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날이 또 돌아왔다. 온국민의 출근 시간이 늦춰지고, 비행기 뜨는 시간이 조정되고, 길거리의 잡상인도 확성기의 버튼을 꺼야 하는.
실상은 모두를 위한 이벤트가 아니지만, 모두를 위한 이벤트처럼 되어 버린, 수.학.능.력.시.험.
내일 하루종일 도배될 기사들도 뻔히 예상이 된다.
아침에는 부모님과 인사를 하며, 조금 특별한 경우에는 부모님께 큰 절을 올리며 고사장으로 향하는 아이들과 부모의 애처로운 눈빛이 오버랩되는 모습이,
고사장에 늦어 경찰차 오토바이를 타고 닫혀 가는 교문을 향해 후다닥 뛰어가는 수험생의 뒤태가,
올해는 거기에 더해 코로나19 관련 자가 격리자나 유증상자, 확진자의 소식까지 더해 가겠지. 아, 올해는 수능응원이 금지되었으니 교문 앞이 다른 때와 달리 차분해졌다 등의 기자의 멘트가 얹어질 수도 있겠다.
매 시간마다 과목별 난도가 예년에 비해 쉬웠는니, 어려웠느니 사교육 업자들의 입을 빌려 이러쿵 저러쿵 떠들 것이며
시험이 끝난 후에는 마중 나온 부모를 향해 달려와 부모님과 끌어 안고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 나올 것이다.
그리고 곧 길거리는 '수험생 할인', '수험표 지참시 -% 할인' 류의 문구들이 나붙어 긴장감에서 해방된 아이들의 눈과 귀를 끌 것이다.
매년 되풀이 되는 이 모습들을 보고 있노라면, 고3 아이들을 상대로 온 나라가 거대한 사기극을 연출하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 마치 모든 아이들이 12년동안 수능날을 향해 뛰어온 마라토너고, 전국민이 도우미가 되어 지켜보는 느낌이랄까. 마라톤과 다른 점이 있다면, 꼴등을 한 마라토너에게도 사람들은 응원의 박수를 보내지만, 수능에서 박수는 오직 1등 그룹의 차지라는 것. 어른들은 자기들도 한 때 이 사기극에 휘말렸다는 사실은 새까맣게 잊어버린 채 기꺼이 사기에 동참한다. '수능은 공교육 12년의 최종 결과물이요, 수능을 잘 보면 인생에 행복이 열릴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낙오자가 될지어다. '
수능은 상대평가라 누군가가 1등급의 성적표를 받기 위해 누군가는 9등급을 받아들여야 하는데, 이 얼마나 잔인한 사기극이냐.
우리나라 인구 5100만명 중 올해 수능 응시생 수는 49만명이다. 수시 합격생들을 제외하면 숫자가 더 줄어들텐데, 안되는 계산 머리로 얼핏 셈을 해 봐도 전체 인구의 1%도 채 안된다. 99%의 삶이 그 1%에 맞춰지는 하루. 무엇을 위해 그래야 하는 걸까. 학교 밖에선 하루에 그치지만, 학교 안에서는 진즉 수능에 맞춰 모든 것들이 돌아가고 있었다. 수능을 보지도 않는 1,2학년 아이들이 고사실을 꾸민다고 수업 시간을 쪼개서 먼지를 뒤집어 쓴 채 대청소를 하고, 우리 학교가 고사장으로 차질 없이 운영되어야 하고 우리 학교 선생님들이 감독 교사관으로 차질 없이 나가야 해서 급작스럽게 수능 일주일 전부터 원격 수업으로 전환되었다.
그렇게 모두가 '수능'을 대이벤트로 취급하는 분위기에서 아이들은 무엇을 배우게 될까.
요즘 SNS에서 나이 들었음을 인증하는 것이 유행이라던데,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라는 케케묵은 영화 제목은 지금의 학교에서도 아직도 유효한 '명제'이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에 이어 '그래 가끔 하늘을 보자'까지 눈물 흘리고 고개 끄덕이며 봤을 지금의 그 세대들은 여전히 아이들에게 행복은 성적순이라는 것을 세뇌하며 하늘을 볼 여유마저 앗아가고 있다.
올해는 대통령이 아예 '전세계가 우리의 수능을 주목하고 있습니다.'라는 흰소리까지 했다니, 쓴웃음이 더하지만, 아이들을 위해 기도하는 마음으로 하루를 보내련다.
어제까지도 학교 주변 동네와 독서실에서 끊임없이 이어지는 코로나 확진자 소식 속에서, 부디 아이들이 무사히 시험을 마칠 수 있기를. 성적표에 새겨진 숫자와 상관없이, 그저 12년동안 탈없이 잘 지내온 것만으로도 이미 각자의 트랙에서 나름의 길을 달리고 있는 훌륭한 마라토너들이니 더 먼 목표를 향해 멈추지 않기를. 달리다 힘들면 잠시 느린 걸음으로 걷거나, 주저 앉아 쉬는 것도 충분히 가치 있는 일임을 깨달아 갈 수 있기를. 그리고 학교는 순위를 다투는 경기장이 아니라 함께 뛰노는 운동장으로 더 기억에 남을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