 어느 정도 감독 업무가 익숙해지려던 참이었는데 내가 배정된 고사실을 보고 갑자기 긴장감이 올라왔다. 교무부장 선생님이 웅얼거리며 안내하던 속에서도 확연히 들려와 메모까지 해뒀던 '특이한 사항이 있는 고사실'에 내가 배정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고사장은 다른 곳보다 두 세배 신경을 더 써야 하는 경우가 많아 각오를 하고 시험지를 수령하러 갔다.

 "선생님이 감독하실 고사실은 탐구 과목 미선택자들이 있는 곳이에요. 아이들이 한국사 시험만 보고 퇴실할 겁니다."


 오옷. 이게 무슨 행운이람. 한국사 시험 시간은 30분이다. 게다 탐구를 미선택하는 아이들이라면 수능 점수에 민감한 아이들도 아닐 터. 수능 전날 귀가하면서 돌아가는 건데도 다른 선생님들 집앞까지 일부러 내려드리는 나름의 선행이 이렇게 복을 받나보다. 앞으로도 착하게 살아야겠구나. 유치한 다짐까지 했다.

 그러나 인생지사 새옹지마는 나의 철칙이 아니었던가. 고사실에 갔더니 24명 한국사 응시 예정자 중 실제 예정자는 9명. 15명이 결시자이다. 결시자는 응시 현황표에 수험번호와 이름을 기록하고, 답안지 회수용 봉투에도 수험번호와 이름을 기록하고, 답안지와 시험지에도 인적사항을 표시해야 한다. 정작 시험을 보는 아이들은 10분만에 시험을 다 끝내고 멀뚱멀뚱 앉아 있는데, 나 혼자 도장과 컴퓨터 사인펜을 들고 다니며 누구보다 열심히 30분 내내 끄적이고 다녔다.

 아이들을 대기실로 보내고, 나도 감독관 대기실로 와서 대기. 은근히 떨리는 시간이다. 내가 감독 중 실수했던 사항들이 발견되면 안내 방송으로 친히 호출을 하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은 기억을 못하겠지만, 실수를 해서 전체 방송에서 이름이 불리는 것은 상당히 '쪽팔린다'.

  별 일이 없었나보다. 아니면, 본부에서 꼼꼼하게 확인을 안 했든지. 5교시 감독에 들어가는 '90년대생' 선생님들을 뒤로 하고 14만원의 수당을 받아 귀가했다.

 예전엔 수능 감독하고 나면 같이 감독 나간 선생님들끼리 맛있는 것도 먹고 좀 놀다가 들어오곤 했는데, 이제는 그런 건 꿈도 못 꾼다. 마스크를 종일 하고 있었더니 두통도 있고 허리도 아파서 드러누워 있다 깜빡 잠이 들었다.

 "어머님~ 어머님~"

 목요일마다 우리집엔 아이들의 학습지 방문 교사가 오는데, 수능이 목요일이어서, 애들이 공부를 끝마칠 때 나는 여지없이 잠들어 있다. 첫해엔 좀 당황해하던 선생님도 이제 수능날이면 그러려니 하는 거 같다. 작년엔 선생님이 언제 가시는지도 모르고 자서 애들이 엄마는 수능 감독 하고 와서 잔다고 얘기하고 선생님을 배웅했다는데, 올해는 그래도 자다가 깨서 부스스한 모습으로 인사를 했다.


 올해도 끝났다. 무사히. 수능 감독의 고충을 다룬 기사들을 보면 더 오래 서서 일하는 다른 직종 생각은 안 하고 돈도 10만원 넘게 받으면서 배부른 소리 한다는 댓글들이 줄줄이 달리곤 하는데, 단순히 서 있느냐 앉아 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나의 실수로 그동안 시험 준비를 열심히 해 왔을 아이가 어떤 피해를 입을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가장 힘들다. 후련한 마음에 우리반 아이들에게도 고생했다고 인사를 전했다. 다른 때는 단톡방에서 침묵을 지키던 아이들까지 너도 나도 서로 다독이고 인사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


 별 탈이 없었던 하루. 수능날은 아이들에게나 감독하는 교사들에게나. 그것만으로도 감사할 게 차고 넘치는 날이다.


 

작가의 이전글 다시, 수능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