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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송 Dec 01. 2020

주객전도

 어제는 줌으로 학생부 기재에 관한 연수가 있었다. 회의실에 입장해 무심히 연수 내용을 듣고 있는데, 듣다 보니 뭔가 이상하다. 내용은 대충 이런 식이다. 

 

 학생부 기재 원칙이 바뀐다. -> 바뀐 학생부 내용을 대학에서는 어떻게 반영할까? -> 대학에서 잘 평가 받기 위해 학생부를 어떻게 기재해야 할까? -> 학생부를 기재하기 위해 수업 시간에 학생을 어떻게 지도해야 할까? 


 '학교 생활 기록부: 학생들의 발달상황과 발달에 작용되는 제반 조건 또는 환경에 관한 정보를 기록한 장부 (네이버 시사 상식 사전)'


 학교 생활 기록부의 정의에 따른다면 

  학생의 발달이 잘 나타나는 수업을 하고 -> 성장 과정을 학생부에 잘 기재하고 -> 대학에서는 이것을 보고 학생들의 역량을 평가한다. 

가 정상적인 순서 아니겠는가. 


 더군다나 연수의 내용처럼 학생부를 기록했을 때 의미가 있는 아이들은 전학년 중 3분의 1이 채 될까 말까 한다. 연수에서 예로 든 대학들에 지원할 아이들로 치면 많아봤자 5분의 1일 것이다. 무엇이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지 않았나? 


 나는 수능 감독으로 차출되어 감독관 회의에 가야 하는 수요일과 수능 당일인 목요일을 빼고는 이번 주 내내 재택 근무를 해야 한다. 나는 고3 담임이니 그렇다 치는데, 수능을 탈없이 치르기 위해, 정확히 얘기하면 감독관을 확보하기 위해 고3뿐만 아니라 고1,2학년과 중학교들까지 죄다 원격 수업으로 급히 전환되었다. 

이쯤되면 교사의 주업무는 수업인지 감독관인지도 심히 헷갈린다. 


 본래의 목적과 의미가 부차적인 것들에 전도당한 것들이 어디 이뿐이랴. 


 대학은 '진리의 상아탑'에서 취업을 위한 '스펙'으로 전락한지 오래다. 집은 휴식과 충전의 공간이라는 본래의 기능에서 벗어나 투기의 대상이 되어 버렸다. 집값은 얼마나 '살기 좋은지'가 아니라 얼마나 '학원가가 잘 조성되어있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어느 학교가 '좋은 학교'인지는 그 학교의 교육 과정과 교사의 열의가 아니라 'SKY 합격생'의 수로 판가름난다. 

 올해 주객전도의 최고봉은 코로나 감염 예방을 위해 등교를 중지시킬 때 '입시를 앞둔 고3'은 예외였다는 사실이다. '입시'가 아이들의 '건강'보다 우선하다니. 

 가치들이 전복당한 자리의 희생양들은 결국 죄없는 아이들이다.  이전 세대가 그래왔듯 스스로 생각하고 이해하며 성장해야 하는 시절에 주객이 전도된 판에서 살며, 이런 상황을 자연스럽게 체화하고 성인이 되어 똑같은 판을 만들어 낸다. 

 그동안 굳건하게 유지해왔던 관습들이 죄다 흔들렸던 올해가, 이런 것들을 바로 잡을 수 있는 적기가 아닐까. 

언젠가는 해야 하지만 아무도 하고 있지 않은 일들에 이제는 우리가 나서야 하지 않을까. 대학에 잘 보이기 위해 아이들이 성장해 가는 '척' 하는 학생부가 아니라, 실제로 아이들을 성장시키려는 노력과 고민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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