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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송 Nov 30. 2020

문과 교사의 이과 도전기

 '나는 문과 체질이야.' 언제부터 내가 스스로를 이렇게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어릴 적 고만고만하게 비슷하게 성장해 가던 한 살 터울의 오빠가 컴퓨터 학원으로, 나는 피아노 학원으로 방향이 갈라지기 시작한 무렵인지, 수업 시간에 걸핏하면 이유없는 분노를 터뜨려 모두를 공포에 떨게 했던 중학교 때 과학 선생님을 보고 나서인지. 딱히, 내가 수학과 과학을 싫어해 본 적은 없는 것 같은데도 어느 순간 나는 스스로를 '문과형'이라 규정했고 고등학교 때 계열을 선택하는 순간조차도 부모님과 한 마디 상의도 없이 내 멋대로 결정해서 집에 통보했다. 대학교에 진학하고 나서, 그야말로 빛의 속도로 이과 분야의 지식들을 잊어버리기 시작했고 지금은 그 흔한 근의 송식도 가물가물할 지경이 되었다. 

 우리집 서가를 봐도 온통 인문 분야의 책만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할 뿐, 수학과 과학 분야의 책들은 딸 아이들 문제집을 빼면 거의 없는 것 같다. 


 그렇게 커 오고 나이 들어가던 나에게 2020년은 하나의 변곡점이 되었다. 


 코로나19로 찔끔찔끔 등교가 뒤로 밀리는가 싶더니 갑자기 2주 후 원격 수업을 준비하라는 지침이 내려왔고, 집에서는 사놓고 거의 열어 볼 일도 없던 노트북을 꺼냈다. 원격 수업 준비는 커녕, 일단 나는 컴퓨터와 친해지는 게 더 급선무였다. 제일 첫번째 충격은 '익스플로러'의 존재 가치였다. 학교 업무 프로그램이 익스플로러에서만 돌아가기 때문에, 익스플로러만 주구장차 쓰면서 그게 주(主), 크롬과 같은 브라우저는 부(副), 비유하자면 익스플로러가 공교육의 학교 같은 느낌이라면 크롬은 대안 학교 같은 이미지로 생각해 오다, 익스플로러가 학교 밖의 세계에서는 거의 '서당'급의 취급을 받는다는 것을 알고 부랴부랴 크롬을 설치했다. 그동안 네이버는 한국 검색창, 구글은 미국 검색창 정도로 알고 살아오던 수준이었는데 뭐. 

 온라인에는 수업에 활용할 수 있는 수많은 도구들이 이미 널려 있었고 하나 하나 기능을 익혀 가느라 정신이 없었다. 오죽했으면 올해 1학년에 입학한 딸 아이가 미술 시간에 사람 꾸미기를 하며, 엄마가 맨날 보는 거라며 옷 무늬로 'Google' 을 수십 개 그려놨을 정도였다. 

 

  그런데 이게 하다 보니 신기하기도 하고 재미도 생기는 거다. 이것 저것 해보다 내친 김에 나에겐 딴 나라 세상에 가까웠던 코딩에도 도전해 보기로 했다. 이미 나 같은 사람을 겨냥해 '비전공 입문자', '초보라면' 등의 타이틀을 단 강의들이 차고 넘쳤다. 아는 게 있어야 고르기라도 할 텐데, 대충 눈에 띄는 아무 강의나 결제를 해서 들어보는 데, 그냥 내 컴퓨터에 내가 컴퓨터에 무려 '명령어'를 집어 넣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충격과 감동이었다. 신이 나서 처음엔 'Hello world!'를 출력하다 나중에 피보나치 수열이나 구구단을 출력하는 과제가 나오니 그걸 일일이 창에 쳐 넣기도 했지만. 

  

 아는 선생님이 내가 코딩을 해보는 것을 보더니  같이 '데이터 사이언스'를 공부해 보자고 권하길래 덜컥 그 강의도 신청해 보았다. 여전히 나에겐 외계어가 난무하는 세계처럼 느껴지긴 하지만,  수학적인 사고나 지식이 이럴 때 필요한 거구나 싶어서 인터넷을 뒤져 고등학교 때 배웠던 통계 부분을 다시 찾아 보기도 하고, 드디어 우리집 서가에도 컴퓨터나 수학 관련한 책들이 몇 권 꽂히기 시작했다. 


 얼마 전엔 교육청 연수 공람이 떴는데, 안내문에 무려 '과학 교사를 우선적으로 선발'이라고 되어 있지만 용감무쌍하게 신청했다가 대상자로 선정이 되어 연수도 들었다. 컴퓨터 안에서나 있음직한 기판과 전선들이 잔뜩 들어 있는데, 그걸 이용해서 뭘 설계하고, 만들어 발표를 해야 된다는 사실을 알고 당황해 학교 과학 선생님에게 거기 들어있던 재료들을 모두 불사르며 '모닥불'을 만들어 보았다고 발표를 할까 하며 하소연까지 했는데, 그러던 내가 며칠 만에 뚝딱. 뭔가를 만들었다. 물론, 거의 유치원 아이들의 놀잇감 수준이지만 그래도 컴퓨터와 전기를 사용해서 움직이는 것을 만들었다는 것 자체가 내 인생 안에서는 놀라운 발전이다. 

  

 나이 40이 되어서야 아, 내가 감히 '이과'를 넘볼 수 없던 '문과형 인간'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것을 깨달았다.   


  7년 전쯤 사들였던 화분이 있다. 애들이 한창 어릴 때라 겨우 물만 주며 거실 한 구석에 턱 방치하다시피 놔두었는데, 해가 나는 방향으로 조금씩 기우는가 싶더니 어느샌가 보니 잔뜩 한쪽 방향으로 휘어진 채 자라나 균형 잡기도 힘들 정도가 되었다. 아이들이 커가면서 거실이 비좁아져, 화분을 베란다로 내놓고 또 한참이 지나자 그제서야 조금씩 방향을 틀어 자라고 있다. 

  세상은 다양해지고, 원하는 정보는 누구든 손쉽게 얻을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고 하지만 내가 좋아한다고 생각하기도 전에 내가 원하는 것을 미리 찾아 제시해주는 알고리즘에 익숙한 이들에게는 늘 세상의 단편적인 영역만 모습을 드러낼 뿐이다. 나 또한 부모로서, 교사로서 나만의 알고리즘에만 갇혀 성장하는 아이들의 시야를 가려온 것은 아닌지, 우리집의 화분처럼 한쪽 방향으로만 잔뜩 틀어진 채 성장해 가는 것은 아닌지, 나에게 또 아이들에게 해는 어느 방향에 떠 있는지를 계속해서 관찰하고 살펴야 할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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